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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nic Cho Jul 15. 2023

미야자키 월드 - 수전 네이피어

총점: 9/10


- 한 줄 서평

비틀기의 대가 미야자키는 무엇을, 어떻게, 왜 비틀었을까?



- 내용 정리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에 관한 해설서이다. 그중에서도 미야자키의 삶에 대한 설명과 함께 작품 해설을 풀어낸다는 점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책 초반부에서는 미야자키와 그의 작품들에 담긴 전반적인 특징들을 요약한다. 이어서 연대기적으로 작품들을 배열하여 시대의 흐름과 거장의 삶, 이들이 어떻게 작품에 반영되었는지와 함께 다양한 관점들을 자세한 해설로 풀어낸다. 이를 통해 미야자키 월드가 품고 있는 다층적인 면을 배울 수 있다.


그는 무엇을 작품에 담았나? 파멸, 환경오염, 절망, 반전, 도전, 희망, 성장, 속죄 등 미야자키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던지고 싶은 삶의 메시지들을 담았다.

그는 어떻게 작품에 담았나? 우선 내면 밑바닥까지 탐구하여 자아의 구성 요소를 낱낱이 분석했다. 이후 이러한 자아성찰을 통해 깨달은 메시지들을 극한의 노력을 통해 담았다.

그는 왜 작품에 담았나? 메시지를 말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는 시대가 인류에게, 동아시아인에게, 일본인에게, 나아가 개인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내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졌다. '삶에 무엇을 담고 싶은가?', '왜 그렇게 살고 싶은가?'란 물음과 함께. 이런 의문들을 품고 미야자키의 작품들을 보자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 속에 감춰졌던 고뇌와 절망, 그리고 희망이 다가왔다.

다만 다소 복잡한 구성과 이따금씩 만나는 과한 문장을 넘어선다면, 책을 통해 미야자키란 거장의 세계에 비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



-목차

1장 하메츠

2장 애니메이터의 탄생

3장 동작의 즐거움

4장 상승과 하강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5장 나우시카와 여성주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6장 부모 잃은 하늘의 아이들 〈천공의 성 라퓨타〉

7장 자연과 인간의 트라우마를 초월하는 〈이웃집 토토로〉

8장 마녀와 도시 〈마녀 배달부 키키〉의 시간, 공간 그리고 성(性)

9장 미야자키 세계의 새로운 길 〈붉은 돼지〉와 〈카사블랑카〉

10장 메시아에서 샤먼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1장 경계를 초월하는 〈모노노케 히메〉

12장 가장 흥미로운 미야자키 세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소우주의 종말

13장 성, 저주, 공동체 〈하울의 움직이는 성〉

14장 풍성하고 기묘한 무언가 〈벼랑 위의 포뇨〉와 순수한 존재들의 종말

15장 ‘끔찍한 바람’ 〈바람이 분다〉

16장 맺으며




- 감상 1. 절망 속 희망을 그린 붉은 돼지


붉은 돼지는 왠지 모를 꺼림칙한 느낌에 여태까지 미뤄왔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르코가 자신이 돼지로 변한 이유를 책에서 알았고, 그 장면을 음미하기 위해 영화를 틀었다. 다음 장면을 살펴보자.

"영원히 홀로 날아다니라고 다시 보낸 거야."

마르코의 웃음에서 절망을 감지한 피오는 소리친다.

"아니에요!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마르코는 무심하게 답한다.

"좋은 놈들은 다 죽었어."

피오는 용기 내어 마르코의 빰에 입을 맞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돼지이고 피오는 침낭으로 뛰어 들어간다. (책 53%)


이 장면에서 마지막 공산주의자가 되자는 심정으로 홀로 하늘을 나는 돼지를 만든 하야오의 절망이 가슴을 때렸다. 그 고통은 자신이 믿어 온 신념에 배신당한 사람의 아픔이었다. 공산주의는 이론적으론 좋다. 하지만 좋은 공산주의는 현실에선 다 죽었다.

이상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사람에게 그 이상이 틀렸음을 깨닫는 순간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진실이라고 믿고 주장했던 말들이 거짓으로 판명되고, 따라서 자신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결국 자신은 거짓말쟁이가 된다. 그렇기에 그는 돼지라는 벌을 받아야 한다. 좋은 사람이지만 살아남았기에.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코는 다시 한번 피오의 키스를 받는다. 그의 얼굴을 본 커티스가 놀라지만, 영화는 그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막을 내린다. 마르코는 사람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계속 벌을 받고 있을까?

그가 사람으로 돌아와 지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미야자키가 그런 자비를 마르코에게도, 자신에게도 베풀었음을 느낀다.



- 감상 2. 굼벵이를 위한 성장만화


하야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주인공처럼 만사에 무관심하고 냉소적인 아이들을 '굼벵이'라고 불렀다. 그런 굼벵이가 구원의 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힘겨운 노동, 자기 규율, 타인에 대한 친절, 도전에 대한 의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책 69% 발췌)

나 역시 중고등학생 시절을 돌이켜보면 냉소적인 굼벵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남자 굼벵이들을 군대라는 관문으로 던져 넣는다. 나 역시도 군대에서 힘겨운 노동, 자기 규율, 타인에 대한 친절, 도전에 대한 의지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치히로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세계에서 경멸받고 소외당한다. 하지만 그녀는 온천장에서 살아남아 가오나시와 함께 온천장을 나와 마법의 열차에 오른다. 기차에 오르겠다는 치히로의 결심은 자립을 향한 마지막 걸음이다. 기차에서 내린 치히로와 친구들은 제니바의 오래된 작은 집에서 고요와 평온으로 채워진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한다. 다시 돌아온 온천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은 치히로가 돼지 무리에서 부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치히로의 새로워진 시각은 성숙해졌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으며, 부모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미야자키가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던 메시지다. (책 70~71% 발췌)

나도 군대라는 낯선 환경에서 욕먹으면서 궂은일을 했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친 시간이었지만 결국 병장이 됐다. 그토록 바라던 병장이 된 다음에는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면서 쓰레기 같은 내 속에 숨겨진 가치를 찾아나갔다. 말년 병장이라는 고요와 평온의 시기를 지나 다시 돌아온 집에서는 부모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할 수 있었다. 정리하면, 군대를 통해 나라는 굼벵이 속에 잠든 나비를 찾아 나설 수 있었다.


치히로처럼, 그리고 나처럼,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굼벵이'들이 현실로 나아갈 기회를 얻기를 바란다.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추억도 쌓으며 더 나은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야오도 그런 메시지를 담아, 단지 화려한 영상미와 재미있는 만화영화가 아닌, 굼벵이를 위한 성장만화를 그렸음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 감상 3. 미친 세상에서 이상에 헌신한 이들을 위한 진혼곡


말년의 하야오는 보다 현실적인 스토리를 '바람이 분다'에서 추구한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일본이라는 미친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이상을 품은 기술자 지로가 제로센을 만들어낸다는 스토리를 그렸다.(책 82% 발췌)

자국의 후진 엔진, 조악한 부품, 열악한 환경 등 악조건 속에서 지로는 제로센이라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어낸다. 그 비행기가 전투기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전투기를 만들면서도 전쟁으로 나아가는 국가를 비판하는 모순적인 그를 난 비판할 수 없었다.


왜일까? "평범한 사람들이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책 83%)는 이유 때문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나도 그저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사랑과 성장과 재미를 추구한다는 블로그를 만들어 서평을 써도, 시대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장 나도 도움이 되는 물건을 만든다는 미명 아래 다른 물건들을 소비하고 때론 낭비하며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키는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자신의 애니메이션 역시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책 86%)


하지만 그를 비판할 수 없는 이유는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람이 분다'에서 그는 전쟁으로 나아가는 당대 일본의 거대한 흐름을 비판했다. 개인의 작고 무의미해 보이는 주장이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기 위한 시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미야자키가 지로의 입을 통해 과거에 관한 논란을 일으켜도, 방관하려는 오늘날 일본의 거대한 흐름을 혼자서는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대의 흐름이란 바위를 향해 "아름다운" 만화영화란 계란을 만들어 끊임없이 던진다. 그 비장한 의지에 가슴이 저렸다.


지로를 비판할 수 없는 마지막 이유는 자신을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사람으로 정의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상을 정의하고 그에 따라 삶을 헌신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것이 전투기였다는 사실은 비극적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이상을 좇았으나 잔혹한 살인병기를 만들어낸 그의 손은 결국 피로 물든 것과 다름없다.

이 역설적인 상황을 고민하다 픽사의 영화 "소울"이 생각났다. 뮤지션이라는 목적을 추구하다 매 순간의 소중함을 놓쳤음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조 가드너와 달리, 지로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리고 그 어리석은 모습 속에서 내가 보였다. 나도 사랑, 성장, 재미라는 목적을 정하고 이를 위해 순간의 행복을 희생해 왔다.


미야자키는 지로가 "어떤 면에서 보면 자신의 모든 걸 다 바친 비극적 인물"이며, "아름다운 걸 만들려는" 그의 동기는 미야자키가 평생 가졌던 동기와 같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바람이 분다>는 평생을 초인적으로 일만 해온 미야자키 자신에 대한 속죄이자 그를 위해 희생해 온 가족과 동료들에 대한 일종의 애틋한 사과(어쩌면 변명)다. (책 83% 발췌)

미야자키만큼은 아닐지라도, 나 역시 삶의 많은 순간들에서 가족과 친구들의 희생이 필요했었다. 하지만, 순간을 희생해서 얻은 성취는 생각만큼 달지 않았다. 오히려 허무함을 느꼈다. 그 기억을 곱씹다 보니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분다는 그렇게 이상에 헌신하다 순간을 놓친 바보들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 본깨적. 순간을 살자

본: "바람이 분다"에 담긴 이상을 추구하다 놓쳐버린 순간의 행복에 대한 속죄의 메시지.

깨: 나도 미야자키처럼 순간을 놓치고 있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적: 순간을 살자. 마음 챙김의 세 원칙인 의도와 주의, 태도를 통해 순간에 집중하자.




미야자키 하야오란 감독은 자신의 삶에서 배운 절망과 희망, 성장, 속죄 등의 메시지를 스토리에 담아,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아름다운 영상, 음악과 함께 엮어 애니메이션이란 계란들을 만들었다. 시대의 흐름이란 바위가 그 계란들에 맞아서 깨지길 바란다.


예술에는 그런 힘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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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1 원문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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