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Review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nic Cho Aug 20. 2023

신화의 종말 - 그렉 그랜딘

총점: 9/10


- 한 줄 평

변경은 계속되어야 한다. (The frontier must go on)


- 내용 정리

변경이라는 서사를 중심으로 미국의 역사를 꿰뚫은 책이다. 변경과 관련된 미국 내의 진보/보수의 관점만이 아니라 타국, 미 원주민의 관점 등 다양한 시각을 비유/반례/유사 사례 등의 기법을 사용하여 풀어낸다. 또한, 저자가 근거로 드는 탄탄한 문헌 자료들도 눈에 띈다.

그러한 자료들 중에는 한국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이 있거나 우리나라의 근현대사가 연상되는 내용도 많아서, 책을 술술 읽다가도 숨이 턱턱 막히기도 했다. 특히 초반부 서술에선 외집단에 적대적인 모습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 마음과 몸이 아파 잠시 휴식이 필요했을 정도였다.


다음으로 책의 내용을 묶어보자면, 정반합 과정의 반복으로 보고 싶다.

태초에 미국의 역사 그 시작에는 공간이 있었다. 공간이 있었기에 그를 채우는 팽창이 뒤따른다. 이 팽창에 담긴 것이 그 시대에는 너무나도 일상적이었던 인종차별(백인 민주주의)이다. 그리고 그 내용물을 정당화하기 위한 믿음으로 첫 번째 합명제인 안전밸브(변경 1)가 생겨난다.

미국 원주민과 흑인에 대한 수탈로 범벅되었던 첫 합명제는 멕시코 전쟁이란 새로운 정명제로 이어진다. 이 정명제에 대한 반발로 노예제 폐지라는 반명제(남북전쟁)가 발발한다. 이 과정에서 분열된 미국을 극복하기 위해 터너는 변경을 새롭게 정의(합명 제2)한다.

새로운 변경과 함께 미국은 스페인 전쟁이라는 변주된 정명제를 연주한다. 그 정명제가 현실의 한계에 부딪히자 이를 대변하는 국경(반명제 2)이 부상한다. 반발하는 두 명제를 하나로 묶은 새로운 합명제가 FDR의 뉴딜이다.

뉴딜에 자신감을 얻은 미국은 국제주의라는 또 다른 정명제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이 국제주의는 베트남 전쟁이란 한계에 부딪힌다. 또다시, 미국은 변경의 서사에 기대어 레이거노믹스라는 합명제를 도출해 낸다.

레이거노믹스란 믿음은 초강대국으로 거듭난 미국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이끈다. 이 나프타라는 정명제가 맞닥뜨린 현실을 반영하는 반명제가 장벽으로 대변되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이후, 책을 마무리하며 저자는 변경이란 신화는 끝났다고 예상하고 사회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라는 새로운 합명제가 도출되기를 기대한다.


다만 이렇게 역사를 통합하는 서술 속에 담긴, 대중과 유리된 지식인의 글에서 이따금씩 접하는 비관주의는 이 책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오늘날의 역사에 가까워질수록 저자가 균형적인 시각을 유지하기보다는, 다소 편중된 시각을 보임을 문장에서 읽을 수 있다. 또한, 저자가 놓친 몇몇 맹점이 보이는데 이는 감상에서 보다 자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미국의 역사를 꿰뚫는 변경이란 서사가 담긴 목차로 내용정리를 마무리한다.


프롤로그 앞으로 달아나다


01 그 모든 공간

02 알파와 오메가

03 백인 민주주의

04 안전밸브

05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었습니까?

06 진정한 구원

07 바깥 가장자리

08 1898년의 약속

09 변경의 요새

10 심리적 왜곡

11 금빛 수확

12 악령의 흡입관

13 더, 더, 더

14 새로운 선취자

15 핏빛 자오선을 건너


에필로그 미국사에 장벽이 갖는 의의

출처와 그 밖의 문제

참고문헌




- 감상_서론: 우리의 서사는?

변경이란 서사를 합리화하는 과정의 반복인 미국의 역사처럼, 한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가 있을까? 6.25 전쟁 이후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단어로는 반공주의와 새마을 운동이 떠오른다. 그 뒤에는 민주화 운동이 뒤따른다. 그러면 그다음으로는?

내 생각으론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회사 동료 분께 물어보았다. 그분의 답은 문화적 획일화였다. 그 말뜻을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문화가 있었지만 그 속에는 누가 더 뛰어난지 우열을 가리는 경쟁 요소가 담겨있다'로 해석해 보았다.

그러자 대한민국의 역사를 관통하는 서사로 단일주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한중일 3국의 문화에도 담겨있는 동아시아적인 서사이기도 하다. 그러자 그 서사로 인해 겪고 있는 오늘날의 문제들로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 혹은 동아시아의 단일주의라는 서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 새로운 서사를 모색하기 위해 우선 변경이라는 미국의 서사에 관한 저자의 주장을 다시 살펴보자.




- 감상_본론 1: 저자의 맹점

변경에 관한 저자의 맹점으로 크게 3가지가 떠오른다.


우선 미국 내 서술과 관련된 맹점을 짚어주는 "대중은 멍청한가"의 다음 문장을 되새겨보자.

"달리 말하면, 우리가 그릇되거나 사악한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우리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된 믿음을 갖는 이유가 그릇되고 사악한 결정을 정당화하려 하기 때문이다."

변경의 신화가 끝났다는 저자의 예측과는 달리 미국인이 정당화를 원하는 한, 변경이란 신화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현 국제정세를 고려해 보면, 중국의 부상은 이에 대응하고자 하는 미국에 변경의 서사가 새롭게 자라날 양분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인이 원하는 한, 변경은 다시 태어날 것이지만 저자는 이를 애써 외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으로 미국 외 서술과 관련된 맹점은 모든 문제의 원인을 미국의 시각에서만 바라보는 점이다. 이념전쟁 끝에 공산화된 베트남과 그렇지 않은 우리나라의 사례처럼, 미국과 상호작용한 타국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다. 또한, 미국과의 교역을 통해 부는 다양한 국가들에게 흘러들어 갔다. 그러나 이를 자국의 발전에 효과적으로 이용했는지는 미국의 시각에서만 바라볼 수 없는 문제다. 이 차이를 짚고 넘어가지 않음으로써 저자는 너무 과한 책임을 변경으로 돌렸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변경과 변경에 담긴 백인 민주주의는 구별해야 한다는 점을 들고 싶다. 미국 역사가 시작할 즈음에는 구별이 어려웠을 수 있으나, 저자의 말처럼 시간이 흐르며 변경의 뜻은 변해왔다.

"변경이라는 개념은 경제학, 농업과학, 정치학, 사회학, 심지어 심리학까지 거의 모든 학문에 편입되었다."

"<<과학, 끝없는 프런티어>>는 원자폭탄의 연구/개발을 '개척자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내륙'으로 묘사했다."

"우리 앞에는 새로운 정신의 변경이 있습니다."

따라서 변경과 변경에 담긴 백인 민주주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변경은 성장이고 백인 민주주의는 분배다. 성장과 분배는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주제이나 분명히 다른 범주인 것처럼, 변경과 변경에 담긴 인종차별을 구별하고 싶다. 왜냐하면 변경에 담긴 확장과 섞물리기의 힘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변경이란 단어는 지리만이 아닌 경제, 과학, 더 나아가 인간의 잠재력을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 감상_본론 2: The frontier must go on.

변경은 계속되어야 한다. 인류의 변경은 확장되어야 한다. 단, 미국인 혹은 백인의 개척 정신이 아니라 인류의 개척 정신으로 말이다. 인종차별 대신 보편적 인간성을 변경의 내용물로 담아야 한다.

개척 시대의 변경에 담긴 서사는 그 당시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던 인종차별이었기에 그 비극이 잉태되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변경은 넓히되 그 비극의 씨앗인 인종차별 대신 보편적 인간성을 내용물로 담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 답의 구현방안을 찾기 전에, 보편적 인간성을 선택한 이유부터 살펴보자. 우선 "자각"과 "비판단적 호기심"이라는 "최악을 극복하는 힘"에서 배웠던 원리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과 "패거리 심리학의 문장"들을 통해 상기해 보자.


우선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자각"해보자.

"공평한 세상이라는 사고방식을 깨뜨리면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고쳐야 할 책임이 그 책임을 마땅히 져야 할 존재에게 돌아간다. 바로 우리다."

그렇다. 우리가 만든 세상이다. 세상의 불행과 불평등을 고쳐야 할 책임이 있는 존재는 바로 우리다. 책임을 남에게 돌리지 않고 나에게 있음을 먼저 자각하자.


다음으로 "비판단적 호기심"으로 우리를 자세히 관찰해 보자.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우리 인간은 외집단에 적대적인 성향을 띠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요컨대 우리는 침팬지보다 보노보에 가깝고, 폭력적이고 편협하지 않고 평등주의를 지향하는 수렵 채집 부족에 가깝다(바다소와 멧돼지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또한 사냥이나 전쟁보다 공동 양육이 초기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런 전문가들이 틀렸더라도, 즉 우리에게 평등주의적 성향보다 부족적 성향이 더 강하더라도 인간의 가장 뛰어난 면은 무한한 적응성, 즉 누가 ‘우리’이고 누가 ‘그들’인지를 규정할 때 보여주는 융통성이다. 우리는 초사회성이나 내집단을 결성하려는 경향을 벗어나지 못할 수 있지만, 훈련을 통해 내집단에 초대할 만한 사람을 알아낼 수 있다."

그렇다. 우리는 다른 인종에 적대적인 성향을 띠도록 진화되지 않았다. 만약 이런 주장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새로운 내집단을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자각"과 "비판단적 호기심"은 우리를 다음과 같은 "지혜"와 "용기"로 이끈다.

"교훈 4 - 더 포용적인 내집단을 구축하라. 우리는 침팬지보다 보노보에 가깝고, 꿀오소리보다 꿀벌에 가깝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가 내집단과 공유하는 결속력을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야 한다. 내집단에 충실하다고, 반드시 외집단에 적대적일 것이라 속단할 필요는 없다. "

"우리가 조금이라도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동지애를 우주의 창백한 푸른 점, 이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로 확장할 수 있다."

그렇다. 우리가 보편적 인간성이라는 전지구적 서사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이제까지 읽어왔던 책들은 내게 가르쳐왔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사피엔스의 멸망"의 '벼랑세'도 함께 생각난다.



이 보편적 인간성이란 원리를 어떻게 내게 적용할 수 있을까? 우선 내게 물어보자.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한국인이란 관념에 사로잡힌 민족주의자인가? 이젠 아니다. 책을 통해 보편적 인간성이란 큰 그림을 배웠고 받아들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디테일을 모른다. 그렇기에 책에서 배운 원리를 내 삶에 적용해보아야 한다. 우선, 저자가 언급했던 사회민주주의와 관련된 내 경험을 기억에서 꺼내보자.




- 감상_본론 3: 보편적 인간성의 구현.

저자처럼 나도 사회민주주의를 대안으로 여기며, 아내에게 '한국은 왜 스웨덴과 같이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던 적이 있다. 아내의 답은 "한국은 스웨덴보다 인구가 너무 많다."였다.

이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나는 다양한 다른 이유들을 찾게 되었다. 그 이유들에 공통적으로 담긴 맥락을 심플하게 "한국인 다수는 사회민주주의란 믿음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정리한다. 우리나라의 정당지지율만 보아도 그 근거로 충분하다.

그럼 미국은? 마찬가지로 아직 다수의 미국인이 사회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선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다른 서사가 필요하다.



결이 다른 서사인 "마음 챙김"을 통해서 내면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포용하며 인종차별 대신 보편적 인간성이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음 챙김"은 미국인에게도 우리에게도 공통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의문이 드는가? 인종차별 대신 보편적 인간성을 구현하는 방법이 생뚱맞게도 마음 챙김이라니? 이에 대한 근거로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의 문장을 제시한다.

"이성이 신의 속성을 반영한다는 전제를 수용하는 것이 세속적 주제로 향하는 문을 여는 행위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성을 통해 신의 피조물을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해칠 수 있다는 점과,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도 몰랐다."

이성을 수용함으로써 신에서 벗어나 세속적 주제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중세 신학자들은 몰랐다. 마찬가지로, 마음 챙김을 수용함으로써 변경이 인종차별에서 벗어나 보편적 인간성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이 구현 방식을 설명해 주는 책이 "마음 챙김"이다.

"마음 챙김은 우리가 현명하게 선택하고 인생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상황을 명확하게 보게 해 준다."

변경을 넓히는, 다시 말해 자신의 잠재력을 넓히고 생산성을 높여 인생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마음 챙김 혹은 마인드 피트니스를 익힌다면 어디로 이어질까?

"자기 자비의 세 가지 요소: 1. 마음 챙김, 2. 호의, 3. 보편적 인간성"

마음 챙김은 자기 자비로 대중을 이끌며, 이는 자연스레 호의와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깨달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 감상_결론: 서사의 대체.

그날이 오면 변경의 내용물은 인종차별이란 서사에서 벗어나 보편적 인간성의 서사로 대체될 수 있다고, 그것이 서사의 특징이라고 "다시 보는 5만 년의 역사"가 일러주었다.

"하나의 서사가 다른 서사에 승리를 거둘 수 있는 수단은 물리적 무기가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내는 솜씨다."

"서사의 생명력은 정확성이 아니라, 적합성이 의심받는 순간부터 약해지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서사도 우열을 나누는 단일주의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포용하는 보편적 인간성으로 나아가며 잠재력도 덩달아 늘어나지 않을까?




적고 보니, 이 글은 당구의 빈쿠션과 유사한 주장 같다. 빈쿠션처럼 허공을 겨냥하는 듯한 오늘의 주장은, 그저 지금의 내가 가진 지식을 기반으로 한 논리적 추론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틀릴 수 있고 아마도 틀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서평을 통해 지금 오늘의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를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의 문장으로 대체하며, 깊은 사색에 잠기는 시간을 건네준 책 "신화의 종말"을 읽는 경험을 선사해 주신 모든 인연에 감사하다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믿는 대신 가용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론을 끌어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 뇌는 신념과 결혼해 버렸다. 그래서 신념과의 이별이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반면 결론과의 잠자리는 한 번 만나고 헤어지는 가벼운 만남에 더 가깝다. 결론을 끌어내는 행위의 아름다움은 새로운 데이터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결론으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로 브런치스토리로 이전]

[2021/09/05 원문 작성]

매거진의 이전글 사피엔스의 멸망 - 토비 오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