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BookReview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nic Cho Oct 09. 2023

존 메이너드 케인스 - 재커리 D. 카터

총점: 9.5/10


- 한 줄 평

위대한 이의 삶과 그의 시대가 주는 울림. (Feat. Memories https://youtu.be/SlPhMPnQ58k)


- 내용 정리

위대한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케인스의 삶을 다룬 책이다. 그의 삶의 세세한 순간들이 주는 울림에는 감히 내가 추려낼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중요한 디테일들이 담겨있다.


그나마 책의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보자면, 1~5장까지는 블룸즈베리로 대표되는 케인스의 초기 삶으로 볼 수 있다. 6~12장은 "일반이론"과 같은 자신의 철학을 발전시키고 이를 현실에 구현한 시기를 다룬다. 마지막 13~17장은 케인스 사후 "케인스주의"가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다룬다.


책에 담긴 무게감과 디테일한 통찰력, 비전 등 케인스의 삶을 통해 풀어낸 성장과 변화의 이야기는 정말 뛰어난 이 책의 장점이다. 다만, 긴 길이에 비해서 위트와 농담의 비중이 적었던 점과 주로 케인스 경제학의 시각 위주로 서술된 점이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100년여간의 역사를 한 사람의 삶과 그의 철학으로 엮어낸 책은 내 시각을 한층 더 넓혀주었기에 정말로 감사하다.


그의 삶과 철학이 담긴 목차로 역량부족이 여실히 느껴지는 내용 정리를 마친다.


목차


감수자의 글

들어가며

CHAPTER 01 케인스, 금을 구하러 런던으로 오다

CHAPTER 02 피로 물든 돈

CHAPTER 03 실망으로 점철된 파리평화회의

CHAPTER 04 평화의 참담한 결과

CHAPTER 05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돈의 세계로

CHAPTER 06 사회주의로의 입문

CHAPTER 07 대공황

CHAPTER 08 불사조 케인스

CHAPTER 09 희소성의 종말

CHAPTER 10 혁명의 도래

CHAPTER 11 전쟁과 반혁명

CHAPTER 12 좋은 삶을 위한 열사

CHAPTER 13 보수 특권층의 반격

CHAPTER 14 풍요로운 사회에 가려진 민낯

CHAPTER 15 끝의 시작

CHAPTER 16 19세기의 부활

CHAPTER 17 제2의 도금시대

글을 마치며




- 감상부

정말 다양한 생각이 든 책이었다. 그를 다 적고 싶으나, 그러면 두서없이 횡설수설한 글이 될 뿐이기에 다시 읽어볼 때에도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추려보려 한다. 우선 책의 내용을 하나, 다른 책과 연관되는 내용을 하나, 그리고 별개로 책을 읽는 동안 만났던 사람과의 추억을 하나 담아야겠다.



감상 1: 케인스의 삶과 그의 비전, 그리고 그것이 내게 던지는 질문.

케인스도 대영제국과 블룸즈버리라는 그의 거품 같은 세계관 안에서 자랐던 사람이었다. 식민지라는 영국이 가진 불합리함을 모르고 그 귀족문화를 칭송했던 거품 같은 관념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대전을 거치며 현실과 기존 세계관과의 괴리를 느끼자, 자신의 믿음과 논리를 버리고 과감하게 현실을 반영하는 자신의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철학을 주장하고 전파하고 설득한 끝에 뉴딜정책 등을 통해 현실을 바꾸어낸 선동가이자 혁신가, 통합가였던 사람이다.


그의 철학은 "좋은 삶", 혹은 "위대함"을 추구하는 이상이다. 단순히 효율성이나 물질적 풍요를 넘어서 예술이나 품격, 선함을 추구하는 삶의 태도다. 그 이상주의가 주는 울림과 그 비현실성에 가슴이 복잡해진다. 나는 케인스처럼 뜨거운 이상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인가? 아니다. 왜냐면 내가 겪은 현실 속 사람들이 그런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흑백논리처럼 단순하거나 돈처럼 숫자로 보이는 가치에 끌리지, 좋은 삶이나 위대함 같은 복잡하고 모호한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불확실한 개념이나 복잡해서 이해하는데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을 꺼리는 것이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을까? 처음 떠올랐던 생각은 "모두를 움직이는 힘"에서 다뤘던 비전이었다. 하지만, 비전도 그 자체를 수치화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기각되었다. 사람들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비전과 유사하면서도 수치화될 수 있는 개념이어야했다. 그런 의도를 품고 내 삶의 순간들을 되돌아보았더니 몇몇 사례가 떠올랐다. 우선, 논문의 인용 지수도 연구의 가치를 수치화한 개념이었다. 좀 더 일상적인 예로는 유튜브의 구독자 수나 조회 수도 영향력을 수치화한 개념이었다. 이미 사람들은 자신이 품은 비전을 수치화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돕는 도구를 만들어놓았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개념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 권력의 원리에서 배운 철회와 확대 전략을 더한다면 오늘날 자본주의가 가진 힘을 빼서 "좋은 삶"이란 이상에 더할 수 있을까? 우선 돈이 가진 가치와 그에 대한 통제권을 줄여야 할 것이다. 논문이나 유튜브 같은 다른 가치를 인용 지수나 조회수 같은 방법으로 부각해 돈에 대한 관심을 줄여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관점으로 내 삶을 되돌아보며 익숙한 경험에서 새로운 면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던 중, 금본위제로 인한 경제 문제나 "클린턴이 2000년에 예상했던 중국의 정치개혁도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같은 문장에서 정치가 경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제적인 평가에서 정치 발전은 뒤져있으나 경제 발전은 앞섰다는 말을 듣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 속에서 미국의 입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물론 우리나라의 역할이 가장 크겠으나, 미국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당당히 경제력을 기준으로 선진국 반열에 든 지금부터는 정치의 발전이 없다면 더 성장하기 어렵지 않을까란 우려가 들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생각은 정치권력의 개혁으로 이어져 "권력의 원리"에서 배웠던 개념을 점검해 보게 되었다.

권력은 권위와 서사로 유지된다. 우리는 정치 분야에서 무의식적으로 권위에 복종하거나 기존 서사를 받아들이지는 않는가? 다음으로 선동과 혁신 통합은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책에서 말했던 기술이 사회를 바꾸고 있는 모습들은 보인다. 마지막으로 권력을 공유하거나 책임을 강화하는 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하는 면들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웹툰 "송곳"의 명대사가 있다. "섬에서 탈출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다른 섬의 존재다." 다른 섬의 존재를 알리는 것도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시도 중의 하나이지는 않을까?



감상 2: 다른 책들과의 짧은 연결

케인스를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난 책은 바로 이전에 읽었던 "권력의 원리"였다. 돈(3대 경제 주체: 가계-기업-정부, 삼권 분립인 입법-사법-행정), 케인스의 설득 전략, 클레망소의 권력관 등의 책의 많은 순간들에서 그 책이 떠올랐다. 또한, 케인스가 성장하는 모습에선 "주의-적극적 참여-에러 피드백-통합"이란 개념을 알려준 "우리의 뇌는 어떻게 배우는가"가, 전쟁 후 대공황을 넘어선 이론에서는 전쟁을 넘어서는 화합을 보여준 "아인슈타인의 전쟁" 속 에딩턴이, 자신이 경멸하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케인스의 모습에서는 "미야자키 월드"에서 다뤘던 "바람이 분다"의 지로가, 예술을 추구하는 이상에서는 "혁신의 뿌리"가, 케인스의 철학이 미국에서 변질되는 모습에선 "니체의 삶" 속에서 니체의 철학이 엘리자베스에 의해 변했던 일화가 생각났다.



감상 3: 크리스와의 대화.

책을 읽는 동안 만난 크리스라는 친구와 다뤘던 대화를 담아놓는다. 그는 많은 고민을 하고 낙관적인 희망을 가진 이였다. 또한, 희망과 현실의 마찰로 인한 그의 고뇌에도 공감한다. 또한, 공감에 기반한 소통 능력이 깊은 교감을 위해 중요함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나눴던 대화를 종합해 보면, 지금 내가 가진 생각이 독특한 생각이 아닌, 배움을 추구하고 성장하는 삶을 사는 이라면 그러한 과정에서 비슷한 정보를 얻고 유사한 깨달음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보편적인 산물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으며 가슴에 와닿았던 문장들을 담는다. 관점을 넓히고 기존의 관념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도와준 책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서평을 마무리한다. 케인스를 기리며, 그가 생각나는 Memories를 듣자. (https://youtu.be/SlPhMPnQ58k) 


"종국에는, 모두가 죽는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23년 12월)

 

종국에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 (1942년 4월)"


"오늘날 우리가 힘든 진짜 이유는… 세계관의 차이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와 외교정책의 주요 목적이 달라지는데 먼저 자유주의나 급진주의는 평화, 자유로운 무역과 교류, 경제적 부를 중시하고 또 다른 세계관인 군국주의나 외교주의는 권력, 명성, 국가나 개인의 승리, 문화의 도입, 세습적, 인종적 편견이 앞선다."


"케인스는 역설로 점철돼 있었다. 그는 무용수와 결혼한 관료이자 한 여성을 가장 사랑한 동성애자, 제국주의에 맞선 대영제국의 충직한 공무원이자 두 번의 세계대전에 자금 조달을 도운 평화주의자, 현대 민족국가의 지식구조를 마련한 국제주의자이자 경제학의 토대에 이의를 제기한 경제학자였다. 모순투성이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인간의 자유와 정치적 구원을 위한 일관된 비전이 있었다. 케인스는 이런 사상들을 하나의 궁극적 철학으로 집대성하지 못한 채로 생을 마감했다. 《일반이론》에 나타난 엄청난 열정도 케인스가 꾀했던 더 방대한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이 책은 케인스가 후세에 남긴 에세이, 팸플릿, 편지, 책의 내용을 취합한 것으로 상황은 다를지라도 우리 시대에 여전히 많은 의미를 전한다."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식을 가늠할 수 있는 단순한 방정식은 없었다."


"멤버들은 케인스와 그들 사이에 생긴 커다란 사회적 격차를 알 만큼 똑똑했고 그의 출세를 부러워할 만큼 불안했다."

“케인스는 블룸즈버리의 인텔리 멤버로서는 한참 멀어졌고 진지한 창작 작업에 훨씬 더 전념하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범죄자라 멸시하는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네.”


"케인스가 인생에서 복잡하게 뒤얽힌 돈과 숫자들을 마주치면 으레 그랬듯이 배상금을 둘러싼 갈등 역시 실상은 숫자 싸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쟁의 의미, 정치적 발전의 한계, 인간 자유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케인스가 쓴 이 얇은 걸작은 오늘날에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데, 이는 책에서 다뤄진 통계 기법이나 세부 분석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제시한 군중심리가 20세기의 큰 비극들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1세기의 거대한 쟁점들도 조금만 변형하면 케인스의 해석을 적용할 수 있다. 즉, 세계대전을 2008년의 경제위기로 바꾸고, 전쟁 부채와 배상금을 유럽의 긴축예산과 미국의 주택 압류 사태로 바꾸면 호전적인 극우 민족주의가 현대에 어떤 형태로 발현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케인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생을 더 품격 있게 만드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할 일은 그런 품격 있는 것들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진실을 돌아보지 않는 한 세상에 희망은 없네."

"좋은 삶을 사는 자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또 다른 자의 능력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세상일은 위에서 지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서 개인의 이해와 사회의 이해는 항상 충돌한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지혜를 창조해야 할 때다. 현재의 우리를 만든 것들에 문제를 일으키고, 위험하고, 불복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데


"케인스는 이 모든 주장이 이론상으로는 타당할 수 있지만 실제 현실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주장했다."


"일이 제대로 되려면 모두가 함께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케인스는 알았다. 공동체의 유대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이 사랑하는 이를 구하려고 함께 발 벗고 나서는 것처럼 시민들 모두가 사회가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앞장서야 했다. 그러려면 경제적 지침과 조정이 필요했다."


"정치권력 없이 돈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케인스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경제사를 정치사로 보게 되었다. 즉 제국이 흥망성쇠 하면서 정치권력에 의해 정복하고 인수한 재물의 이야기로 본 것이다. 더 나아가 경제학은 확고부동한 자연의 법칙에 대한 냉혹한 과학적 탐색이 아니고 인간이 택한 정치 방식의 동향에 대한 일련의 관측일 뿐이었다. 학문으로서 경제학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에 맞춰 나가야 했고, 그런 만큼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케인스는 또 경제 정책의 목표를 열정적인 지적 문화의 기반을 확립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에게 경제적 승패를 결정하는 기준은 성장이나 생산성이 아니라 “위대함”이었다. 예컨대 그에게는 셰익스피어처럼 경제 정책이 지원해야 할 미학적 문화라는 객관적인 달성 지표가 있었다. 이는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이 향후 수십 년간 발전시킬 사상에 정면 대치되는 인간 자유에 대한 개념이었다."

"케인스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제시했던 경제사상을 스스로 내던지고 있었다. 1919년에 그는 절약과 금욕을 훌륭한 프로젝트에 투자할 자본금을 마련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미덕으로 칭송했다. 1930년대가 되자 케인스는 지나친 절약이 고상한 척하는 빅토리아 시대의 특징처럼 삶의 재미를 앗아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사회의 에너지를 빼앗고 발전을 저해할 수 있었다. “세계의 7대 불가사의가 절약과 금욕에 의해 만들어졌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비 부족으로 표현되는 과도한 절약은 경제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케인스는 <네이션 앤드 아테네움> 독자들에게 “지금 세계를 시끄럽게 하는 두 개의 대척점에 있는 비관주의적 오류는 모두 우리가 사는 동안 그 잘못이 밝혀질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상황이 너무 나빠서 폭력적인 변화밖에 해법이 없다는 혁명가들의 비관론과 우리 경제와 사회생활의 균형이 너무 위태로워서 실험을 감행해서는 안 된다는 수구론자들의 비관론을 말한다”라고 전했다."


"만약 케인스의 사상이 정말 그렇게 뛰어나고 뿌리 박힌 계급적 이해관계가 그것의 실행을 가로막지 않았다면, 왜 아무도 그 사상을 채택하지 않았을까?

이에 케인스는 “왜냐하면 전문가든 일반인이든 아직은 내 생각이 옳다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회의의 실패로 권력자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회의감이 높아지고 존경심은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커가는 실망감은 최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듯 민주주의가 직면한 심각한 위기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래서 케인스는 스스로 신비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그는 경제 문제를 설명하던 방식을 바꾸었다."

"그래서 케인스는 환심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폐론》에서처럼 은행들이 저축과 투자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하지 않았다. 대신 금융 시스템을 완전히 우회하는 전략을 꺼냈다."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앨빈 한센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한 이론을 끝장내려면 다른 이론이 필요하다.” 케인스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그리고 신성한 경제학자들에게 자신의 새로운 신조를 설득하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케인스는 단순히 현대 경제학을 창조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지적 권력 구조의 정상에 자리매김하면서 현재 경제학자들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이론》이 어렵고 모호한 이유는 케인스가 그렇게 의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고약한 표현으로 인해 책 내용을 해석하는 작은 그룹이 생겨났고, 그들 중에는 《일반이론》의 내용들을 해석하고 단순화하는 작업만으로 독특한 경력을 쌓고 노벨상을 수상하는 이들마저 생겼다. 이런 명성 덕분에 케인스 경제학자들은 정치가로서 자격을 갖추게 되고 이전까지는 장군이나 은행가, 그들의 후계자 차지였던 권력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부패가 정말로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 제거되고 있었다."


"프랭클린의 대통령 취임사 중 오늘날 가장 많이 기억되는 것은 첫 구절이다. “우선 저는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대상은 두려움 그 자체라는 제 굳은 믿음부터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막연하고, 이유도 없고, 부당한 두려움이야말로 후퇴를 전진으로 바꾸는 노력을 마비시키는 테러와 같습니다.”"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은 서구 문자로 쓰인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홉스, 에드먼드 버크, 칼 마르크스가 남긴 기념비적 업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회, 정치사상의 걸작이다. 또한 민주주의와 권력의 이론이자 심리학과 역사적 변화의 이론이며 사상의 힘에 대한 러브레터다. 《일반이론》은 권력의 필요성을 증명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 또 수 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이 고수해 온 생산 수요와 부유층과 권력층의 혜택 증가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현재 경제의 주요 쟁점을 불평등의 완화로 재편했다는 점에서 해방의 책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이 책은 난해한 문장과 촘촘한 방정식으로 표현된 참신한 관념으로 쓰인 답답한 책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번영은 인류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에 의해 조정되고 유지되어야만 한다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명확하고 단순한 진리를 증명해 냈다는 점에서 천재성이 엿보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의 중요성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미래의 연결고리에서 비롯된다.”


"케인스는 각 사회가 직면한 주된 경제 문제는 더 이상 자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의 문제라고 믿었다."

"케인스는 1939년 <뉴 스테이츠맨 앤드 네이션>에 낸 논평에서 이런 말을 했다. “문제는 우리가 19세기의 자유방임주의 국가에서 진보적 사회주의 시대로 나아갈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진보적 사회주의란 우리가 공동목적을 위해 조직적인 공동체로서 행동하고 사회, 경제적 정의를 증진하는 동시에 개인의 권리인 선택과 신념, 마음, 표현, 또 사업과 재산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케인스는 인간의 본성을 자신이 믿는 대로 인식했다. 즉 인간이란 조금은 이기적이고, 약간의 두려움이 있으며, 사회 발전에 관심이 있고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꺾어버릴 수 있다고 여겼다."


"《일반이론》은 비극적일 만큼 불충분한 자원은 사회적 상황과 구조의 불가피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그보다는 사회가 어쩔 수 없이 정치적으로 택한 결과이다."


"자본가의 기득권은 인류 역사의 위대한 장치들에 대한 통치권을 지배하지 못했다. 그런 통치권을 지배한 것은 국민의 신념과 사상이었다. 그들은 폭력적이고 혁명적인 변혁에 의존하지 않고도 지난 20년간 벌어진 고난과 역기능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전부는 사상에 의한 설득이다."


"명시적으로 “군국주의”와 싸우기 위해 발전된 케인스 사상이 영원히 무장된 세계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가 돼버렸다."


"게다가 58세의 케인스는 예민하고 참을성이 없었던 15년 전의 재무부 관리와는 다른 사람이었다. 케인스의 친구들도 입을 모아 그의 성격이 원만해지고, 변덕스러웠던 기질도 없어졌으며, 칼날 같은 공격보다 부드러운 표현을 더 많이 쓴다고 말했다. 리디아와 함께 런던으로 향하는 케인스는 유난히 활기찼고 전시 외교에 대해서도 낙관적이었다."


"그(하이에크)는 “빈곤으로부터의 자유”는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의 사상이라고 강조했다. 그것은 나치즘에 대항해 자유주의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아니라, 다른 정치적 권리를 짓밟은 폭력적 독재정권에 의해서만 효과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 나치즘과 소련 공산주의의 공통 요소라는 것이다."

"“사회주의는 개인 삶의 모든 영역을 정부가 완전한 통제 한다… 이 두 체계 간에 타협은 불가능하다.” 당신은 자유방임주의를 택할 수도 있고 소련 같은 사회를 택할 수도 있다. 그 중간은 없다."

"케인스는 세상 전체가 블룸즈버리처럼 된다고 해도 잃을 게 없었지만, 하이에크에게 귀족은 본질적으로 배타적이었다. 모두가 귀족이 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따라서 케인스는 엘리트층의 안락함과 특권을 민주화시키려 애썼지만 하이에크는 귀족 계층과 일반 대중의 사회적 거리를 강화하고 싶어 했다. 하이에크가 믿었던 것은 불평등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었지만 케인스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교육을 통해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케인스는 일상생활과 마찬가지로 국제 질서에서도 거지가 진짜 악당인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에게는 진지하고 훌륭한 오락거리에 대한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고 그런 대중이 엄청나게 많다는 겁니다."


"세상은 그가 1930년대에 꿈꿨던 것보다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유토피아에 더 가까워져 있었다.

케인스의 예술 사상은 정치 사상가로서 그의 발전 과정을 뒤따랐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군국주의적 폭동을 막기 위해 통제되어야 하는 위험한 변수가 아니었다. 그들은 문명의 위대함을 받치는 기둥이기도 했다. 만약 일반인이 교향악을 감상하는 법을 스스로 배울 수 있다면, 그는 책임감 있는 태도로 권력을 행사하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현명한 경제 관리가 예술적 전성기를 이루는 선순환을 창조했고, 이는 정식적 여유로움을 촉진하면서 더 나아가 공동 번영이라는 명분 안에서 정치적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다."


"뉴턴 이후로 세계 정치와 지적 발달에 케인스만큼 심오한 영향을 미친 유럽인은 없었다. <타임스>는 케인스의 부고 기사에 그를 “애덤 스미스 이래 가장 위대한 경제학자”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극적 찬양도 스미스에 비견할 케인스나 프톨레마이오스에 비견할 코페르니쿠스처럼 하나의 패러다임을 다른 패러다임으로 바꾼 표현일 뿐 케인스 같은 사상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케인스는 자신의 경제학 연구에 심리학, 역사, 정치 이론을 융합했고 경제학 분야에서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금융 상황을 주시했다. 케인스처럼 활기차고 다방면에 특출한 삶을 산 사람도 드물었다. 그는 비트겐슈타인과 맞먹는 철학자였고, 두 번의 세계대전을 쥐락펴락한 재무계의 영웅이었으며, 위대한 계몽주의 인물들과 고대 화폐의 특이점을 발견한 역사가이자, 대중의 마음을 끓어오르게 하고 고무시킨 언론인이면서, 유명한 예술운동의 후원자였다. 그는 관대하고 마음이 따뜻하며 설득력이 강한 만큼, 허영심 많고 옹졸하며 근시안적이고 몰인정했다. 케인스와 만나본 사람 중 그에 대한 첫인상이 변하지 않은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심지어 그의 사상적 적수들도 케인스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그를 애도했는데 브레튼우즈 여행 때 리오넬 로빈스가 쓴 일기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경제학은 물리학과 다르지만, 물리학조차 그것이 예술과 가장 비슷할 때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직면한 실질적인 경제 문제가 정말 희소성이라면 “배고픔과 추위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줄어들 수 있도록 모두가 감자와 콩과 석탄을 생산해야만 했다.” 하지만 산업 전체가 유흥과 천박한 활동에 몰두하고 있었고, 광고 산업은 부자들에게 잉여 재산으로 즐기라고 부추기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전쟁과 평화의 철학자인 케인스는 재정 치료사 케인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1960년대 말에 케인스주의 경제학은 그 이름이 대표했던 철학 사상과는 괴리된 건조하고 기술적인 경제 이론이 된다."


"다만 두 사람이 자유를 정의하는 방식이 달랐을 뿐이다. 케인스가 말하는 경제적 자유에는 물질적 안정과 블룸즈버리가 추구한 좋은 삶의 요소들이 포함돼 있었다. 반면 프리드먼에게 경제적 자유는 시장경제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만을 의미했다."


"2008년과 2009년의 구제금융은 세계 금융 시스템을 구제했다. 그러나 미국의 중산층은 구제하지 못했다."


"케인스는 《일반이론》의 결론을 불로소득자는 안락사시켜야 한다는 말로 끝맺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권위주의로 침몰하고 있는 이 무시무시한 세계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약 75년 전에 제안한 메커니즘을 통해 반전될 수 있을 것처럼 행동한다. 현재의 경제 체제는 너무나 많은 돈을 극소수 사람들 손에만 쥐여 주지만 이를 바꿔서 그들과 그들 자녀들을 위해 사회를 개선할 수 있을 것처럼 무엇인가를 조직하고, 계획하고, 투표한다."


"하지만 그런 낙관주의는 일상생활에 생명력을 주는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해도 계속 살아가도록 활력을 주고, 우리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때도 사랑에 빠지게 하며, 이런 힘든 시기에도 우리는 일생을 충만하게 채워줄 충분한 아름다움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믿게 하면서 아이들을 세상에 내놓을 용기를 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케인스를 다시 찾게 된다. 이는 단지 적자재정이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거나 금리가 유동성 선호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으며, 갈 곳이 미래밖에 없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모두가 죽는다. 하지만 종국에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로 브런치스토리로 이전]

[2021/11/21 원문 작성]

매거진의 이전글 권력의 원리 - 줄리 바틸라나, 티치아나 카시아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