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한 것들로도, 사람은 살아진다

그래도 살다 보면

by 덕용안

그래도 살다 보면


지금의 나는 괜찮다. 이것을 먼저 말하고 싶었다.

이야기가 중간에 좀 무거워지는 구간이 있어서


지금 내 방에는 침대, 티비, 옷이 전부다.


이것들만 남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는 그 이유 쪽에서부터 시작된다.


공무원 시험을 그만두고 카페를 하려고 했다.

부모님도 함께 준비했고

바리스타 시험에도 합격했다.

거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어느 날 누군가 부모님에게 커피 장사는 남는 것이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설득당하셨고, 나는 카페를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접었다.


대신 갈빗집이었다. 부모님이 자주 가는 서울 갈빗집

양념이 맛있는 집이었고, 사장과 친분도 있었다.

거기 가서 양념부터 배워오라고 하셨다.


일주일을 매일 새벽에 청량리행 기차를 탔다.

오전에 그 집 주방에서 양념하는 법을 배웠다.

새벽 기차 안이 어떤 빛이었는지 냄새가 어땠는지 그게 이상하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고 갈빗집을 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가게를 열었지만. 공부만 했던 나는 세상 물정을 몰랐다.


처음에는 주방 이모랑 충돌했다.

꼴에 사장이라고 소리도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못난 짓이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장사가 됐다. 그러다 손님이 줄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왔다.

손님이 더 줄었다.

버티지 못했다.


건물 1층이었는데 절반이 불법 주차장이었다.

계약할 때 설명을 듣지 못했다. 시청에서 연락이 왔고, 재판을 했다.


우리 편이 아니었다, 재판은.


모르는 상태로 결정했고, 그게 끝이었다.


갈빗집을 나와서 통닭집을 했다.

장사가 되지 않았다.

남는 것은 빚뿐이었다.


그즈음 여자친구도 떠났다.


가게가 기울어가던 그 시간 동안, 함께 있어줬다. 잘될 거라고 했다.

나도 그 말을 믿으려고 했다. 둘 다 버티지 못했다.


나쁜 것도 아니었고,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시간이 너무 길었다.

오래 버틴 사람이 마지막에 떠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게 더 슬프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온갖 독촉장이 날아왔다. 우편함에 쌓이는 속도가 아직도 기억난다. 치우지 않고 두면 어느 날 넘쳤다.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다.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사진부터였다.


사진을 한 장씩 보지 않고 버렸다


앨범을 꺼냈다.

이걸 버려도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보면 버리지 못할 것 같아서 그냥 봉투에 담아 버렸다 그 봉투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그게 아직도 손바닥에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가끔 든다.


모든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졸업장을 버렸고. 받은 것들을 버렸다. 산 것들을 버렸다.

쓸모 있는 것도 버렸다.


친구들 연락처를 지웠다. 나와 연결된 것들을 없앴다. 흔적을 지운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버릴 때 손이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웠다.


물건을 버릴 용기는 있었다.

죽을 용기는 없었다.


버리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 침대, 티비, 옷. 이것들을 끝내 버리지 않은 이유를 그때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냥 손이 가지 않았다.


버리지 못했던 것들이 결국 남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방에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그때는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 카톡도 다 정리했다. 카톡 목록 인원 이 채 10명이 안된다..

다시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때는, 다른 선택을 생각하지 못했다.



핸드폰과 당근에서 산 십만 원짜리 노트북도 남아 있다. 그걸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냥 살다 보면 버리지 못한 것들로도, 사람은 계속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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