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라는 단어만 남았다

그 단어만 남았다

by 덕용안

그 단어만 남았다


티비 앞에서 유튜브를 틀어놓고 글을 쓰고 있었다. ‘숙녀에게’가 나왔다. 그 순간, 이유 없이 하나가 떠올랐다.

첫 소개팅 기억이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뭔가 이상한 기억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데, 어쨌든 소개팅 얘기다.


소개팅이었다. 모임에서 아는 여자 동생이 자기 친구를 소개해준 것이었다.

장소는 터미널 앞이었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 그때부터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늦게 왔다.


기다리는 동안 별생각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솔직히 날 보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을 계속 하고 있었다.


왜 늦었냐고 물었다.

산부인과 다녀오는 거라 늦었다고 했다.

순간 멈췄다. 뇌가 정지된 것 같았다. 이런 얘기를 이렇게 쉽게 한다고.

그때는 이게 맞는 대화인가 싶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날의 기억은 이상하게도, 사람보다 그 단어가 먼저 남았다.


만나서 놀다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했다.

미국인가 어딘가 학교를 다니고 있어서 본인 연락처가 없다고.

연락하려면 친동생한테 전화해서 자기 바꿔달라고 해달라고.


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개팅은 그렇게 끝났다.


그 전에 하나가 더 있었다.

영어 스터디 모임에서 알게 된 여자였다. 서로 만나기로 했다. 도서관이었다.

기다렸다.

안 왔다.

한참 뒤에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너무 무섭게 생겨서 순간 지나쳤다고

지금이라도 볼 수 있냐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답장했다. 다음에 하자고


다른 것들은 기억이 흐릿한데, 산부인과라는 단어만 아직도 선명하다.

왜 그 단어가 이렇게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날의 분위기나 표정보다, 이해 못 했던 말 하나가 더 오래 남는다.

기억이라는 게 이상하다.

중요한 것을 남기는 게 아니라, 그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남긴다.


월, 화, 목,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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