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나쁜 버릇은 누군가의 더 큰 불행을 찾으며 자위하는 거다. 나 정도면 힘든 거 아니야. 더 나쁜 일은 그게 남의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야, 너 정도면 힘든 거 아니야. 그전까지 토로한 모든 진한 감정들은 그 말 앞에서 검열된다. 아, 그런가. 내가 좀 징징대긴 했지. 실존하는 감정을 폄하시키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간다.
올해(2024년) 5월까지 한국에서 자살한 사람들은 총 6,375명이다. 다소 과장된 가정이지만 대학에서 한 단과대에 2000명이 재학한다고 치면 세 개의 단과대학 전 학년 정도가 죽었다는 거다. 서울시 공무원 재직 현원은 47,849명이다. 이 중 육천 명 가량이 사라졌다고 생각해 보자. 서울시 공무원 중 13.3%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면. 국립 중앙 의료원의 입원 환자 10%는 자살 기도 환자고, 국내에서 자해,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 가운데 10대와 20대 비율이 가장 높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2024년 6월 조사한 결과 30대는 ’장기적 울분 상태‘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울분 상태와 자살 충동은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 20대와 30대 모두 세상이 공정하다고 느끼는가?라는 물음에 부정적이었다. 한국을 떠나도 문제다. 미 거주 한국인들의 자살률은 미국 거주 미국인들의 자살률보다 유의미하게 높다. 그들이 제 안에 간직한 한국 문화의 병은 한국 땅을 떠난다고 한국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데 누가 누구의 불행을 양식 삼아 삶을 지탱하라는 말인가?
사회의 테두리에서 자꾸만 사람들이 죽어간다. 삶 바깥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여성혐오 범죄는 매일 일어나고 사람들은 가난에 치를 떤다. 서로를 상처 입히며 자존감을 채우고 남들에게 바라는 건 턱없이 많다. 지금까지 당신이 살며 마주친 사람들 중 몇 명이나 힘들어하지 않고 매일 밝게 살아갈까? 한 명도 없다. 정말로,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출생률은 0.7 언저리. 더 떨어질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갈 수 없고 사랑할 수 없고 세상을 믿을 수 없고 가정을 꾸릴 수 없다면 당연한 일이다. 전부 이따위로 살아가고 있는데 나라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건 너무 비양심적이다. 한국이 망하길 바란다면 이대로 10년이면 충분하다. 우리 모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내 주위의 세상이 망하는 걸 지켜봐야 할까? 나는 한국에 살고 싶다. 거지 같은 나라지만 그래도 여기 살고 싶다. 별 볼 일 없는 인생이지만 살고 싶다.
남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라. 나쁜 말만 하는 못난이가 되지 말자. 비관주의로 무장하고 우위에 선 것처럼 굴지 마라. 모두를 냉소하게 만드는 사회이지만 그러지 마라. 비난하고 경멸하지 마라. 남의 아픔에 제발 공감해라. 다시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기도해 주어라. 남들에게만 그러지 말고 자신에게도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라. 우는 짐승들처럼 서로 상처를 안아주자.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 져 줄 필요 없는 사람이다. 행복할 권리가 있고 그것을 찾아서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는 인간들이다. 서로에게 친절하자. 아직도 우리는 너무 멀다. 이런 곳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차라리 스스로 머리에 권총을 쏘는 게 주변의 몇 명을 살리는 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족
참고로 우울증 환자들에게 가장 하면 안 되는 말들은 '언제 낫는데?', '너만 힘든 거 아니야', '유세 좀 떨지 마', '언제까지 그러는데?' 등이다. '그럼 어쩌라고?' 싶으면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