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頌) - 완결

매거진 <Moon> 연재 소설

by 덤피free dompea ce

“늦게 죄송해요. 좀 전에 도착해서.”

형수였다.

“괜찮습니다.”

형수는 잠시 말이 없었고 나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 와줘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49제(祭)가 아니라 49재(齋)라고 하더군요. 스님이. 제사를 지내는 게 아니라 다음 생으로 보내는 거라고. 다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그러니 마음에서 잘 보내라고.”

“……”

“그렇게 생각하려고요. 쉽진 않겠지만……. 오늘 고마웠어요.”

“예.”

맞아요. 성진형, 좋은 데 갔을 거예요. 이제 형수님도 기운 차리시고 힘내세요. 정일이 정훈이가 있잖아요. 저도 자주 들를게요. 그런 말들 대신 침묵했다.

저기 담배를 피우고 있는 형은 이제 곧 다른 곳으로 가겠구나. 형은 가고 나는 돌아가야 한다. 아니, 돌아가는 사람이 형이고, 계속 가야할 사람이 나겠지. 형은 처음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는 계속 가야하겠지.

심근경색.

이 말이면 충분할까?

횡단보도를 앞에 두고 운전석에 앉은 채, 이마를 핸들에 대고 있었다고 한다. 출근 길 8차선 대로 한 복판에서 화가 난 뒤 차 운전자가 운전석 유리를 깰 듯이 두드렸지만 아무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 내 발밑에서 졸졸졸 소리를 내는 저 물도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저렇게 끊임없이 말하고 있는데, 심장마비라는 말 외에 형은 아무 말도 남기지 않았다. 팍팍한 삶에 치여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그래서, 이렇게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는 것일까?

“형, 어디로 갈 거야?”

형은 아무 말이 없다. 그저 둥글디 둥근, 선하디 선한 웃음만 짓는다.

저 물처럼 나도 계속 흐르고 흘러 형이 있는 그곳에 닿게 될까? 아니 그때에도 형은 또 한 발 먼저 어딘가로 가버리진 않았을까? 스물의 그 밤에 그랬던 것처럼 먼 훗날의 어느 밤에도 형은 나보다 늘 먼저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 밤에 형을 보낼 수가 없다.


신문배달을 나가다가 슈퍼 앞에 멈춰 섰다. 경찰차가 와 있겠지? 뜯기고 열린 냉장고가 텅 빈 속을 내보이고 있으리라. 그 처참한 광경을 어떻게 지나쳐야 하나. 걱정과 죄책감이 나를 옥죄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냉장고는 어제처럼 은백색 뚜껑을 덮고 잘 웅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해의 시간보다는 배달의 시간이 나를 재촉했고, 혹시 의심의 시간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기에 나는 그 앞을 얼른 떠나야 했다. 신문배달에서 돌아올 때에도 경찰차가 보이거나 냉장고를 살피는 슈퍼 집 사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의 손님은 오늘의 도둑이었지만 오늘의 정 슈퍼는 어제의 정 슈퍼였다.

“아따, 그저껜가 요 바로 옆이 집이 난리가 났어야. 사네 못 사네, 우리 아래 전봇대 옆집 있지? 그 여자가 나인테 전화를 했더라고. 남편이 난리가 났다고. 그 지랄을 당하고도 경찰에 넘기지는 못하겠는갑지. 모지란 년. 그래 내가 신고를 했지. 새벽에 잠도 못 자고 뭔 지랄이야. 경찰이 오고 전에 얘기도 해주고 그랬는디, 글씨 그 뒤로 어째 됐는가 모르겄네. 도통 찾아가도 나오지를 않어. 안에 있는 것 같은디.”

빨래를 널러 온 아래층 할머니를 통해 경찰차 소동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를 경찰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냉장고에 대한 의문은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통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그해 겨울 함박눈이 내린 어느 새벽, 신문배달을 나가면서 슈퍼 앞을 지날 때였다. 그 밤 이후 슈퍼 앞을 지날 때면 나도 모르게 웅숭그린 어깨 사이로 목을 잔뜩 웅크리고 땅바닥만 쳐다보았다. 추운 날씨로 몸을 더 웅크리고 가게 앞을 지나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문설주에 쌓인 눈이 땅으로 떨어지면서 마치 하얀 새 한 마리가 푸드득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열린 문틈으로 초록색 가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어 까만 구두가 가방을 따라 나왔고 까만 치마와 짙은 베이지 색 코트가 하얀 길 위로 올라섰다. 아이보리색 터틀넥 위로 단정하게 묶은 검은 머리. 하얀 도화지에 정갈하게 그려진 정물화처럼 그녀가 서 있었다. 우리는 한 동안 서로를 마주 보며 서 있었다. 새벽이었지만 달빛을 머금은 눈빛이 눈빛으로 반짝였다. 그녀가 가게 문을 닫기 위해 몸을 돌렸다.

드르륵- 새벽의 문이 열리고 지난밤이 닫혔다.

그녀는 내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내 인사가 끝나자 그녀는 저 아래 골목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골목을 바라보았다.


작은 새 한 마리가 드르륵-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이곳에 형은 없다.

아주 오래 전에 그녀가 떠났고, 오늘 형이 떠나버린 이곳에 나만 홀로 서 있다.

형이 가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옛날, 그녀가 걸어간 골목을 보고 있던 나는 드르륵- 문 열리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슈퍼는 입을 꼭 다물고 있었고, 2층 창문가에 새 한 마리가 보였다. 그녀와 새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내 시선은 텅 빈 공간 어디에도 머물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푸드득”

창가에 앉았던 새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드르륵- 지난밤이 닫히고 새벽의 문이 열렸다. 그제야 나는 형이 간 것을 깨달았다.

새는 내 머리 위를 지나 담벼락 너머의 산으로 날아갔다. 나는 새가 사라진 곳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마음을 모았다.

새로운 하늘에서 마음껏 자유롭기를, 그리고 먼 훗날 지친 날개를 깃들인 어느 나뭇가지에서 한 번은 만나게 되기를.


송(頌)



<매거진 Moon> 연재 소설 11월 완결.

12월에 새 소설 연재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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