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on> 연재 소설 11월 호
도둑들이 있었다. 하나는 불룩한 보따리를 어깨에 둘러멨고, 하나는 웃통을 벗고 있었다. 그런데 이 도둑들은 5층까지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한달음에 계단을 올라 온 도둑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온 도둑들은 급히 냉장고 앞으로 다가섰다. 보따리를 방에 내려놓은 도둑이 물었다.
“괜찮을까? 그 여자…….”
맨살을 드러낸 도둑이 눈높이보다 낮은 냉동고의 문을 붙잡고 대답했다.
“이거나 넣자.”
냉동고 문이 열리면서 새어 나온 불빛에 두 도둑은 흠칫 놀랐다.
“중학교 2학년 겨울인가 아버지가 내 방 처마를 넓혀주셨어. 왜 내 방만 고치시냐니까 ‘제비가 새끼를 치면 좀 좁을 것 같다’ 그러시더라고. 봄마다 제비가 내 방 처마에 집을 쳤거든.”
같아 살자고 한 이유를 물었을 때 형이 말했다.
“내 둥지가 좁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우리는 보따리, 셔츠를 풀어 아이스 바들을 냉동고에 쟁여 넣기 시작했다. 몇 번을 움직이지도 않았는데도 냉동고는 벌써 꽉 차 버렸다. 남은 것들을 냉장실에 넣고 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실없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냉장고 불빛이 비친 형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
형과 같이 산 몇 개월 동안 냉장고가 이렇게 꽉 차 본 적이 있었던가? 눈높이도 못 되는 냉장고에는 집에서 보낸, 그것도 절반도 안 남은 김치통과 언제나 서너 개밖에 없는 계란뿐이었다.
냉장고 문을 닫고 나서야 우리는 신발도 벗지 않은 서로의 발을 보았다.
고봉으로 담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하얀 쌀밥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밥이 되지 못한 한 알의 쌀알 때문에. 여름의 뙤약볕과 태풍, 끊임없이 몸을 파고드는 벼멸구를 이겨내고, 탈곡기의 강압에 으스러지지 않고,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조바심을 치며 싱크대까지 갔다가, 그만 한숨 놓는 사이에 쌀뜨물에 휩쓸려 하수구에 빠져 버린 한 알의 쌀알. 눈이 까만 생쥐의 양식도 되지 못한 채 하수구 한 구석에 처박혀 까맣게 썩어간다면…….그에게 찰방거리던 봄의 논과 뿌리를 탄탄하게 감아주던 가을의 흙은, 공포스럽던 탈곡기의 굉음과 포대에 담겼다는 안도감은, 비로소 소쿠리에 담겨 수돗물에 몸을 씻던 설렘은 그래서 의미가 있을까? 세상 만물이 원소로 환원되었다가 다시 다른 생명을 얻는다는 말은 이럴 때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추억은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게 해 준다.”
나보다 먼저 마흔을 맞이한 형이 술잔을 앞에 두고 말했었다.
형과 나는 지금 어디쯤을 흘러가고 있을까? 숙취에 찌든 아침이면 냄새나는 진창 어디쯤 인 것도 같고, 휴일 공원에서 초록색 잔디 위에 앉아 있으면 어느 외국에 와 있는 것도 같고. 둘 다 고만고만한 직장에서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직함을 달고 위에서 누르고 밑에서 치받는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전에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루하루 해결하다 보면 도대체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알기 어려웠다. 그나마 서울에서 당분간은 쫓겨날 염려는 없는 집과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랄까.
“지금의 나 때문에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다 잊고 사는 것 같아.”
형의 말을 들으며, 하수구를 흘러가는 투명한 쌀알 하나를 보았다.
숲 속 공터는 주위를 둘러 싼 자작나무들이 뿜어낸 하얀 입김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공터 가운데 놓인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늘에 없는 달이 그녀의 눈에 떠 있었다. 투명한 구름에 가려진 달처럼 눈동자는 흐릿했고, 윗니에 물린 아랫입술은 둘로 찍은 듯 핏기가 없었다. 울음을 삼키는 보라색 어깨가 흔들렸다. 펴지지 않는 날개를 파닥이는 작은 새가 애처로이 떨고 있었다. 그녀에게 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아, 아아…….” 소리는 말이 되지 못했다. 그녀가 퍼런 멍이 든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에게 가고 싶었다. 발버둥을 치고 팔을 휘저어 보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후- 길게 숨을 내쉬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한 번에 벗어나야 한다. 단번에 땅에 박힌 발을 뽑아내야 한다. 하나 둘 셋!
“악!”
내 정수리를 망치로 내려치는 듯한 아픔과 동시에 외마디 비명 소리가 들렸다. 형은 아래턱을 감싸 쥐었고, 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손으로 정수리를 문질렀다.
“형, 괜차아 읍…….”
형이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으며 창문을 가리켰다. 파랗고 빨간 불빛이 번갈아 가며 창문을 넓게 핥고 있었다.
“어디야?”
“학교 앞이야.”
“언제 와?”
“곧.”
아내와 나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조심해서 와요.”
“알았어.”
이미 늦은 시간에 너무 늦지 말라는 말과 함께 아내는 기다리겠다고 했다.
이제 곧 돌아가야 한다. 나는 이제 돌아갈 텐데,
“어디로 갈 거야?”
저기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 형에게 물었다.
불 꺼진 방안에서 창가에 나란히 붙은 우리는 허리를 바짝 숙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골목 어귀 가로등 밑에 세워진 경찰차가 보였다. 두 명의 경찰이 차 옆에 서 있었고 어두운 골목에서 누군가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짙은 색 몸빼에 런닝 차림을 한 아랫집 할머니였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예감은 아주 불길했다. 순간 경찰 한 명이 옆 골목의 어둠 속으로 쓱 사라졌다. 남은 경찰이 할머니와 함께 우리 집 쪽으로 걸어왔다. 끝이었다. 이대로 잡히는구나.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헉.”
형의 손이 내 어깨에 닿자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왔다.
“주철아, 잘 들어라. 너는 그냥 잔거다. 내가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는 거다. 알았지?”
불 꺼진 방안에서도 형의 눈빛이 번뜩였다.
“너는 장남이잖아. 나는 막대다. 이깟 것 물어주면 그만이다.”
“형, 아니…….”
형이 말꼬리를 잘랐다.
“괜찮다. 둘 다 잡혀갈 필요는 없다. 침착해야 한다.”
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나에게 손짓으로 옆에 와서 누우라고 했다. 나는 그대로 창가에 무릎을 꿇고 앉아만 있었다. 보다 못한 형이 나를 손으로 끌어 옆에 뉘었다.
“너는 그냥 가만히만 있으면 된다. 내가 알아서 할게.”
“형, 그러지마.”
“그냥 눈 감고 있어.”
어둠 속에서 어둠보다 깊게 잠긴 형의 눈은 정말 계속 잠을 자고 있었던 사람 같았다.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렸다. 턱턱턱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가까워질수록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댔다. 그 때 형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낭패감 속에서 형의 따뜻한 손은 안도감을 주었고, 그 안도감으로 인해 또 다른 낭패감이 밀려왔다. 이제 한층 정도 남았으려나, 파도의 흰 포말을 맞은 것처럼 수많은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왔다.
“형.”
“……”
발소리가 멈추었다.
이제 문만 열리면 끝이다. 저 문이 열리면 형은 잡혀가고 나는 잠자다 날벼락 맞은 사람처럼 멍하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아무 일도 없는 거다, 내게는.
슈퍼 사장의 팔뚝에 새겨진 비키니 입은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요염하게 가슴을 흔들며 나에게 애송이라고 말했다. 아니다. 이러면 안 된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등으로 손을 돌려 문고리를 잡은 채로 형을 보았다.
“형, 이건 아냐.”
“야, 뭐해.”
숨죽인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배어났다.
“형 혼자는 안 돼.”
“야, 주철아, 이리와 빨리.”
끼이익 청.
섀시로 된 현관문이 열렸다. 급한 마음에 현관문도 잠그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야, 야.”
방문까지는 한 걸음도 남지 않았다.
형은 세차게 손을 흔들었고, 나는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방안의 기척을 살피는지 방문은 쉬 열리지 않았다. 나는 저항할 생각이 없었다. 방문이 열리면 순순히 자백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방문도 잠그지 않았다. 방안에 건장한 대학생 2명이 있어서인지 경찰은 오래 뜸을 들였다. 그리고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창문을 넘어 천장까지를 번갈아 핥아대던 빨갛고 파란 공포가 서서히 물러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형은 얼른 창가로 다가갔다. 눈으로만 밖을 살피던 형이 고개를 쭉 빼고 골목을 내다보았다.
“갔는데?”
창가에 팬티차림으로 구부정하게 서 있던 형이 고개만 돌려 말했다. 문고리를 잡느라 엉덩이를 뒤로 쭉 빼서 방문에 붙이고 있던, 역시 팬티차림의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형, 주철아.”
누가 먼저 불렀을까?
우리는 서로를 껴안았고, 서로를 끌어당겼다. 조금 울먹였던 것도 같고, 조금 웃었던 것도 같은데, 뜨거운 무언가가 목구멍을 콱 막았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화장실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형이 빨랐고 나는 웃음과 울음과 인내를 동시에 치러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