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에세이

토의에 대한 토의

by 덤피free dompea ce

토의에 대한 토의


토의(討議) : 공통의 주제에 대해 검토하고 협의하는 것.

토론(討論) : 공통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각자의 의견을 말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면서 자기의 주장이 옳음을 밝혀나가는 것.


지금 우리 사회의 혼란상을 보면서 누군가는 진영 간 ‘대립의 극점’을 말한다. 하지만 몇몇 문제에 있어서는 그 대립이 극한을 넘어 ‘어느 다른 지점’으로까지 진행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정 사회적 현상에 대한 논평에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요? 아니, 이렇게까지 된다고요? 이건 진짜 이래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들이 등장하는 횟수가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비단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지구적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 사회와 지구촌 곳곳의 여러 ‘문제적 사태’에는 오히려 ‘대립’이 없다.


논리적 의견 교환을 전제로, 대립은 내가 ‘살펴보지 못한 부분, 내 논리의 허점’을 일깨워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립을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필수적 과정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아주 어린 나이서부터 토론이나 토론 과정을 교육의 중요 요소로 삼는다.


대립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그 하나는 ‘쟁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립하는 대상’이다.

‘쟁점’은 ‘대립의 모태’이다. ‘무엇이 더 가치 있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 차이가 쟁점이다. 그래서 쟁점은 ‘사실’(fact)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사실은 쟁점의 대상이 아니라 ‘탐구와 증명’의 대상이다. 쟁점은 이미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더 가치 있는 무엇’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견이 부딪히는 지점이다. 우리 사회에 대립이 없다고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쟁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치와 관련된 사실들은 단일하지 않다. 내가 점심으로 국밥을 먹을까? 칼국수를 먹을까? 만 떠올려도 따져 보아야 할 사실들은 너무나 많다. 그러니 각각의 이해관계가 얽힌 사회적 문제와 관련된 사실들은 너무나 복잡다단할 것이다. 그리고 충돌하는 두 대상은 그 많은 사실들 중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들만 더 부각할 게 뻔하다. 대립하는 대상들은 더 나은 가치를 찾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가치’라는 말로 포장한다. 이들은 사실을 토대로 논증의 과정을 거치며 더 나은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익이 가치이며, 수많은 사실 중 자신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만 사실이라고 말한다. 이런 집단의 대립에는 ‘무엇이 더 사회적으로 이익인가, 무엇이 우리 사회의 가치인가’라는 쟁점이 없다. 그저 여러 사실들 중 ‘내가 선택한 사실’만 사실이라는 주장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럴듯한 거짓’을 사실로 둔갑시키기까지 한다. 팍팍한 현실에서 쫓기듯 사는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여유도 능력도 관심도 확보하기 어렵다. 그저 믿거나 그저 등 돌릴 뿐.

그러니 끝장 토론을 보고 또 봐도 남는 게 없다. 그래서 가치는 없고 가십(흥밋거리)만, 사실은 없고 이미지만 횡행한다.


대립은 부딪힘을 의미하는 동시에 ‘견제와 균형’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일방적이지 않은 관계’를 전제로 상대방을 나와 ‘대립하는 대상으로 인정’하는 인식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 대립이다. 논리를 견줄 수 있는 상대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대립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선택 가능한 사실은 많은(심지어 거짓까지) 현실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게 유리하다. 상대방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사실을 취사선택할 것이 뻔한 마당에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굳이 끝까지 파헤칠 필요는 없다. 그저 ‘내 것이 사실’이고 ‘남의 것은 거짓’이라고 주장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하여 대립하는 상대방을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리한 사실만 ‘주장’하고 심지어 거짓까지 동원하는, 승부가 나지 않는 싸움이라면 ‘넌 거짓말쟁이야. 나쁜 놈이야. 나하고 대립할 자격이 없어.’라고 무시해 버리는 편이 우리 편의 결속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그만큼 내 이익이 실현될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은 논리를 견주는 상대가 아닌 한낱 거짓말쟁이라면 그는 대립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바로 그것이 우리 사회에서 또 지구촌에서 극심한 분노와 투쟁이 빈발하는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진정한 대립’을 잃음으로써 ‘일방적 폭거의 시대’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정리하자면

사회적 가치, 이익 앞에 사리사욕을 앞세운 이들이 있다.

이들은 사적 이익을 위해 사실을 선택하거나, 거짓으로 꾸민다.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이들은 적으로 규정한다.

그들의 주장이 근거로 삼는 사실은 가치 없거나,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적 가치를 논쟁하지 않고 서로가 선택한 사실의 가치에 대해 논쟁한다.

상대방이 선택한 사실은 거짓이라고 말한다.

결론 나지 않는 진실게임 끝에 상대방을 사회적 악으로 규정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토론이 아닌 ‘토의’가 필요한 이유이다.


토론과 토의는 모두 다수가 모여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공동의 해결책 또는 가치를 탐색하는 과정이다. 또한 토론의 과정에는 토의가, 토의의 과정에는 토론이 개입하기도 한다. 무엇이 더 낫다 아니다 할 대상이 아니라 논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는 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토론보다는 토의가 더 필요한 논의 수단이다. 앞서 정리한 내용을 근거로 ‘찬반의 대립, 논리적 검증, 반박과 재반박’이 근간인 토론은 우리 사회에서 제 기능을 잃고 불신과 반목의 심화를 야기할 뿐이다. 논의 대상의 원인, 실태, 전망 등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으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해결 방안의 공통 검토를 거쳐 최종 해결 방안을 결정하는 토의는 소통과 협력을 근간으로 한다. 서로 싸워 이기는 것이 토론이라면 토의는 함께 승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토의를 염두에 둘 때 의미 있는 대립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학교에서는 분명 토의와 토론을 같은 단원에서 배웠는데 현재 우리 사회에는 토의는 오간 데 없고 토론만 남았다. 이제 토의가 왜 필요한지 토의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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