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oon 12월 호, 특별 에세이
교사들이 50분마다 들르는 곳은?
화장실.
12월, 요즘처럼 2학기 기말고사 기간에는 특히나 틀림없다. 점점 싸늘해지는 날씨에 여느 때보다 횟수가 잦아지는 데다 2시간 연강으로 시험감독을 서야 하는 때는 특별히 마렵지 않더라도 한 번은 들러야 마음이 편하다. 남교사 화장실이 1층에만 있는 여고에서 20년 동안 생활하다 보니 다른 일로 1층에 내려갔다가도 화장실만 보이면 ‘들렀다 갈까’하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많다.
어제도 화장실에 들렀다가 감독을 들어가려고 조금 일찍 4층 교무실을 나섰다. 2교시 수학 시험지를 받아 들고 화장실에 들렀을 때, 마침 화장실에 아무도 없었다. 뿡- 볼일을 보다가 시원하게 방귀도 뀌었다. 감독하다가 냄새를 풍기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차원이랄까, 시원하게 두 볼일을 한 번에 해결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돌리다 신입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내 옆 소변기로 다가서는 선생님 얼굴에 모른 척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먼저 일을 마치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다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뭐 사내들끼리 화장실에서 방귀 뀌는 일이 별일은 아니었으나, 여느 때보다 소리가 좀 컸던 게 걸려서 나도 조금은 민망했었다. 그렇게 방귀 한 방에 서로 민망해하는 상황이 별스럽게 우스웠다.
2교시 수학 시험은 바쁘다. 2학년 이과 진로를 선택한 학생들의 수학 시험은 특히나 바쁘다.
"다다다다"
샤프가 얇은 시험지 위를 달리면서 책상과 맞부딪는 소리만 적막한 교실에 한가득이다.
답안지와 시험지를 나눠주고 주의 사항을 전달한 후 시작종과 함께 코를 박고 시험지 위를 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한숨 돌릴 때였다.
"이제는 이게 방구인지 큰 건지 헷갈려."
화장실에서의 일 때문인지 은퇴하신 선배 선생님 말씀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20년 전, 임용 면접을 보러 왔던 날 제일 먼저 나에게 말을 걸어주신 분이 그분이었다. 교무실 한쪽에 임시로 마련된 대기 의자에 빳빳하게 잘 다린 양복처럼 긴장한 채 앉아 있던 나에게 차라도 한잔하겠느냐며 온화한 웃음 보여주시던 선생님. 운 좋게 내가 임용이 되고 그분이 은퇴하실 때까지 15년 가까이 같이 근무하면서도 선생님께서는 그때의 온화한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분을 떠올리면 불경스럽게도 ‘방구’가 먼저 떠올랐다. <선생님의 방구>사건으로 기억되는 그 일이 일어난 것은 내가 서른 즈음이었을 때니까, 아마 선생님께서는 쉰을 막 지나고 있으셨을 무렵이었다.
공강 시간이었을까, 아무도 없는 화장실 소변기 앞에 선생님과 나는 나란히 서 있었다.
"뿡-"
방귀 소리가 조용한 화장실을 공명하며 너무도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내가 뀐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누가 들어오지는 않나 고개를 돌려볼 정도로 우렁찬 소리였다. 순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도 예상치 못한 큰 소리에 당황하신 눈치였다. 선생님의 민망함이 느껴지자 나는 얼른 일을 마치고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걸 끊고 나갈 수도 없고...
"시원-하다. 흐흐흐"
"예? 아, 예 하하하"
당황스러움을 없애는 데는 역시 웃음이 최고다.
"근데, 박 선생 이게 나이가 드니까 조절이 잘 안돼."
"예? 아...예"
"새는 건지 울리는 건지, 심지어는 큰 건지 방구인지도 헷갈려. 하하하"
신참 교사 처지에 크게 웃지는 못하고 코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도 인자하신 모습으로 온화하게 웃어주시는 선생님을 뵐 때마다‘선생님의 방구’ 사건이 생각나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곧 내가 그분의 나이가 된다.
그리고 오늘 또 다른 <방구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때 선생님 정말 커 보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어렸네요.”
첫 담임했던 애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 떠올랐다. 스물여덟에 고1 아이들을 담임했으니 올해로 서른일곱이 되는 아이들(?) 생각에는 그때의 내가 새삼스럽기도 하겠지.
선생님과 나의 방구 사건 사이에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새내기 교사는 중년의 선배 교사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새삼 세월의 흐름이 새롭게 느껴지며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실, 요즈음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불현듯 오십에 시작해서 십 년은 준비해야 은퇴 후를 대비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에 조바심이 일었다. 필요한 생각이었고,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아있었지만 불안한 감성의 파도에 내 ‘이성의 배’는 이리저리 뒤웅박질 치기 일쑤였다.
어느새 시간이 20분쯤 지나고, 두 명의 아이가 책상에 엎드렸다.
보나 마나 수학 시험 답안지에는 까만 동그라미가 일렬종대로 열을 지었을 것이다. 어느 무리에서나 다른 길을 걷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어땠을까?’
시험지에 코를 박은 어리고 검은 머리 위로 사내아이의 까만 얼굴이 떠올랐다. 저 작은 책상과 그 위에 놓인 더 작은 종이 한 장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열심을 다했을까?
알쏭달쏭한 세상과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 미래, 마음대로 되지 않는 하루하루 때문에 그저 막막하고 두려웠던 학창 시절. 무엇보다 스스로도 잘 이해되지 않는 ‘나’로 인해 불면의 밤은 또 얼마나 길었을까?
책상 위에 놓인 저 작은 종이, 그보다 더 작은 답안지에 까맣게 칠하는 작은 동그라미 하나에 울고 웃고, 좌절하고 기뻐해야 하는 그들의 학창 시절에 마음이 자꾸 오그라들었다.
한참 열정 넘치던 신참 교사 시절 엎드린 아이들을 깨우기도 하고, 답안을 한 줄로 쭉 세우고 일찌감치 시험을 끝낸 아이들을 교무실로 불러 야단치기도 했었다. 나 자신도 그러지 못했으면서, 아니 내가 그러지 못했기에 그들의 청춘에 좀 더 정성을 쏟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리석게도 그랬다.
"박 선생. 그냥 받아들여."
다시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교사들은 다 안다. 부모들이 그렇듯 아이들을 야단치고 나면 오히려 자신이 더 속상하고 화가 더 난다는 것을. 아이들을 혼내고 잔뜩 찌푸린 미간으로 자리에 앉아있을 때, 어깨를 다독여 주시던 선생님.
"박 선생 그 열정, 나도 부러워. 난 이제 화도 안 나네. 근데 여유를, 자리를 좀 더 줘. 그래야 아이들도 옆에 올 수 있어. 박 선생 옆에 틈이 있어야 애들이 그 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지. 우리, 들어주는 사람들이잖아."
솔직히 그 말을 꼰대들의 라떼 한잔으로 여기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십 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말이 내 마음에 남아있다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도 없다.
여드름 난 까만 얼굴의 사내아이가 중년이 된 것처럼, 저 아이들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른이 되겠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찌푸린 미간의 젊은 교사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중년이 된 것처럼. 그들의 삶이 어떨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오늘만은 진심으로 말해주고 싶다.
"괜찮아."
일렬로 세운 답안지를 가슴에 품고 잠든 아이들에게도, 달리던 샤프를 멈추고 미간을 찌푸린 아이들에게도. 나도 그랬고 내 선배도 그랬으니 너도 괜찮다고 말이다.
그리고 스스에게도 어깨를 다독이며 말하고 싶다.
“여유를 가져. 괜찮아.”
* 매거진 Moon 12월 호 <Angle Sugar Man>을 특별 에세이 <선생님의 방구>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