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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원필 Feb 28. 2020

커뮤니티를 만들자

두번째작업실 분투기 - 커뮤니티의 시작

커뮤니티라고 제목에 써놓고 보니, 굉장히 식상하기 그지없네요. 요즘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커뮤니티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마케팅 관련 글이나 브랜딩 관련 글들에도 결국 커뮤니티가 핵심이라는 이야기가 반복됩니다. 모두가 커뮤니티에 대해 이야기하는 현재, 동네 카페에서 커뮤니티를 강조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두번째작업실이 생각하는 '카페'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저희에게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은 아닙니다. 물론 맛있는 커피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생각한 두번째작업실의 카페로써의 핵심은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고 창의적인 무언가가 계속 생겨나는 곳이었습니다.


혹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셨나요? 영화는 주인공이 1920년대 파리로 가 시대의 유명 예술가들과 만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콧, 젤다 피츠제럴드 부부를 비롯해 거투르트 스테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같은 문학계 인사들, 피카소, 달리, 마티스 등의 미술계 인사들, 콜 포터, 조세핀 베이커와 같은 음악계 인사들까지 수많은 예술계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놀라운 것은 완전 다른 예술계열인 이들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친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파리에 있는 카페 레뒤마고(Les Deux Margo)는 이런 당대의 지성인들이 한데 모여서 치열하게 토론하고, 쉬기도 하고, 놀기도 하며, 때로는 싸우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창의력이 모이는 장소로서의 카페였죠. 다양한 인사들이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아가며 엄청난 작품들을 연달아 탄생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1920년대의 프랑스는 문화 /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두번째작업실은 비록 동네 카페지만, 금촌에 있는 창조적 인재들이 모이는 파주의 레뒤마고 같은 그런 곳이길 바랐습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고,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그런 장소. 오늘의 내가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고, 내일의 내가 다른 이를 통해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꼭 카페를 통해 커뮤니티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2018년 11월 1일, 드디어 정식으로 두번째작업실이 오픈했습니다. 오픈 이후 1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매일매일 정신없이 고군분투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몰려드는 주문, 쌓여가는 설거지, 그 와중에 생겨나는 크고 작은 실수들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우왕좌왕하는 저까지 수습하느라 더 정신없었을 겁니다.


동네에 새로 생긴 가게다 보니 궁금증이 생겨 방문해주는 손님들이 제법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고정적으로 방문해주는 손님들도 하나 둘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렇게 고정적으로 오는 손님들과 조금씩 소통하여 단골손님으로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단골손님들이 많아져야 지리적 이점도 보완하고, 초반에 계획했던 손님들과의 교류, 혹은 손님들끼리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세렌디피티', 즉 우연한 만남을 계속해서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금촌은 큰 동네가 아닙니다. 그래서 분명 같은 지역에서 살고 활동하다 보면 종종 스쳐 지나가게 되는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저희가 가오픈 기간을 포함해 운영해보니 서로 비슷한 시간대에 모이게 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카페에서 주최하는 파티가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약간 서툴렀지만 커피 내리기부터 고객 응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씩 카페 업무가 손에 익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이제 슬슬 오픈 전부터 계획하고 있던 동네 커뮤니티 만들기를 슬슬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사장님께 의견을 물었습니다.


“이제 곧 12월 크리스마스에 연말이기도 하고, 일도 손에 조금씩 익어가는데 커뮤니티 만들기를 슬슬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아직 100%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커뮤니티야. 조금 더 있다가 시작해도 되지 않겠어?”

“커뮤니티라고 해봐야 뭐 크게 모여라 할 건 아니고, 그냥 우리 가게를 좋아해 주는 손님들 모아서 파티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크리스마스에 연말이니까… 파티로 기획해서 제대로 모여서 놀 수 있다면 재미있긴 하겠네. 확실히 기획할 수 있겠어?”

“일단 사람이 모일 수만 있고, 먹을 것 있고, 이야기할 수 있게 판만 깔아놓으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을까?”

“그게 말처럼 쉽게 모일까…”


수차례의 회의와 기획도 중요하지만 즉각 진행할 수 있는 실행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도 물론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를 충분히 기획하여 준비할 시간이 모자라기도 했고, 저지른 일을 수습하는 게 훨씬 일 진행에 수월할 거라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심플하고 간단하게 텍스트 밑으로 파티라는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레코드 판 이미지를 깔고, 텍스트도 레트로 한 느낌이 드는 폰트를 선택,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맞춰 빨간색과 녹색을 번갈아 사용하여 간단하게 포스터를 만들었습니다.


'그 왜, 영화에서 보던 있어 보이는 그런 포트럭 파티'


처음에는 그냥 우리가 직접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해서 먹고 마시는 크리스마스 파티로 시작해볼까 했으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무엇이든 파티 참가자 본인이 파티를 만드는데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본인이 음식을 하나씩 싸와서 서로 나눠먹는 포트럭 파티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은 파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돋궈주게 됩니다. 또한 가져온 음식은 첫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줄 수 있었습니다. 보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위해 드레스코드도 ‘포인트 레드’라고 하여 어디든 빨간색을 꼭 착용(?)하고 오도록 안내했습니다.



간단하게 제작한 크리스마스 파티 포스터



크리스마스 2주 전 겨우겨우 포스터를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제작한 포스터를 인쇄해서 가게 곳곳에 붙여두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 방문한 손님들도 호기심이 생겼는지 문의가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금촌에서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니 하나같이 신기한 듯 물어보셨죠.


“크리스마스 때 파티하시는 거예요? 아무나 참가 가능한가요? 꼭 음식 싸와야 하나요?”

“네 저희도 영업 일찍 마무리하고, 파티합니다. 직접 만든 음식이건, 사 온 음식이건 뭐든 좋으니 하나씩만 준비해주시면 누구나 오셔도 괜찮아요.”


꼭 오겠다고 약속해주신 손님들도 한 두 분 정도 계셨지만, 정말 올지 안 올진 당일 그 시간이 되어봐야 알기 때문에 우리도 사실은 엄청 불안했습니다. 이렇게 저질렀는데 혹시나 아무도 안 오면 어쩌나, 음료만 잔뜩 사 왔는데… 이건 두고두고 먹으면 되려나? 정말 오는 사람 없으면 우리끼리 가게에서 영화라도 틀어놓고 볼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는 24일 파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가게에 주렁주렁 풍선도 매달고, 바깥에서 잘 보이도록 ‘PARTY TIME’이라고 쓰여있는 가랜드도 달았습니다. 내부 인테리어도 파티에 어울리게 의자와 테이블 배치를 변경하고, 벽에는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크리스마스의 대표 영화인 ‘나 홀로 집에’를 틀어놓았다.


24일 밤, 일찌감치 가게 주문은 마감하고 파티를 하기 위해 음료를 세팅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무척 초조했습니다.


‘과연 사람들이 올까?’


약속한 파티 시작 10분 전 첫 번째로 가게에 자주 오는 커플이 방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시작 시간이 되자, 30여 명의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금촌에 사는 분들 뿐 아니라, 운정, 교하, 문산까지 조금 떨어진 파주의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웠습니다. 우리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었습니다.


파티가 시작되고 처음에는 둘 혹은 셋이서 찾아와 끼리끼리 어울리다가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습니다. 두번째작업실에서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인지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서로가 어색했고, 연령대도 20대 초반부터 30대 후반까지 제법 차이가 있었습니다. 


가져온 음식들을 하나씩 테이블에 깔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에서 사 온 다양한 음식뿐 아니라, 본인을 아마추어 시인이라고 소개한 시인 로건님은 직접 볶음밥을 만들어 가져와주시기도 했습니다. 직접 가져온 음식이 초반의 어색함을 깨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 같이 음식을 앞에 놓고 서로의 그릇과 수저를 챙겨주면서 조금씩 용기를 내어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연령대 뿐 아니라 성별, 직업과 취미마저도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교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와 사장님 역시 손님들 사이에 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가게를 열게 된 계기부터 상대방의 직업과 관심사, 취향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모여 함께 파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파티는 새벽 1시, 늦어도 2시에는 마무리할 예정이었습니다. 찾아온 손님들의 열기, 끊이지 않는 대화, 함께 웃으며 즐긴 게임까지 우리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가는 줄도 모르고 신나게 어울렸습니다. 특히 마지막까지 남은 10여 명의 손님들과 함께한 마피아 게임은 원래의 계획된 마무리 시간을 한참 넘겨, 결국 새벽 6시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두번째작업실을 준비하면서, 우리 가게를 기반으로 많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랐습니다. 크리스마스 포트럭 파티는 이를 위한 첫 단추를 아주 멋지게 끼워주었습니다. 이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가게에서 인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인사를 넘어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관심사를 넘어서 나이를 뛰어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대형 테이블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간에 오더라도 만나면 한참을 함께 즐겁게 보내고 돌아갑니다.


앞서도 계속 이야기했지만 카페를 준비하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던 부분이 바로 커뮤니티의 형성이었습니다. 두번째작업실의 경우, 일반적인 상권이 아니라 2차 상권에서 더 들어온 원룸촌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손님 유치를 위한 방법으로서, 또한 기왕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수차례 같은 사람들을 마주치는 세렌디피티가 점차 많아지게 되면, 조금씩 상대방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습니다. 두번째작업실에 오시는 손님들이 자체적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해준다면 가장 이상적일 겁니다. 하지만 주체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직접 퍼실리테이터가 되어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로 했습니다. 파티를 통해 생긴 관계를 활용해 여러 커뮤니티를 하나씩 직접 운영하고, 그걸 보고 손님들 스스로 직접 커뮤니티를 조직할 수 있도록 제안하고자 했습니다.


겨울 시즌에 가장 많은 관심과 참여도가 있었던 ‘뜨개질 살롱’, 금촌 지역 내에 있는 맛집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금촌미식회’, 동네에 숨어있는 미대 언니 오빠들을 위한 ‘심야의 석고소묘’ 등 취향과 흥미가 맞는 사람들이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하나 둘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준비한 여러 커뮤니티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면서, 저희의 기대대로 가게에 오시는 손님들이 주축이 되어 새로운 커뮤니티들도 하나 둘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을 전공하신 손님이 선생님이 되어 드로잉 클래스를 오픈하였고, 아마추어 시인 로건님과 함께 하는 시 쓰기 모임, 일본어에 관심 있는 분들이 모여서 시작한 일본어 그림책 읽기, 마크라메 클래스 등의 프로그램도 진행되면서 커뮤니티가 좀 더 다양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두번째작업실 내에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좀 더 재미있고 색다른 일을 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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