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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원필 Feb 26. 2020

카페에도 OBT가 필요하다

두번째작업실 분투기 - 가오픈의 중요성

OBT (오픈 베타 테스트)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게임을 즐기시는 분들께는 익숙하실 겁니다. 정식으로 게임이 출시되기 전 아직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베타 버전을 공개하고, 참여하고 싶은 유저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발생하는 버그나 문제점들을 오픈 베타에 참여한 유저들에게서 수집합니다. 수집된 문제점들을 충분히 해결한 뒤 정식으로 게임이 출시되죠. 


CBT (클로즈드 베타 테스트)는 OBT와는 다르게 누구나 베타 테스트에 참여할 수 없고, 사전에 신청을 통해 선발된 일부 유저들만 사전에 테스트할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나 없나의 차이입니다만 요즘 많은 게임회사들은 두 가지를 병행해서 사전에 문제점이 없는지 테스트를 합니다.


저희도 카페를 오픈 전, 부모님을 비롯해 지인들과 친구들을 대상으로 커피 테스트를 했습니다. 이건 앞서 간단히 설명드린 CBT의 개념에 가까운 형태죠. OBT는 정식 오픈 전 실제 고객들을 응대해보고 문제점을 보완할 수 있는 가오픈을 이야기합니다.


아니 무슨 카페에 OBT가 필요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건 정말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물론 아내가 1년여간 카페에서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르바이트였지 직접적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 또한 부모님이 7년이나 카페를 운영하셨습니다만 늘 구경만 했지, 뭔가 직접적으로 카페 일을 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기껏해야 일손을 돕는다는 게 설거지하는 것 정도였죠.


이런 상태에서 무턱대고 오픈한다는 것은 리스크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접 사람들과 부딪혀보지 않은 상태로 과연 카페가 제대로 운영이 될까요? 일단 오픈하고 나면 고객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요? 운영하면서 생기는 사건 사고에 우리가 준비되어 있을까요? 이런 여러 가지를 테스트하는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인테리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카페에서 꼭 필요한 원두도 선택했습니다. 가게의 사장님은 카페 경험이 있는 아내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카페 가오픈을 위한 최소한의 메뉴만을 선정했습니다.  


- 에스프레소

- 카페 봉봉 (스페인식 커피로 에스프레소와 연유가 1:1 비율로 들어갑니다. 아침에 한잔 마시면 텐션이 올라가면서 하루를 굉장히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피곤하거나 당 떨어진 기분이 들 때 한잔씩 마시면 좋습니다. 메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할게요.)

- 카페 아메리카노

- 카페라테

- 카푸치노

- 아인슈페너 (비엔나커피라고 불리기도 하며, 블랙커피 위에 달콤한 생크림이 올라간 커피 음료입니다. 옛날 마부들이 마차에서 커피를 마실 때 쏟지 않기 위해 생크림을 올렸던 것이 유래가 되어, 아인슈페너(마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단 6개의 커피 메뉴만을 준비했습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어떻게 운영했는지 놀랍네요. 실제 가게에 방문하는 손님들의 반응을 가장 중요하게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우리의 응대 방법은 제대로 된 것인지, 손님들이 주로 찾는 메뉴는 무엇인지 테스트하면서 부족한 메뉴들을 하나씩 채워가기로 했습니다. 두 사람의 첫 가게였기 때문에 처음 운영하면서 생길 각종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가오픈이라는 점을 손님들께 안내하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더라도 이해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습니다.


가오픈 기간은 10월 중순부터 말일까지 약 2주간으로 충분한 시간을 잡기로 했습니다.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 충분한 기간이 확보되어야 최소한의 고객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모자란 점을 바로바로 수정해서 보완해가는 것도 함께 테스트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오픈 이후 3일 정도의 휴식 및 정비 기간을 거쳐, 정식 오픈 날짜를 11월 1일로 확정했습니다.


대망의 가오픈 첫날, 우리는 매우 긴장하고 있었습니다. 공사 기간 동안 외부에 곧 찾아뵙겠습니다는 현수막을 줄곧 걸어놓아서 그런지 오픈과 거의 동시에 첫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가게 하시는 분들은 다들 첫 손님에 대한 기억이 있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희에게도 잊지 못할 첫 손님이었습니다. 가게 근처에 사시는 가족이라고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우리의 오픈을 무척 기다리셨다는 말에 저희는 너무 기뻤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첫 손님을 위한 음료를 만들어내리라는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첫 주문을 받았습니다.


“혹시 바닐라라테는 없나요?”


첫 주문부터 메뉴판에 없는 메뉴라니요. 저희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가오픈을 거쳐 추후 늘려나갈 예정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 네 저희가 아직 가오픈 기간이라 지금 되는 메뉴는 앞에 있는 6개가 전부입니다. 가오픈 기간 동안 손님들 말씀을 들어가면서 차차 메뉴를 늘려나갈 예정이에요.”

“그럼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랑 아이스 라테 시럽 가득 넣어서 하나 주세요.”


긴장되는 마음으로 계산을 하려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번에는 포스가 동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첫 손님과의 에피소드네요. 첫 손님부터 이런 문제가 생기다니… 우리는 둘 다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매우 당황스러워하고 있었지만 사장님은 침착하게 응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경험이라는 게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죠.


“어제 테스트할 때까지만 해도 잘 되던 카드 리더기가 갑자기 먹통이네요. 이건 저희 문제라 음료는 그냥 서비스로 제공해드릴게요.”


갑작스러운 포스의 동작 불능으로 인해 서비스로 음료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어머 아니에요. 저희가 첫 주문이죠? 옆에 편의점 있으니까 현금 뽑아서 드릴게요.”


정말 놀랍고 감사하게도 정말 가까운 편의점에서 현금을 뽑아서 계산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이런 당황스러움을 뒤로한 채, 첫 주문 첫 메뉴가 나갔습니다. 남편분께서는 정말 많은 양의 시럽을 넣어 드셨습니다.


오픈 전, 사장님은 이 지역 고객들이 즐겨찾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달콤한 음료가 메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반면 저는 커피 맛이 확실하니 메뉴는 최소화하고 기본에만 충실한 전문점의 형태로 가자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제 고집에 못 이겨 일단 가오픈 기간 동안 최소 메뉴로 테스트를 해보기로 한 것인데, 첫 주문부터 저의 생각이 틀렸음을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첫 주문의 사고 이후 겨우 포스를 정상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이후에는 다양한 주문을 받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첫 주를 보내고, 1차 OBT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개선사항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 우리만의 독특한 시그니처 메뉴가 있어야 합니다 : 물론 우리가 모카포트를 이용해서 커피를 내려주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차별화를 주기가 어려웠습니다. 우리 가게만의 특별한 메뉴를 반드시 개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 바닐라 라테를 찾는 주문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 달콤한 휘핑크림을 올린 아인슈페너 같은 음료가 있지만, 바닐라 라테처럼 좀 더 가볍고 달콤한 커피를 찾는 손님이 많았습니다.


- 커피 외의 음료가 꼭 필요합니다 : 커피를 마시지 않는 손님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습니다. 제가 카페에 가면 항상 커피만 주문해서 당연히 커피에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커피를 못 드시거나, 이미 커피를 마셔서 다른 음료를 찾으시는 손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 건물주 역시 가오픈이라고 방문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와서 정작 마실만한 음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손님들을 위한 커피가 아닌 음료부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습니다.


- 카페에서 디저트는 필수입니다 : 음료만으로 매출을 높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습니다. 음료와 함께 할 디저트의 개발을 통해 매출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만들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2주 차 OBT에는 위의 개선사항들을 반영하기 위해 우리는 가오픈 기간 틈틈이, 모든 영업이 끝난 뒤에도 늦은 시간까지 우리만의 메뉴를 개발하는데 시간을 쏟았습니다.


1차 OBT 기간 동안 가장 인기 있던 메뉴는 원두의 산미와 고소함을 받쳐주면서도 달달한 ‘카페 봉봉'이었습니다. 많은 고객들이 카페 봉봉을 더 크게 대용량으로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카페 봉봉의 레시피를 기본으로 한 새로운 스타일의 연유 첨가 커피 레시피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정말 연유가 들어간 갖가지 종류의 커피를 수도 없이 마셔보았습니다. 입에서는 연유 단내가 가시질 않고 너무 커피를 많이 맛봐서 그런지 매우 힘들었습니다. 단 음료를 많이 마셔서인지 당최 밥을 먹을 수 없어서 둘 다 살이 쭉쭉 빠지기도 했습니다.


지인들을 모아 놓고 시음도 시켜보고, 저희도 지속적으로 레시피를 조정해가며 새로운 음료인 ‘작업실 시그니처'를 완성시켰습니다. 돌체 라테나 일반 연유 커피와는 다른 독특한 식감과, 커피 향이 풍부하고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우리만의 독자적인 레시피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외에도 몇 가지 기본 음료인 수제청을 이용한 에이드, 차 등을 추가하고 브라우니, 티라미수 등의 디저트를 선보이면서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보았습니다.


우선,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작업실 시그니처는 생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습니다. 다른 음료에 비해 손도 많이 가는 편이며 레시피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다양해서 판매가가 비싼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오픈 기간 중에 아메리카노 외에 가장 잘 팔린 음료였으며, 현재까지도 매출에 큰 도움을 주고 있는 효자 상품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움직이다 보니 분업과 동선의 정리도 필요했습니다. 처음 한 두 개의 주문은 크게 문제가 없었습니다. 첫 주말을 맞았을 무렵, 5–6명 손님이 연달아 들어오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주문은 처음이었기에 동선이 꼬이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 덕에 제가 너무 당황해서 혼자 정신없어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장님의 1년간의 카페 경험이 매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손님들께 주문이 밀려 메뉴가 나가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안내해주었습니다. 또한 옆에서 당황하는 저를 잘 다독여가며 하나씩 메뉴를 내보냈습니다. 침착하게 하나씩 처리하면 되는데 혼자 당황한 제가 무안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경험의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며 빨리 카페 일에 익숙해져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는 기본적인 업무는 다 할 수 있도록 익히되, 큰 틀에서 업무를 분할해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커피를 중심으로 한 음료 제조와 뒷정리는 주로 제가 맡아서 하고, 디저트 준비를 중심으로 서빙과 기타 서비스 부분은 사장님이 주로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일이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겹쳐지던 동선도 어느 정도 정리되었습니다. 업무의 분담 덕에 효율성도 제법 올라갔고, 지금은 주문이 몰려도 당황하지 않고 하나씩 침착하게 처리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는 2주간의 가오픈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우리는 3일의 휴식 기간을 가졌습니다. 휴식 기간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쉴 수는 없었습니다.  2차 OBT까지 마친 뒤 나온 여러 문제점들을 좀 더 세세하게 보완해 나갔습니다.


그로부터 3일 뒤인 2018년 11월 1일 오전 11시. 드디어 정식으로 ‘두번째작업실'을 오픈했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본격적인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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