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작업실 분투기 - 콘셉트 설정
사실 무모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카페를 열기로만 결정했을 뿐, 우리는 어떤 콘셉트의 공간을 만들지 전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에라 모르겠다. 부동산부터 계약하자!!'. 왠지 순서가 뒤바뀐 듯 하지만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콘셉트를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저와 아내는 성향과 스타일이 많이 다른 편입니다. 물론 결혼 생활 7년여의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의 호불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은 우리 두 사람 모두가 공통적으로 만족하고 좋아할 만한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집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리 두 사람의 취향에 잘 맞는 콘셉트를 설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결혼 7년 차에 서로의 취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니 굉장히 새삼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각자가 좋아하고 선호하는 취향이 무엇인지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에 공통점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막상 둘의 취향을 하나씩 살펴보니 생각보다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훨씬 많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취향부터 각자 좋아하는 음식, 스타일, 생활패턴 등 이제는 많이 비슷해졌구나 싶었던 부분도 아직까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공통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결혼할 무렵에서, 연애하던 무렵, 친구로 지내던 시절로 점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처음 서로를 알게 된 장소가 입시 미술 학원이었습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고, 각자 원하던 대학교로 진학했습니다. 비록 저는 산업디자인 전공, 아내는 서양화 전공으로 서로 전공분야는 다르지만 ‘미술대학’이라는 경험은 우리가 가진 큰 공통점이었죠.
각자 서로의 대학생활을 돌아보면서 가장 나 자신 다움을 느꼈던 공간이 바로 ‘작업실'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시간과 청춘을 작업에 매진하던 장소이자,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던 공간이며, 때로는 진지한 토론이 장으로, 가끔은 커피 한잔 마시면서 쉬기도 하는 일종의 살롱이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맞아, 작업실~!!”
우리가 생각하던 이상적 카페의 모습이 대학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작업실이라는 공간 안에 모두 반영되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작업실 대신 곳곳의 카페를 전전긍긍하던 것도 떠올랐습니다. '작업실'이 바로 우리의 근본이었던 겁니다.
‘작업실'이라는 커다란 콘셉트가 잡히고 나니, 다음 스텝부터는 정말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콘셉트를 보다 구체화하는 일이 생각보다 수월해졌죠. 물론 서로의 취향과 전공의 차이에서 오는 작업실의 이미지가 서로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조율하는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하긴 했지만, 공간을 구성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정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 테이블 회전율보다는 시간 점유율을 높입니다 : 우리가 계약한 공간의 위치는 이른바 상권이라고 부를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이면도로, 심지어 원룸촌 한복판에 있는 만큼 일부러 우리 공간까지 찾아온 손님들이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도록 여유롭게 공간을 구성하기로 합니다.
- 대형 작업대는 반드시 만듭니다 : 혼자, 혹은 여러 명이 앉아서 함께 작업할 수 있는 대형 작업대는 꼭 하나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작업실이라는 공간의 상징으로 작용하길 바랐습니다. 또한, 이 곳에서 실제로 많은 세렌디피티(우연한 만남)와 사람들의 교류가 일어나길 기대했습니다.
- 테이블과 의자는 작업하기 편리한 높이로 구성합니다 : 경험에 의하면 스타벅스와 같은 대형 브랜드들에 있는 바 테이블 같은 경우, 장시간 작업하기에는 다소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허리가 좋지 않아서 커피를 마시며 작업하는데 무리가 있었습니다. 어차피 시간 점유율을 높이기로 결정했다면, 일하기에 적합한 높이의 테이블과 의자는 작업실의 필수 조건입니다.
- 테이블 수는 가능한 최소화 합니다 : 공간대비 테이블 숫자가 너무 많지 않도록 레이아웃을 구성하기로 했습니다. 처음부터 직원을 두고 일할 수 없어, 일단 둘이서 공간을 운영해야 했습니다. 공간 전체를 충분히 핸들링할 수 있도록 전체 테이블 수는 지속적인 운영에 지장이 없는 한 최소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공간 구성에 유동성 있어야 합니다 : 단순히 카페로만 사용할 생각이 아니고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레이아웃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붙박이 형태의 좌석은 최대한 지양하고, 공간을 여러 용도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최대한 널찍하게 레이아웃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 공간의 분리/확장이 편리하게 구성합니다 : 인테리어를 할 때, 공간 구분을 위해 공간을 분리해버리면 앞서 이야기한 유동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동형 파티션을 만들어 이벤트, 커뮤니티 활동 등 공간을 사용하는데 분리 / 확장이 편리하게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 커피는 당연히 맛있어야 합니다 :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새로운 카페를 찾아다니다 보면 커피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습니다. 커피 맛은 카페라는 공간의 핵심 콘텐츠입니다. 취향에 잘 맞아 내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의 양질의 커피를 제공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 빈티지를 적극 활용합니다 : 정해진 예산 안에서 공간 구성을 하기 위해서, 집에서 사용하던 물건들 중 활용할 수 있는 물건들은 최대한 재활용합니다. 또한 새롭게 구매해야 하는 물건들의 경우, 반드시 신제품을 사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신제품보다는 중고제품을 적극 구매,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 우리 두 사람의 취향이 가장 중요합니다 : 집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다른 누구보다 우리 스스로가 질리지 않고 즐겁게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취향껏 공간을 디자인하고 연출합니다. 또한, 우리 취향이 마음에 드는 손님이라면 기꺼이 우리 가게의 단골이 되어 줄 수 있을 겁니다.
명확한 콘셉트 덕분에 카페 이름 역시 ‘작업실'로 굳혀져 갔습니다. 다만, ‘작업실'이라는 명칭이 일상적으로 너무 많이 쓰이고 있어 대외적으로 인지도를 쌓는데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어떤 작업실이 좋을까? 영어로 쓰면 괜찮을까? 다른 외국어로 쓰면 어떨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우리는 ‘두번째작업실'이라는 이름으로 결정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합니다. 공부를 합니다. 무언가를 만들어냅니다. 교실, 사무실, 혹은 개인의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말이죠. 하지만 때로는 그 장소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합니다. 작업실을 떠나 새로운 곳에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런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이 곳이 그들의 ‘두번째작업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결정했습니다.
진짜 우리가 바라던 소망대로 사람들의 ‘두번째작업실'이 될 수 있을까요?
기대 반 걱정 반을 가지고 우리는 다음 스텝인 인테리어 디자인 설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