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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원필 Feb 23. 2020

공간 디자인의 시작

두번째작업실 분투기 - 공간 디자인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요. 우리는 처음 이 곳을 계약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무모하게 셀프 인테리어로 직접 해보자는 큰(?)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시공을 한다면 예산에 대한 절약도 충분히 할 수 있을뿐더러, 시간적으로 크게 구애받지 않으니 천천히 직접 하나씩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한 가지씩 만드는 일 자체가 의미도 있고 즐거움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죠.


무사히 부동산 계약을 마친 우리는 매일 같이 가게 자리로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약하던 당시, 공간 안쪽은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지만 아직 이전 가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바닥에는 색 바랜 장판이 깔려있었고, 천정에는 석고 텍스로 불리는 사무실 석고 타일이 중간중간 깨진 채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공간을 분리해 따로 임대를 주셨었는지, 공간 중간에 공간 분리를 위한 나무 가벽도 서있었습니다. 또한, 벽에는 햇볕에 오랜 시간 노출되어 누렇게 바래버린 벽지가 두텁게 발려있었습니다. 두터운 벽지 여기저기에는 왜인지 모르겠을 기름때 같은 것들도 심하게 흐른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용감하게 낮에는 철거를 직접 하고, 저녁에는 우리가 그려가는 공간을 하나씩 설계해보자고 계획했습니다. 그리고 계약 다음날부터 벽지를 뜯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작할 때는 할만하겠거니 생각했는데 막상 진행을 해보니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처음 저희의 예상으로는 벽지 떼는데 2–3일 정도면 깨끗하게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시작해보니 10여 일 가까이 벽지만 뜯고 있었죠. 바닥은 장판만 걷어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장판 아래에 데코타일이 한 겹 더 숨어 있었고 그마저도 본드가 덕지덕지 발려 있어 제대로 떨어지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이러다 본격적인 카페 일은 시작도 못해보고 골병이 나겠다 싶었던 우리는 다시 한번 계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접 시공한다면 아무래도 목돈이 들어가는 일은 확실히 적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리고 마무리되었을 때의 퀄리티 역시 보장할 수 없었죠. 무엇보다 지금의 진행속도로 일을 계속 진행한다면 시작은 여름에 했지만, 이듬해 1월이나 되어야 카페의 오픈이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최소 6개월 정도가 소요될 것 같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그 기간 동안 수입 없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써가면서 하나씩 시공을 해나간다면, 대략 얼마의 예산이 들어갈까요? 결국 우리는 초기에 목돈이 투자되더라도 사람을 써서 빠르게 진행하고 오픈해서 수익을 내 들어간 비용을 회수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의 다음 미션은 우리와 함께할 인테리어 업자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도 받고, 직접 인테리어 업체에 찾아가면서 비교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차례 발품을 판 결과, 우리와 연령대가 비슷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 목수님과 함께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목수님이 이전에 작업한 카페의 인테리어를 보면서 깔끔하게 마감해 완성도가 높다는 점이 매우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목수님과 함께 인테리어를 진행하는 팀이 전반적으로 젊다는 것이 가장 큰 메리트였습니다.


인테리어 팀의 연령대가 많고 적음에 따라 장단점이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분들도 분명히 계십니다. 일반적으로 인테리어를 작업하는데 팀의 연령대가 많은 경우, 풍부한 연륜과 경험이 있습니다. 실제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자주 발생하게 됩니다. 높은 연령대의 팀의 경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노련함이 큰 무기로 작용합니다. 반면, 원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실행함에 있어 본인들의 작업 방법만을 고수하면서 거부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공사 기간 중 대화를 통한 소통에서 다소 힘든 경우가 있는 편입니다. 아주 드문 극소수이긴 하지만 일부 악질적인 업자들의 경우 일부러 시간을 딜레이 시키면서 예산을 늘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젊은 팀은 아무래도 경험과 연륜의 차이가 있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은 편입니다. 현장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문제 발생에 대한 노하우도 적다 보니, 호미로 메울 일을 가래로 막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반면 트렌드에 밝은 편이고, 본인들의 래퍼런스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퀄리티를 만들어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젊은 연령대의 팀이 좀 더 열린 사고 덕분에 커뮤니케이션에서 좀 더 수월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젊은 팀이라고 전부 그렇지는 않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우리가 의뢰한 팀은 초과 예산 없이 예산 범위 내에서 움직여주었습니다. 우리의 기대 이상으로 예산의 별도의 초과 없이도 요구 이상의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좋은 팀을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혹, 소개가 필요하시다면 연락처를 공유해 드릴 수 있습니다. 따로 연락 주세요.^^)


인테리어 시공을 전담하여 진행할 팀을 선정하고 나니, 공간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났습니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콘셉트만 결정되었을 뿐, 실질적으로 공간 디자인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그려갈지 아직까지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내와 제가 생각하는 ‘작업실'의 이미지가 달라 이를 조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핀터레스트를 이용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작업실, 그리고 이상적인 카페의 모습에 대한 이미지보드를 만들어보고 이를 비교해 보기로 했습니다.


작업실이라는 기본 콘셉트 이외에도 ‘빈티지'라는 보다 구체적인 공통적 키워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둘이 각자 만들어본 이미지보드는 꽤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빈티지라는 단어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이미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작 두 사람의 빈티지의 이미지는 완전 다른 스타일의 두 가지 부류로 나뉠 수 있었습니다. 날 것, 건축물이 가진 소재와 마감을 그대로 남긴 '로프트'에 가까운 미국 / 유럽 스타일의 빈티지 이미지와 일본이나 대만에서 볼 수 있는 과거 시대의 양식을 그대로 살린 레트로 스타일 빈티지로 나뉘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디테일에서 엄청난 차이를 느낀 우리는 수많은 대화를 통해, 이미지보드를 점차 좁혀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추구하는 빈티지 양식을 공간 안에 어떤 식으로 그려나갈지를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결정된 이미지 보드를 목수님과 수시로 공유하면서 공간의 레이아웃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이전에 했던 공간 디자인 일의 경험을 살려 인테리어 설계 도면은 직접 그리기로 했습니다. 여러 가지 레이아웃을 만들어 경우의 수를 점차 줄여가면서 큰 레이아웃을 만들었습니다. 화장실은 현재 있는 공간 그대로 사용하고, 수도설비 공사의 최소화 및 고객 동선 확인을 위해 바의 위치는 입구 쪽으로 설정했습니다.


처음 바의 위치를 정할 때에는 입구 앞쪽에 바가 있으면 다소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작업실에 찾아온 손님들이 오고 가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서로 인사할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랐습니다. 바의 위치를 결정하니 공간 레이아웃의 큰 부담이 덜어졌습니다.


운이 좋게도 설계를 진행하는 동안 많은 자영업 하는 분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 7년 정도 카페를 운영하신 부모님도 계셨고, 아내가 지역 내 개인 카페에서 알게 된 여러 사장님들께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중 공간을 구성하는 데 있어, 창고 겸 우리가 다리 뻗고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은 많은 사장님들께서 꼭 있어야 한다고 한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 공간을 확보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카페 일을 하다가 지칠 때 중간에 잠시 쉴 수 있어 지친 체력을 회복해 다시 열심히 일할 수 있었죠.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카페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쉴 공간을 꼭 확보해두시길 바랍니다. 


응당 작업실이라 하면, 일을 하는데 최적화되어 있어야 하죠. 천정의 높이가 3m 이상인 공간이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인테리어 시작 전에는 가게 천정 높이가 2.4m로 약간 낮은 편이었고, 석고 텍스로 마감된 천장이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군데군데 석고 텍스가 깨져있어 흉한 부분들도 있었죠. 그래서 노출형 천정으로 결정하고 천정 마감재를 철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석고 텍스를 떼어내고 높아진 천정을 보니 굉장히 터프한 이미지가 강하게 들었습니다. 합판을 곳곳에 대어 생긴 판재의 모양과, 그로 인해 생긴 표면 질감의 느낌이 독특한 개성을 주어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습니다. 


벽은 과거 우리가 다니던 학교 작업실의 이미지를 살려보고자 위아래 다른 컬러의 투톤을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바를 비롯한 기타 공간 구성을 위한 벽과 가구의 소재는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기 위해 목재를 선택했습니다. 보통 예산을 절약하기 위해 MDF로 기본 공사를 하고 목재 느낌의 시트나 무늬목을 사용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형식으로 시공된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소재의 깊이감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진짜 나무가 주는 풍부한 질감과 깊이감은 시트나 무늬목 마감이 따라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꼭 진짜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기를 바랐습니다. 예산에 맞춰 여러 종류의 목재중 가장 저렴한 일반 합판으로 시공하기로 했습니다. 저희의 제안에 목수님께서는 처음에 굉장히 난색을 표했습니다. 보통 나무 느낌을 살리는 인테리어라면 깨끗한 느낌의 자작 합판을 사용하는데, 거칠고 색도 제각각인 일반 합판을 사용하자고 하니 많이 당황하셨습니다. 어떻게든 진행하고 싶었던 우리는 그간 콘셉트를 준비하며 모아놓은 레퍼런스 이미지와 실제 적용된 공간을 직접 찍어온 사진들을 보여드리며 설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드스테인으로 색을 입혀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며 마무리하였습니다.



평면도 - 입구 쪽에 바를 배치하였으며, 공유 공간과 개별 공간을 구분할 수 있도록 이동식 파티션을 구상하였습니다.
실측 후 스케치업을 이용하여 직접 설계를 시작하였습니다. 최종 마무리된 형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내부 공간의 레이아웃입니다. 가장 안쪽 공간을 구분하여 창고 겸 휴식공간으로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입구 쪽 공간 구성입니다. 대형 테이블과 매대를 설치하였으며, 창가 쪽에도 좌석을 배치하였습니다.
건물 외부에서 본 모습. 실제 시공된 모습과 거의 일치합니다.



이렇게 그려진 도면을 목수님과 공유하고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중간중간 몇 번의 디테일 수정을 진행했습니다. 실제 공사가 시작되면서, 도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부분들이 조금씩 나타났습니다. 또한, 설비와 집기의 배치 등의 문제로 크고 작은 수정이 필요했습니다.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우주의 온 힘을 모아 약 3주간의 공사가 진행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인테리어 팀에서 크게 수고해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실제 시공 후에 목수님은 결과물이 무척 마음에 든다며, 추후에 다른 작업에도 이런 스타일을 적용할 수 있을 거라며 만족스러워하셨습니다. 좋은 레퍼런스가 생겨 감사하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완성된 공간은 저희의 기대에도 완벽하게 부응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그리고 꿈꿔 온 바로 그 공간이 현실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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