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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Apr 24. 2022

엄청난 좌절, 그리고 새로운 시작

13년 전, 부산에서 대학교에 입학하고 3개월은 대학 생활을 만끽했다. 선배들과 엠티에 가고 동기들과 만나서 술 마시고 동아리에 가입해서 친목을 도모했다. 과방에도 자주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도 초대하고 내 방에서 잠도 자고 대화도 했다. 고등학교 때 누리지 못했던 엄청난 즐거움이 대학교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고 나는 계속 술을 마셨다. 하루는 친구가 갑자기 불러서 치킨을 마시며 술을 마시고, 하루는 선배들이 불러서 술을 마셨다. 그렇게 계속 마시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술이 달아졌다. 친구들과 ‘알코올 원정대’를 만들어서 술을 마실 정도였다. 단골 술집이 있을 만큼 미친 듯이 술을 마셔댔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끊었다. 아니 끊어버렸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동아리 엠티와 학부 엠티가 겹치면서 이틀 뒤에 바로 술을 연달아서 마신 탓에 3일을 밥을 먹지 못했다. 속이 너무 더부룩하고 잘못 먹으면 토할 것 같아서였다. 그 후로 이건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그 여정은 막을 내렸다. 더는 술을 마시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캠퍼스의 낭만에 푹 빠졌다. 집에 프린터가 없어서 학교 사무실에서 자료를 다운 받아 프린트하고 수업에 들어갔다. 원어민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한국인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그렇게 한 학기는 순조롭게 흘러갔고 성적은 4.5점 중에 4.42점이 나왔다. 일본어 과목은 전부 A+가 나왔지만 영어 발음 수업에서 A-가 나오는 바람에 점수가 깎였다. 그래도 장학금이 나오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것은 내 앞에서 가로막혔다.


학부 사무실에 전화해서 왜 장학금을 받지 못했는지 물어봤다. 내가 12등이라고 했다. 11등까지는 D급 장학금이 나가지만 12등부터는 안 준다고 했다. 너무 황당했다. 다른 학교 같았으면 전액 장학금이 나오고도 남을 점수이건만 워낙 경쟁이 치열하고 앞 등수 친구들은 4.5점이라서 점수가 살짝 적어서 그런 것이었다. 억울하고 분했다.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 교수님에게 성격도 좋고 성적도 좋아서 분명 잘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칭찬을 들었는데 장학금을 받지 못하다니.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에 들어가고 싶어도 뽑히지 못해서 자취하는데 운이 없는 건가 싶었다. 왜 나는 장학금을 받지 못하나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1학년 대표를 뽑는 날에 강당에서 한 선배에게 2+2 프로그램(지금 대학교에서 2년을 다니는 일본에 있는 대학교에서 2년을 다니는 프로그램)에서 돈을 지원해주는 학교가 아니면 한 학기에 돈 천 만원이 깨진다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에 교직을 이수하는 과정을 신청하지 못하게 됐다. 정확히는 내가 시기를 놓쳐서인데 언제인지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정신이 차려졌다.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학교에 들어가면 교사가 되는 과정을 듣겠다던 내 계획은 그렇게 물 건너갔다. 2년은 학교를 다니고 2년은 일본의 명문대인 와세다대학교를 가겠다던 어린 날의 포부는 한낱 먼지가 되고 말았다.


엄청난 좌절을 하면서 일이 너무 안 풀리던 어느 날, 아는 사람에게 일자리를 소개받았다. 부산에 내려간 지 1년이 다 되어가던 날이었다. 한 호텔 연회장에서 결혼식이 있을 때 음식을 전달하는 서빙 아르바이트였다. 처음에는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해보기로 하고 하겠다고 말했다. 평일에는 수업을 듣고 일이 있는 주말에만 나갔다. 준비물은 머리망, 검은 구두, 스타킹. 옷은 그곳에 있는 유니폼을 입으면 된다고 했다.


나가기 전까지도 엄청난 고민을 했다. ‘이거 해도 될까?’ ‘설마 이거 한다고 성적이 떨어지진 않겠지?’ 하지만 고민만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가겠다고 했는데 소개해준 사람이 민망하지 않게 당일이 다가왔고 드디어 나갔다. 2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나는 후회했다. 이 일을 나가선 안 되었는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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