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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May 01. 2022

나 안 할래

잠시 거슬러 6개월 전, 첫 아르바이트를 구했었다. 스무 살 때 누구든 해본다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다. 용돈이 너무 부족했고 10만 원 가지고는 밥 먹고 무언가를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서 구하게 됐다. 하지만 사흘 만에 잘렸다. 첫 아르바이트라 긴장도 많이 했고 손님들이 담배를 찾았는데 그게 뭔지 몰라서 한참을 헤맸다. 목소리도 크게 높여서 인사를 하고 손님이 가져온 상품을 계산했고 없는 것을 채워 넣었다. 열심히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갑자기 사흘이 지나 사장님이 나를 불렀다.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전에 하던 알바생이 다시 하겠다고 해서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전에 하던 사람이 다시 하겠다는 건 솔직히 거짓말인 것 같다. 그저 내가 부족해서 더는 쓸 수 없어서겠지. 그게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나는 우울해졌다. 사회생활 처음인데 바로 잘리고 일을 구하는 게 망설여졌다. 다시 일을 구할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아는 사람이 일 좀 해보라며 구해준 일이 바로 호텔 연회장 아르바이트였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집에서 주는 용돈으로는 대마도를 갈 수 없었다. 여기서 갑자기 웬 대마도 할 것이다. 우리 학교에서는 대마도로 환경 정화 봉사 활동을 빙자해 술을 마시러 간다. 1박 2일로. 그런데 나는 가지 못했다. 1학년 초반에 선배들,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실 돈을 모으기 전에 집에 전화해서 이러이러한 사정으로 대마도에 가고 싶은데 15만 원만 줄 수 없냐고 했다. 엄마는 단칼에 거절했다. 돈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단돈 15만 원이 없다니. 말이 되는 소린가. 하지만 우리 집 사정에는 15만 원도 많은 돈이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포기했다.


집안이 원망스러웠다. 그 돈이 뭐기에 이렇게 울게 만드는가 싶었다. 나도 친구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돈이 없어 남들 다 하는 봉사 활동 한 번 하지 못하고 6개월 뒤에 새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내가 처음으로 후회하는 날을 맞이하는 순간이 오게 한 연회장 서빙 아르바이트. 준비물을 챙기고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해 옷을 갈아입고 나왔더니 결혼식에 나갈 스테이크가 온 선반에 놓여 있었고, 나와 같은 처지의 아르바이트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나보다 어린 친구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고작 열아홉이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정성을 다해 온몸을 바쳐 스테이크를 날랐다. 손님들한테 폐를 끼치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시 디저트를 날랐다. 주말 알바는 그렇게 끝이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음 일정을 위해 그곳을 정리하는 일 또한 시작되었다. 의자를 옮기고 그릇을 다 치우고 컵을 쟁반에 옮겨 날랐다. 촛불을 끄고 그곳을 수놓았던 모든 장식은 전부 치웠다. 그리고 새 행사를 준비했다. 접시를 여섯 사람이 앉을 만큼 간격을 놓았고, 숟가락 포크도 놓았다. 쟁반보다 큰 컵이 든 걸 들고 와서 꺼내 닦고 접시 옆에 두었다. 구두를 신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니 녹초가 되었다. 같이 일하던 아는 사람도 지친 것 같았다.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홀로 앉아서 후회의 말을 했다. “나 안 할래.” 그걸 어디서 들었는지 그 사람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은아 씨, 그러면 안 돼요.”


하지만 너무 피곤했고 학교생활은 엉망이고 다른 사람들처럼 편하게 편의점 생활을 할 수도 있었는데, 다른 걸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이걸 선택한 내가 싫었다. 이건 3D였으니까. 더럽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니까. 무슨 행사인지 어떤 사람들이 오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저 직원이 하라는 대로 머리를 묶은 채 해야 했으니까. 집에서 40분은 족히 걸리는 곳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이 일을 하려니 정말이지 곤욕이었다. 소개해준 건 고마웠지만 솔직히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였는데 그러면 안 된다니. 그러면 안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나는 이걸 할 수밖에 없고 벼랑 끝에 왔으니 선택할 수밖에 없으니 그냥 하라는 거였을까 아니면 주어진 일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라는 걸까. 남들처럼 살 수 없으니까 이거라도 하는 게 어딘가 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는 거였을까. 글쎄 솔직히 지금도 모르겠다. 왜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했는지. 하지만 나는 안다, 이 일이 중고신인의 시작이자 내가 여태 경험해온 수많은 아르바이트의 시작이었음을.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었음을.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생각보다 오래 남들보다 취업의 힘듦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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