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평일에는 학교에, 주말에는 호텔 연회장에서 지냈다. 말은 힘들다고 해도 나를 써주는 곳이 그곳뿐이었다. 호텔 연회장에서 일한 건 3년 정도다. 하지만 기간만 길지 다닌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왜냐하면 열아홉 살 때 3개월 다니고 몇 년이 지나 투잡(평일에는 학교 끝나고 카페 겸 음식도 만드는 곳을 다니고 주말에는 호텔 연회장을 갔다)을 뛰러 다닐 때 3개월을 다녔다. 그래서 총 기간은 6개월이다.
이때 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일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겁쟁이였기 때문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겉으로는 완벽하다 자부하지만, 실은 하나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시작조차 안 하는 아주 멍청한 겁쟁이. 그래서 아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된다는 말에 화가 났고 내 감정을 몰라준다는 생각에 그저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다른 일도 할 수 있었다. 아는 언니가 대구에서 살아보지 않겠냐는 말에 덥석 알겠다고 하고 거기서 살면서 주방에서 일을 했다. 내가 맡은 일은 뷔페에 가면 일식 코너에 있는 캘리포니아 롤을 마는 것이었다. 김밥을 말 듯이 김이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밥이 위로 올라가게 하고, 안에는 무순 같은 걸 넣고 말고 나서 그 위에 장식을 올리면 끝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하나부터 열까지 엄청 혼나면서 배웠다. 여자라서라기보다 그저 잘 몰라서 매일 혼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해야 한다고 혼나고, 저렇게 하면 그건 아니라며 또 혼나고. 정말이지 주방 일은 한도 끝도 없이 바쁘고 정신이 없고 음식을 내가는 데만 집중해야 했다.
내가 롤을 말고 있으면 손님이 내 앞에서 계속 기다렸다. 일이 익숙지 않아 속도가 느렸는데 그걸 보고 있던 선배가 자기가 하겠다며 앞으로 나섰고, 엄청난 속도로 손님을 보냈다. 나는 그걸 보면서 내가 너무 못해서 그런 거라 자책했다. 하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뒤에서 뒤치다꺼리를 했다. 주방에서는 감정은 사치였다. 식기를 정리하고 도구를 씻고 개수대를 깨끗하게 닦았다. 그리고 선배들이 만든 음식을 날랐다. 모자란 음식이 없는지 살폈고 사람이 부족한 코너에 가서 일을 도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칭찬이 아닌 욕이었다.
“이렇게 해야지!” “넌 이거밖에 못 하냐?” “네가 할 수 있는 게 뭐야?” “빨리 해!” 쌍욕이 날아오는 경우도 흔치 않았다. 욕이란 욕은 여기서 다 먹은 것 같다. 게다가 성희롱이 난무했다.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스물한 살의 나는 처음으로 지옥을 경험했다. 대다수가 남자였고 나는 소수였다. 아무리 내 귀를 가리고 막아도 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들을수록 화가 나고 반항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를 여자 취급하지 않았다. 나는 투명 인간이었다.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내가 보기엔 웃는 게 다가 아니었다. 온갖 성적인 발언이 난무하고 주방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즐거운 직장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요즘 말로 헬(Hell)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벗어나고 싶었다. 밥을 먹는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먹고 있어도 먹는 게 아니었다. 목구멍으로 제대로 들어가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삼키는 게 전부였다. 어떤 날은 화장실에 가서 구토를 했다. 헛구역질도 하고 진이 빠졌다. 죽고 싶었다. 그런데 죽을 수 없었다.
죽으려고 건물 옥상에 가서 밑을 내려다봤다. 장애물을 넘어서 뛰어내리려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라고 여겼다. 죽으면 차라리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언니가 와서 뭐 하냐고 물어봐서 죽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라며 괜찮은 척했다. 괜찮을 리가 없는데 뭐가 괜찮다는 건지 나도 알 수 없었지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면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괴로웠다. 삶을 지탱하는 게 버거웠다.
결국 일을 그만뒀다. 입사한 지 겨우 29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오던 날, 다른 직원들에게 그만둔다고 말했다. 왜 그만두냐는 말을 들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괴롭혀서 그런 거냐는 말을 들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말만 했다. 괜히 말해봤자 들어주지 않을 게 뻔하니까. 자기들이 얼마나 잘못했는지 모를 텐데 겨우 그것 때문에 그만두냐는 말은 듣기 싫었다.
나오고 나니 벗어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전에 일했던 곳에서 벌어진 생각이 들어서 편하지만은 않았다. 엄청난 일이 벌어졌던 그 현장에 다시 갈 일은 없겠지만 생각은 다시 그곳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