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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나무 Jun 05. 2022

차가운 고시원 방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여태까지 일한 건 호텔 연회장 6개월, 패밀리 레스토랑 2개월이라 나이도 나이이지만 경력이 적은 편이었다. 게다가 일해본 곳이 거의 없어 면접을 보지도 못한 채 서류에서 다 떨어졌고, 결국 또 패밀리 레스토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게 되었다. 면접을 볼 때 식당 이름을 말하니까 거기서 일했냐고 하면서 알은체를 했고 바로 취업이 되었다. 역시 경력이 있어야 취업이 된다니 만약 신입이었다면 일을 구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전에는 롤을 마는 김밥 마는 것처럼 일본 음식을 만드는 파트에서 일했다면 이번에는 샐러드를 만드는 파트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전에는 내가 다 음식을 만들고 재료가 상하지는 않았는지 일일이 먹어보면서 확인하는 작업이 있었다면, 여기서는 그럴 필요도 없었다. 같이 일하는 분들이 나보다 훨씬 잘 만들고 일손이 부족한 편은 아니어서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일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음식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확인하고 부족하다면 새로 만든 음식을 가져다 놓고 그 위에 남은 음식을 채워 넣는 방식이었다.


여기에 다닐 땐 혼자 살았다. 원래는 같이 살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사정이 생겨서 떨어져 나왔다. 갑자기 나온 터라 살 곳이 없어졌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군데 돌아다니면서 집을 구하면 정말 좋았겠지만, 수중에 가진 돈이라곤 고작 50만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고시원에 들어갔다. 물론 다른 데 살 때도 고시원에 있었다. 하지만 마침 같이 살 사람이 생겨 고시원에 살다가 그 사람 집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고시원에 산 경험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3평도 안 되는 곳에 침대와 옷장, 책상이 있는 곳에 살게 된 것이다. 그때 당시 내가 살았던 방이 20만 원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저렴한 금액이다.


혼자 살다 보니 밥을 제대로 챙겨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끼만 먹었다. 내가 다니는 직장이 주방이라 점심을 챙겨준다. 그래서 그때만 먹고 아침과 저녁은 굶었다. 그동안 집 근처에서 일을 해서 운동을 할 시간도 없었을뿐더러 오래 일해야 해서 쉬기 바빴다. 그런데 마침 돈도 별로 없어서 교통비를 아낄 겸 걸어 다녔다. 내가 사는 곳에서 직장까지 걸어가면 꼬박 1시간이란 시간이 걸린다. 출근이 10시라 아침 8시에 일어나 씻고 준비해서 나가면 8시 50분쯤 되고 그때부터 1시간씩 걸었다. 퇴근해서도 1시간을 걷고 가끔 시간이 나면 공원을 걸었다. 


그렇게 살면서 몸무게가 10kg 정도 줄었다. 당시 내 몸무게가 50kg 중반 정도였는데 아주 정상이었다. 그때는 삼시 세끼를 아주 잘 챙겨 먹어서 그 정도가 되었는데 하루에 한 끼만 먹고 걷는 시간이 거의 두세 시간이 되다 보니 살이 빠질 수밖에. 특히 20대 초반이라 더 잘 빠졌다. 그리하여 내 몸무게는 남들이 바라고 바라던 45kg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키가 152.5여서 아주 작다. 이제야 적당한 키와 몸무게가 된 것이다. 


사실 이 몸무게면 만족하고도 남을 일인데 나는 왠지 모르게 더 빼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많이 빠진 건데 더 빠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어떤 사람이 내가 무릎을 꿇고 앉았더니 너무 살 많이 찐 거 아니냐는 소리를 나에게 아무런 필터 없이 던졌기 때문이다. 얼굴도 크다고 그러고. 그때는 그냥 웃고 넘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열받고 화가 솟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강박증이 시작된 것은. 


지금도 그때처럼 45kg이지만 그때처럼 강박증이라기보다 살이 쪄서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오기가 생겼다. 기어코 보여주고야 말겠다. 내가 빼고 만다. 당신이 나를 그렇게 말하지 못하게 아주 예쁘게 말라서 절대 살이 안 찌는 몸을 만들겠다고 그렇게 다짐했다. 그렇게 원래 55kg이었던 몸무게가 한 달 만에 45kg이 되었다. 기쁨도 잠시 나는 다시 암울해졌다. 사람들의 시선과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나도 저렇게 됐으면 좋겠다.” “와, 대박” 이런 소리가 정말 내가 지나가면 마구 들렸다. 이 몸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방법은 없었다. 아니 이렇게 사는 게 차라리 뚱뚱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너무 많이 먹었다 싶으면 손을 입에 넣어 게워내고 아침은 과일 주스로 때우고 점심은 컵라면 작은 거에 밥을 반 공기 먹고 저녁은 과자로 때우거나 아예 먹지 않았다. 이걸 4년 동안 유지했다. 그리고 나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차가운 고시원 방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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