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루나무 Jun 27. 2022

퇴근길에 비를 맞으며 울었다

또 하루는 퇴근길에 비를 맞으며 울었다. 그날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일이 끝나고 우산을 사야 해서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내게 있던 돈은 단돈 천 원이었다. 이걸로는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세 시간 동안 걸으면서 느낀 건 하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걸으며 내 잘못을 생각해보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으니까. 남들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대학교에 다니고 캠퍼스의 낭만에 빠지기도 하고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농담 삼아 이야기도 하고 유학 가서 고생하지만 그래도 경험을 쌓기도 하는데, 나는 대학교는 다니다 휴학하고 먼 타지에 와서 일만 하다가 아는 사람 하나 없어 집에 갇혀 사는 이 삶이 과연 맞는 것인지, 정말 알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는 걸까 생각이 참 많았다. 그래서일까. 비를 맞으며 그동안 겪었던 일들이 죄다 떠올랐다.


열아홉 살에 대학교에 입학해서 장밋빛일 줄 알았던 삶이 갑자기 물거품이 되고 유학은커녕 일터에 놓여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겪으며 산 것. 어느새 사회생활이 익숙해져 나도 모르게 점점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감정을 돌볼 새도 없이 일만 죽어라 하다가 손을 다쳐서 예전과 같은 삶은 살 수 없게 된 것. 일 열심히 하려고 들어갔다가 갑자기 한순간에 직장이 지옥이 된 것 등등. 그 모든 일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가는데 정말 누가 봐도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고단하고 괴롭고 힘든 삶이었다.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돈을 벌지 않냐고. 아르바이트이기는 하지만 어디서든 일하고 밥을 얻어먹기는 하지만 먹을 수는 있고 몸은 그나마 건강하지 않냐는 말. 사지가 멀쩡하고 생각이 있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런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지 않냐는 말.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나라고 남들처럼 못 살라는 법은 없으니까. 정직원이 아니어도, 비록 중고신인이지만 일은 구하고 정말 힘들고 죽지 못해 사는 삶이지만 어떻게든 먹고는 사니까 괜찮은 거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어린 나이가 아닌가, 스물한 살이라는 나이는. 솔직히 말하자면 젊다고 해서 무조건 고생해야 하고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무슨 일이든 못 하겠냐는 그 말은 정말이지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일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하루라도 벌지 않으면 죽어야 하는데, 쉽게 죽을 수 없고 자살하고 싶어도 부모가 걱정되고 남겨질 사람들이 걱정되어 죽을 수 없으니 일하는 것뿐이다. 일이라는 건 다 어렵고 고되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남들이 안 하려고 하는 3D 업종, 더럽고 힘들고 냄새나는 그런 아주 힘든 곳에서 일하는 건데 그게 힘들다고 말하지 않으면 뭐가 힘들다는 걸까. 이렇게 사는 삶이, 아주 작은 한 칸짜리 방에서 살면서 겨우 몸만 씻고 나가 한 시간가량을 걸어서 출근해 또 한 시간을 걸어서 퇴근해서 저녁도 못 먹고 잠만 자고 나와서 일만 하는 그런 죽지 못해 사는 삶이 싫은 이 사람에게 그런 말은 엄청나게 치명적이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이 있다. 그게 나에게는 젊을 때 사서 고생한다는 말이다. 젊을 때 사서 고생하면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나중에 엄청 고생한다. 왜냐하면 지금 와서 느끼는 건데 이십 대 초반부터 쉬지 않고 일하니까 시간이 지나서는 번아웃이 오고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온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죽고 싶은 마음만 드는데 한숨만 푹푹 쉰다. 그러다 먹고 싶은 게 있었는데 어느새 없어진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일하다 한숨만 쉬고 밖만 쳐다본다. 밖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나가봤자 갈 곳이 없으니 그냥 집에 있기로 한다. 그것의 반복이다, 나중의 삶은. 그러니 제발 나에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곘다. 젊다고 몸 괜찮다고 막 쓰다가 나중에 고생하는 수가 있다. 어쩌면 그날 비를 엄청 맞은 건 나에게 생각이 많아지기도 하고 힘든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 07화 차가운 고시원 방바닥에서 울고 있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