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루나무 Aug 17. 2022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고 1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학교를 휴학하고 대구로 떠날 때도 1년만 있다 오겠다고 생각했다. 대구에는 아는 사람도 있고 공기도 맑고 좋은 곳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렇지만 부산으로 돌아오는 것이 나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새로운 고시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보다 방 가격은 비싸졌지만 부산 시내에 있는 곳이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내가 나이가 어린 걸 알고 조금 싸게 방을 내주셨다. 대구에 있을 때보다 조금 넓어졌지만, 여전히 3평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래도 부산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임하기로 했다.


학교도 다시 복학했다. 한동안 안 하던 일본어를 다시 해야 했다. 전에 친했던 일본인 교수님과 학교에서 마주쳐서 일본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교수님이 복학했냐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고등학생 때 미친 듯이 듣고 또 들어서 일본어를 거의 생활화해서 일본어 회화 시간에 입을 떼자마자 일본어로 줄줄이 말을 하던 내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복학했다고 잘 지내셨냐는 말을 하지 못했다. 교수님은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셨지만, 그 후로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다시 수업을 들으며 공부에 매진하고 복습도 철저히 했다. 아르바이트가 있는 날에는 후배들에게 일을 가야 한다며 같이 밥을 먹은 뒤 쿨하게 일하러 갔다. 이때 투잡을 뛴 것이다. 평일에는 학교 다니면서 주 3일만 일할 수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홀에서 서빙을 하고, 주말에는 호텔 연회장에서 일을 했다. 


이때도 일화가 하나 있다. 주 3일만 일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한 손님이 다른 알바생이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난 일이 있었다. 손님과 소통이 잘되지 않아서 일어난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손님의 이야기를 잘 듣고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고 알바생이 새로 들어와 잘 몰라서 그랬다며 둘러댔다. 그랬더니 오히려 손님이 당황해서 나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손님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심혈을 기울여 조심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대처하는 나를 보고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나보고 박수를 치며 대단하다고 이야기를 했고, 같이 있었던 알바생은 그날 이후로 나와 거리를 두었다. 


사실 내가 일했던 그 패밀리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 행동이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일할 당시에만 해도 그곳은 워낙 손님이 없어 매출이 적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손님들이 SNS에 안 좋은 글만 올리면 매출이 대폭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를 일하다가 듣게 되었다. 나는 아르바이트생이기는 하지만 그 직장의 유니폼을 입었을 때만큼은 그곳을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때 그런 행동을 했던 건데 그 아르바이트생은 이해를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중에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실제로 한 알바생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돈 받는 만큼 열심히 해야죠.” 그래야 나를 고용한 사람도 나를 더 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면 그럴 것이다. 사장이 있을 때만 열심히 하거나 누가 볼 때만 열심히 하면 그건 누가 봐도 티가 날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세 달이 지나서 집으로 올라오라는 아빠의 말을 듣고, 나는 과감히 투잡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잠시 본가가 있는 수도권으로 올라와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여러 일이 있었다.      

이전 08화 퇴근길에 비를 맞으며 울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