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좋은 사람의 말은 향기가난다
“곽국짱, 이렇게 시간을 내주어 고마워요."
백수인 내게 그녀는 감사를 표시했다. 무려 셀럽인 그녀가
"시간 내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그냥 인사는 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요. 첫인사보다 끝인사가 더 중요하죠. 근데 우리 종종 봐요." 한국말이 매우 서툴러 영어와 한국어를 5:5로 섞어서 대화하는 그녀로부터 예상치 못한 진심을 느꼈다. '좋은 사람은 정말 서툰 말로도 감동을 주는구나.'
계획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삶의 아이러니
인간은 누구나 약하다
그녀는 교포 출신 미스코리아로 90년대 최고의 배우와 결혼을 하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개성이 강한 그 배우를 특유의 우아한 톤 앤 매너로 잘 데리고(?)사는 것으로 전 국민이 인지하고있는 사람이다. 실제 그녀는 유명 배우와 결혼하기 전 그가 유명 배우라는 사실조차 몰랐다고 한다. 평범한 이민 집안의 모범생 외동딸이었던 그녀가 미스코리아 출전을 계기로 생각지도 못했던 셀럽으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곽국짱, 저는 예전에 아리랑 TV에서 한 2년 넘게 각국의 대사님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했었어요. 대사님들은 대우가 좋잖아요. Am I right?(그녀의 미국식 추임새) 좋은 차에, 좋은 사무실에,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 알아서 대우해 주고, 근데 그분 중에 몇몇은 그 자리에서 금세 내려오는걸 봤어요. 사람이 다 똑같아요. 다 약해요. 부족하고. 대사님들이 아무리 폼 잡아도 저는 그분이 초라해지는 모습 많아 봤어요. 결국 다 죽잖아요. 그걸 잊지 말고 살아야죠" 영어와 한국어를 하이브리로 넘나들다 보니 다소 두서는 없었지만 셀럽과 브런치를 하며 이어령 박사님 같은 얘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저는 한국에 아는 사람이라곤 남편 딱 한 명인 상태에서 시집왔어요. 시집와보니 시어머니가 정말로 아주 많이 아프셨어요. 말씀도 못하셨고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넉 달 동안 같이 있어드렸어요. 옆에서 같이 자고 만져드리고..." 70년 생인 그녀는 나와 같은 세대로 우리 세대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 그리 간단히 마음먹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녀는 시어머니와 병간호에 대한 기억을 정말 선명하고 따뜻하게 설명했다. "내가 시어머니 입장이라면 나에게 어떤 것을 원하실까를 생각해 봤어요. '이렇게 마주 보고 자고 싶겠지', '이렇게 머리를 만져 드리면 좋겠지.'..." 줄여서 표현하면 역지사지 같은 것인데 왠지 울림이 있었다. '아 이분 20여 년 전, 어쩌면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에 대한 생각이 정리돼있었구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인정하는 삶은겸손하다.
사람의 본성은 대체로 이기적이다. 성선설, 성악설을 떠나서 본성이 그렇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주관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보니 주관적이고 이기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열 사람이 열 가지 아전인수식 기억과 해석으로 갈리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자기중심으로 모든 것으로 보는 것, 그리고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고 정신 승리를 하는 것. 반대로 사람은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 자기를 이해해 주는 사람,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러니. 오늘 두 시간 여의 브런치를 통해 사는 게 참 별게 없다는 것, 그리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생각했다. 물론 영어와 한국어로 쉴 새 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브런치 디쉬의 대부분이 싸늘히 식었다. 자리를 마무리하기 전에 그녀가 자신이 좋아하는 책 한 권을 소개했다. 기탄잘리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지음, 류시화 옮김
왕자의 옷을 입지 않을 자유
'왕자의 옷으로 치장을 하고 목에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로 장식한 어린아이는 도무지 즐겁게 놀 수가 없습니다. 화려하고 무거운 옷이 걸어갈 때마다 그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옷이 닳아버리는 것이 두려워서, 흙으로 더럽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어린아이는 세상에서 자신을 격리시킵니다. 움직이는 것도 두려워하게 됩니다. 어머니, 옷치장을 하는 당신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만약 그것이 대지의 싱싱한 흙으로부터 차단하는 것이라면, 평범한 삶의 위대한 박람회에 입장할 권리를 빼앗아 버린다면 말입니다.‘ <기탄잘리 중>
'조금 더 가볍게 살아보자.'
'즐겁게 놀고, 사람들에게 잘하고, 조금 손해보고 무엇보다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서운함 보다, 그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을 들어주며 살아보자.' 오늘 그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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