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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독따독 Nov 05. 2019

소파

치매는 잘못이 없다

아버님은 안장이 좁은 소파에

오래 앉아있을 수 없다.

더구나 미끄러지는 가죽은 더하다.

앉혀드리면 어느새 미끄러져 몸이 눕다시피

되어버린다.


베란다는 추운 겨울이어도

맑은 날이면 햇살이 들어와서

실내보다 더 따뜻하다.


그런 날은 무릎담요와 간식, 히터를 가지고 나가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드린다.

 그곳에서 주로 사진앨범과 세계지리부도

동물도감을 보며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도 햇볕이 따뜻해서 베란다에 앉혀드렸다.



아버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


어머니는 김장김치가 지겨워졌다며

생생한 겉절이를 먹고 싶다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아버님, 잠시 앉아 계세요.

배추 소금에 절이고 금방 올게요"





부엌에 가서 겉절이 담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보 호자는 잠시도 환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게다가 김치 담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배추를 다듬고 절이기 위해 소금을 뿌렸다.

풀을 쑤는 시간을 절약하느라

밥을 블렌더에 갈았다.     



"아이쿠!아구아구구!"


베란다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버님의 비명소리에 놀라 달려갔다.

밥 가는 소리에 나에겐 들리지 않았나 보다.

하필 그때 블렌더를 켤게 뭐람.


등받이에 기대어계셨던 아버님은

엉덩이가 소파에서 점점 미끄러져선

바닥까지 내려가 베란다 창문 프레임과 소파 사이에

끼인 자세가 되어버렸다.

아버님을 위해 크고 푹신한 소파를 그곳에 둔 것을 곧 후회했다.

‘아버님께 좋을 거라고 생각한 게 다 좋은 것은

아니었구나.’


아버님은 음식점에서도

바닥에 앉지 못하신다.

우린 식당에 가면 좌식인지 입식인지,

부터 확인하곤 했다.

마치 먼저 돌아보고 오는 ’ 정찰병’처럼.......


처음엔 식당에 있는 분께 부탁해서

맥주 박스를 엎어서 앉혀드렸지만

아무래도 불편하신 것 같았다.

속초에 간 어느 날 의자를 하나 샀다  

이후부터는 항상 플라스틱 의자가 차에 동승한다.


그런 아버님이 바닥에 끼어서 쪼그려 앉았으니

아마 뼈마디 곳곳이 아프셨을 것이다.


무릎은 하늘을 향하고 아버님은

바닥에 손을 짚고 어쩔 줄 몰라했다.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

팔 아프다고 소리 지르신다.


엉덩이를 받히고 올리려고 하니

등과 다리가 끼어

꼼짝을 않는다.

이를 어쩌나!




아버님을 안고 안간힘을 쓰다가

슬리퍼를 벗고 소파로 올라갔다.


아버님의 겨드랑이에 내 손을 걸쳐 잡고

허리를 굽혀 안간힘을 써서 끌어올렸다.

마르긴 하셨지만 상당히 무거웠다.



아버님은 뒤에서 잡히니까 깜짝 놀라서

(순간 어떤 상황인지 다 잊어버리시곤

-알츠하이머라서)

“어어? 왜 이래? 왜 지랄이야!”

하신다.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하!


“아버님

발목하고 무릎 안 아프세요? 괜찮아요?”

나를 노려보던 아버님의 눈빛이 조금은 누그러진다.

내 잘못이다. 결국...........

모든 게 내 잘못이다.


이럴 때마다 안에 있는 소파를

베란다에 바꿔 내놓겠다고 하고는

쯧쯧.


깜빡하는 내 머릴 탓한다.

결국 또 이런 일이 생긴다.

장정 같은 식구들에게 매번 말해야지 하곤,

언제나 잊는다.



이렇게 아무도 없을 때 일은 터진다.



깜빡했을 때, 치매가족은 머리가 쭈뼛 선다.

‘내 친정 할머니도 치매고 시아버님도 치매인데

지금 깜빡한 내 머릿속은?’

머리가 쭈뼛 선다.


.


나도 성질난 김에 아버님을 침대에 앉혀드리고

거실과 베란다의 소파를 바꿔 놓는다.      

잔뜩 힘을 쓰고 나니,

김치고 뭐고 에라이! 모르겠다!



이를 어쩐다.

화장실 다녀와보니

아버님은 아까 거실에 바꿔둔

가죽 소파에 또 와서 앉으신다.

이놈의 가죽소파

죄다 버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식구들이 하나 둘 들어온다.



어머니가 들어오는 소리는 화려하다.

“얘는 김치 절궈놓고 뭐 하는 거야!

야! 야! 이거 어디 짜서 먹겠냐!”

하...............



신기하게 사건이 일단락된 뒤 들어와 2막을 연다. 절여둔 배추를 김치로 바꾸라고

 어머니는 나에게 ‘큐사인’을 준다.



마치 '액션 영화'에서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경찰차 같다.


 상황 종료 뒤 사이렌 울리며 나타나는

경찰차다.

    삐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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