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기상 악화, 불안이라는 불청객
거짓말처럼 날이 개었다. 해가 얼굴을 내밀고는 빼꼼. 반가우면서도 왠지 모르게 얄미운 얼굴. 그러더니 이내 맑게 갠 하늘이 펼쳐지는 형국. 마음에 구름이 가득 끼어 날씨만이라도 볕이 들기만을 간절히 바랬던 날들의 연속이었으니, 이제서야 맑게 갠 하늘이 얄미울밖에.
폭풍우가 치는 내면을 진정시킬 길이 없어 그 한가운데서 덜덜 떨며 견디어 내는 것 말고는 도리가 없던 시간들. 하늘마저 곧 종말이라도 올 것 처럼 어두컴컴했고 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지겹게도 비만 오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하늘 어디서 누군가 조종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누가 내 속내를 하늘에 옮겨라도 둔 게 아닐까. 허무맹랑한 의심이 고개를 들만큼 마음과 날씨가 정확히 일치했던 나날들.
내 마음에도, 하다못해 하늘에라도 제-발 햇살 한줄기가 들기만을 간절히 바랬다.
그렇게 기다리던 해가 떴는데 왜 이렇게 새삼 얄미운 마음이 드는지. 고통은 한 풀 꺾였고, 다 지나고 나니 이제서야 얼굴을 보이는 모양새가 어쩐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어쨌든 폭풍우는 지나갔다. 제멋대로 날뛰던 불안은 결국 순식간에 나를 삼켜 뒤흔들었다. 통제력을 잃었고 스스로를 조절할 수 없다는 끔찍한 두려움이 다시 덮쳐왔다. 두려움은 다시 불안으로, 불안은 다시 통제불능의 신체반응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되어 나를 꼼짝할 수 없도록 가두었다.
그 끔찍한 고리를 잠시나마 끊어준 것은 역시나 가까이서 내 곁을 지키고 누구보다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지지와 다독임, 깊은 포옹이었다. 성난 화염처럼 나를 휘감던 불안과 공포를 한순간에 잠재운 것들.
물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실존한다. 잦아든 불안 역시 사라지지 않고 늘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 언제든 서서히 나를 잠식시킬 수도, 커다란 불길이 되어 순식간에 몸집을 부풀려 나를 삼킬 수도 있다. 어차피 사라지지 않는다면 세심하게 살피며 다스릴 수 있도록 연습하는 것 밖에는 도리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몸집을 불리던 불안이 이제는 생존과 공존의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