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즐거움
8주 간의 달리기 도전이 남긴 것들
지난 12월, 런데이라는 어플을 친구에게 추천받았다. 8주 완성 30분 달리기 도전.
세상에 30분이라니. 한 번도 쉬지 않고 30분을 달리는 것, 그게 인간이 뛸 수 있는 시간이었던가. 대표 운동알못인 데다 나같이 달리기를 싫어하는 인간에게, 그 시간이 주는 무게감은 엄청났다. 이 코스를 시작해도 되는 걸까 의문이 맴돌았다. 당시 무언가를 시작할 때까지 걱정과 고민만 실컷 하다가 결국은 미뤄두는 스스로에게 진절머리가 나던 터, 고민은 때려치우고 그냥 시작해보자 싶어 추천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초보 러너를 위한 프로그램이라 가볍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던 친구의 조언이 있어 빨리 시작할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생전 처음 하는 달리기는 사실 녹록지 않았다. 숨은 금세 턱까지 차올라 고통스러웠고 다리는 무겁기만 했다. 옆구리는 왜 자꾸 아픈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전반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1주 차에는 1분씩 달리고 2분씩 걷는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시작하였다. 코스 내내 힘찬 목소리로 응원과 시간 알림 및 정보전달을 해주는 음성지원도 있었으므로 지루하지 않았다. 백그라운드에는 즐겨 듣던 음악을 깔아 두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점차 달리는 시간을 늘려나가는 동시에, 중간중간 짧게 걷는 시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8주 차에 이르러서는 걷는 시간은 사라지고 통으로 25분, 30분을 달리게 되었다. 페이스는 점차 안정되었고, 호흡법도 차차 바꿔갔으며, 자세도 꽤나 바르게 유지되었다.
8주 동안에는 나가기 싫은 날도 있었고 점차 크게 늘어나는 달리기 시간이 부담스러워지는 시기도 있었다. 겨울에 시작한 달리기였기에, 한파와 폭설도 끼어들었다. 여러모로 달리기 하러 나가기 주저하게 만드는 날씨들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생각 말고 나가서 일단 시작하자는 일념으로 꾸준히 달려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것이 조금씩 익숙해지는 나날들이었다. 꾸준히 러닝을 지속하면 느끼게 된다는 '러너하이'가 뭔지 얼추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울적하던 기분이 달리기 이후 좋아지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차디찬 겨울을, 숨과 몸을 뜨겁게 덥히는 달리기로 보냈다.
그리고 오늘, 8주간의 30분 달리기를 완성했다. 처음은 웜업으로 5분 걷고, 쉬지 않고 30분을 달린 후 다시 5분을 걷는 총 40분의 코스를 마쳤다. 달리기가 익숙한 누군가에게는 '고작'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르는 30분이 내게는 커다란 성취와 극복의 경험으로 남았다.
30분 풀코스 완주만을 바라보며 달렸던 시간들이 자랑스럽다. 난 달리기는 못해 라며 스스로를 제한했던 장벽을 뛰어넘음으로써 스스로에게 증명해냈다. 30분 완주를 알리는 알림음이 울리고,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다. 결핍의 연속이었던 시간들 속 오로지 두 다리로 이뤄낸 성과가 새삼 커다랗게 다가온 탓이다. 말로 표현 못할 벅차오름을 경험했다.
사실은 그랬다. 지난 몇 해 동안의 크고 작은 실패들로 흔히들 말하는 자존감은 회복할 새도 없이 깎여나가고 있었다. 애써 괜찮은 척했지만 속부터 곪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암연 같은 시간들 속 작게 싹이 튼 불안이 삽시간에 몸을 불리는 순간들도 여러 차례 경험했다. 사라지지 않으니 달래 가며 함께 가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전에는 없던 일이었다. 불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의 폭을 꽤나 자주 감당해야 했고, 이제는 조금쯤 요령도 생긴 것 같다. 그리고 불안과 저기압 상태가 찾아들 때, 또 하나의 해법으로서 달리기를 발견해냈다.
달리기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불안과 초조함으로 빨리 뛰는 심장박동 때문이었다. 한 차례 해일처럼 쓸고 지나간 극도의 초조함과 불안감을 경험한 이후, 단련을 통해 건강한 심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유산소 운동 경험이 적어 심폐지구력이 약했고 장시간을 앉아있던 생활 탓에 호흡도 많이 짧아져 있었다. 강도 있는 유산소 운동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임을 자각했다. 달리기가 필요했고 오늘로서 완주를 해내었다.
소박하게 시작했던 달리기가 내게 가져다준 것은 의외로 많았다. 일단 달리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거기에 조금쯤은 더 건강해진 심장과 길어진 호흡을 남겼다. 또한 만들어 놓은 상태가 아까워 계속 달리기를 해 나갈 생각이다. 그렇기에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습관이 생긴 셈이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던 내게 작지만 소중한 성취감도 안겨주었다. 두려운 것도 조금씩 꾸준히 해 나간다면 종래에는 생각지도 못한 큰 성취가 남는다는 깨달음도 주었다. 그래, 결국은 두려워했던 것들도 별 것 아니다. 그러니, 나는 넘어질지언정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성과는 유산소 운동 바보가 가벼운 뜀박질이지만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거북이도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