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지 못한 대상을 판단한다는 것
경험한 바에 따라 무언가를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아는 방식도 결국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알면 알수록 의외의 복잡 다난한 나를 발견하는 것은 참 새로우면서도 생경한 일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믿던 스스로에게 배반당하는 일은 쉬이 일어나곤 한다. 사람마다 고유한 형질과 성향은 다르겠지만 결국 고유하다고 정의한 어떤 모습과는 달리,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과 행동을 내보이기도 하니까.
몰랑몰랑한, 유동적인 형태의 어떤 것으로 변하는 상상을 해본다. 물리적 모습은 그렇지 않더라도 내적인 나는 결국 그런 형태가 아닐지. 유동성이 큰 물질은 맞닿는 면에 따라 형태가 바뀐다. 모서리를 만나면 흩어지거나 떨어지기도 하고 평평한 곳에서는 안정적으로 자리한다. 그러니 누구든 이런 모습, 또는 저런 모습이기도 할 수 있다.
나를, 또는 누군가를 어떠한 특성이나 이미지로 판단하고 규정짓는 일은 때때로 편리한 일이다.
그런데, 과연 늘 그럴까?
스스로 규정짓던 나는 참으로 얄팍해서 산산이 깨어지기 일쑤다. 그 모습이 스스로 자각하기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래서 때로는 믿었던 자신의 모습이 부서지는 순간에 좌절을 겪기도, 부정적으로 여겼던 모습이 사실 별 것 아니었음을 깨닫고는 한다. 더불어 그러했던 자기 인식의 방식조차 곧잘 변하곤 했다. 스스로 달라짐을 세심하게 알아채는 사람일수록 변화는 잦게 찾아올 것이다.
그렇다면 타인은 어떨까? 나조차도 모르던 내가 갑자기 튀어나오곤 하는데, 타인은 변수가 더더욱 많다. 흔히들 아주 가까운 관계라 하더라도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들 하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를 규정하거나 판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상대의 행동 역시 어떤 요인이 기제가 되어 발현된 것인지 모를 것들. 에고고, 점점 머리가 지끈거려 온다.
그리하여, 섣불리 판단하거나 규정짓지 않으려고 노력하곤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는 않다. 판단을 유보하면 유보하는 만큼 효율이 떨어진다. 판단을 미루며 겪어내는 동안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기도 할뿐더러,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차암- 비효율적이고, 비효율적이고,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은 시간 관찰하고, 겪어보고, 일일이 확인한 후 판단할 수 없으므로 우리는 빠르게, 때로는 섣부르게 규정짓고 판단한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바쁜 세상, 좋을 대로 '나는 이런 사람, 너는 저런 사람이야' 정해놓고 살면 참 편할 텐데.
정한 대로 굳건하면 참 편하겠다 싶다가도 이리저리 잘 흐르고 변하는 것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 스스로 좋다고 여기는 장점 대부분은 그러한 유동적이고 흐르는 재질(?)에서 오곤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른 생각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거나 지나치게 고집스러운 사람을 대할 때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곤 한다.
해가 갈수록 생각이 견고해짐에 따라 잘 바뀌지 않게 됨을 어렴풋이 느낀다. 색은 짙어지고, 겁은 많아지며 달라짐을 어려워한다.
적어도 지나치게 견고한 벽 같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답을 내려본다. 부지런히 듣고, 정성 들여 살펴보고, 감각으로 느끼자.
흐르는 것을 멈추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