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돌아가는 상황 속, 찬물을 끼얹는 듯한 순간이 왔다.
연초부터 긴박했던 일정에 몸을 맡긴 채 밀려드는 일을 쳐내기 바빴고, 그 와중 심히 지쳐있다. 작년 사업의 마무리는 꼬리 길게 질질 늘어졌고, 올해 업무는 배턴 든 다음 주자처럼 터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계속 쫓기는 기분이 드는 것이 당연할지도. 그럼에도 작년의 경험이 있으니 다가올 것들은 또 어떻게든 해내지 않겠나 하는, 어찌 보면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키를 잡아보니 역시, 뭐 하나 만만치 않았다. 디데이는 급박히 다가오고, 일정에 따른 과업관리와 주 담당자로서의 역할도, 세부 업무 지원 요청도 해야 했다.
챙길 건 많은데, 대체 난 왜 몸이 1개지...?
결국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오롯이 담당해 추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소회가 남았고, 세세히 요청하지 못해도 언제나 먼저 손 내밀어주는 동료들이 있어 무던히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솔직히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차근히 준비해 오던 것들이 마무리 단계라고 여겨질 때쯤 추가적인 오퍼는 계속 발생하고, 그간 잠잠했던 불안감, 두려움 같은 부적감정들에 알게 모르게 잠겨가고 있었다. 그러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비상등이 켜졌다. 경각심에 정신이 바짝 드는 느낌, 마치 누군가 끼얹은 찬물을 얻어맞은 것 같았다.
수월하게 굴러가는 것 같지도 않던 일상에, 찬물같이 들이치는 무언가가 반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상황에 휩쓸려 탄성을 잃어가던 중 냉수가 끼얹어지니 바짝 정신이 돌아오며 냉정을 찾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늘 파도와 같이 들이치는 찬물을 어쩌지 못해 허우적거렸던 것 같은데, 이번엔 끼얹는 수준이라 맞고도 금방 정신이 났을까. 물론 아직 대야 사이즈는 되는 것 같으니 점점 버킷으로, 국그릇에서 컵 하나 사이즈로 작아지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는다.
태생이 몰랑거리는 성품을 차게 만들어 견고해지라고 단련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앞으로의 삶에서 만날 거칠지도 모를 문제들을 생각하면 미리 이것저것 겪어두는 게 좋지 않나 싶어진다.
최근 본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경험이 내 행동을 결정하는 거야. 지도처럼 참고하면 실수도 줄어들지."
뭐든 100%는 없으니 경험이 내 모든 행동을 결정하는지는 않겠지만, 하물며 경험한다고 무조건 지혜로워지지는 않겠지만, 이전 경험이나 겪어본 유사한 경험이 적어도 내게는 불안과 스트레스를 낮춰준다면 대체로 적합한 묘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경험의 가짓 수가 정신 차리게 해 줄 냉수가 담길 사이즈를 줄여준다면, 나름대로 또 하나의 방편이 될 수 있진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