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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되는대로 Apr 05. 2024

물과 불의 전쟁

소방관 이야기

서울 마포대교 인근 어디쯤이다.

여의대로 긴 길을 소방차들이 요란하게 달리고 있다. 사이렌 소리가 새벽공기를 찢고 하늘까지 닿을 기세라니 큰 불이었다.


소방차들은 여의도 제이아파트에 도착했다.

잠시 후 104동 1~2호 라인 5층 복도에 누런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나타난다. 검정헬맷을 쓰고 헐레벌떡 뛰어올라온 그들의 품에는 불을 끄는 데 사용되는 무거운 장비가 안겨져 있고 등에 진 공기호흡기에는 주황색 형광 로프가 옹골지게 매여 있다. 기진맥진할 틈도 없이 그들의 장비가 곧 바닥에 부려지고 소방관들은 진입준비를 시작했다. 신고된 세대 현관문은 잠겨져 있었다.


영등포소방서 여의도안전센터 전영백 대장은 현장 경험이 많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원들에게 자세를 낮춰 문 양옆으로 은폐해 있을 것을 지시했다. 그가 들은 무전으로는 현관문 반대편 베란다의 화세가 대단했다. 불 먹은 거실이 토사곽란이라도 난 환자 발작처럼 화염을 벌름벌름 게워내고 있다. 대장은 장갑을 벗었다. 그리고는 침착하게 현관문에 손등을 가져다 대었다. 미지근한 온도였다. ‘오, 이쪽까지는 불이 오지 않았구나!’ 대장은 다시 장갑을 끼며 즉시 내부진입을 결정했다.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는 대원들에게 첫 작업을 지시했다. 잠시 후 한껏 힘을 모은 현관문파괴기가 온갖 용을 써 단 한방에 방화문 손잡이를 작살내 버렸다. 힘차게 ”텅 “ 소리를 낸 후 내던져진 장비 옆으로 소방대원들이 엎드렸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갈 채비가 끝났다. 긴장이 되었다. 이제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바로 지옥문을 열어젖히면 안 된다. 때마침 산소공급에 제대로 신이 난 화마가 작두를 탈 것이기 때문이다. 호흡을 얻은 성난 용의 화염공격에 걱정인 대원들의 숨죽인 우려가 목구멍을 타고 꼴깍, 채 넘어가기도 전에 선착 소방대장의 축축하고 녹진한 명령이 떨어졌다.


 “방수개시!‘

그는 작년에 보급된 신형 AP610 PS-LTE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누른 채로 명령을 날렸다. 선명한 명령음이 활시위를 떠난 살처럼 혼란한 현장 소음을 그대로 뚫고 직진하여 날아갔다. 그리고 소방차 앞에서 명령을 기다리던 소방위 윤영완의 귀에 ’ 팍‘ 하고 꽂혔고 부르르 떨었다. 출입구 A면에서 대기하며 소방펌프차 출수 레버를 잡고 있던 그는 지체 없이 분당 1천5백 리터의 물이 터져나가도록 손잡이를 내렸다. 미리 세팅해 놓은 포문에 힘이 가해지자 죽은 뱀처럼 축 늘어져 있던 소방호스가 반응했다. 한겨울에 동삼을 먹고 벌떡 일어선 수소가 갑자기 무르팍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 같았다. 화재 지점까지 연결되어 있던 소방호스가 드디어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며 '촤아아악'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소방호스 내부의 길을 타고 물의 군대가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대형 도미노 게임에서 줄지은 커다란 블록이 연달아 무너지며 만들어내는 현란한 움직임을 닮긴 했지만 결코 화재현장을 달리는 소방호스의 그 강력한 역동감은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물의 군대는 소방관들이 가슴에 품은 관창의 끝에 다다라 파괴에 미쳐있는 화마에게 달려들 것이다.

그들은 공수부대의 항공기에서 군인들이 뛰어내리듯 밖으로 토출 되어 불마왕의 몸체를 덮고 치열한 전투를 벌일 테다. 물과 불의 전쟁이다. 화재현장은 물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까지 불마왕의 세상이다. 휘우우웅 솟구치고 펑펑 터지며 검은 연기 오케스트라 연주하는 그는 실로 파괴의 신이다.


소방대원들이 도둑 같은 조심스러움을 뒤집어쓰고 포탄 뇌관을 분해하듯 현관문을 당겼다.  행동은 조심스럽지만 화마 단방에 타격해야 한다. 문을 열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새까만 연기가 풍풍풍 터져 나온다. 저리 꺼지라는 듯이 밀어내며 비웃는 손짓을 한다. 내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그러나 화재 공세를 위해 엎드려 있었고 무릎을 꿇고 손을 더듬으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초입부터 이상했다. 현관 안쪽이 물컹한 무언가에 가로막혀 있다. 대원들은 직감적으로 이것이 사람임을 알아챘다. 발견된 사람을 급히 끌어내려는데 더듬다 보니 사람이 또 있다. 포개어지듯 쓰러져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현장 경험이 많은 대장이라 하더라도 갑자기 사람이 된다. 그는 당황하여 미친 듯이 무전을 쏟아내기 시작


 ”요구조자 발견 요구조자 발견,

구급대 2개대 즉시 올려 보내도록! 빨리빨리 올라와!!! “ 후착대도 빨리 붙어, 들어와, 들어와!!! 하지만 그건 그가 해야 하는 말이었고 들리는 입장 달랐다. 무전기 건너편에서는 고성의 소음일 뿐이다. 화재진압 활동 시 공기호흡기를 쓴 상태에서 하는 말은 소리부터 작아져 있다. 입주위 근육은 발성을 방해받아 웅얼거림처럼 들린다. 이런 때 당황하여 소리까지 지른다면, 이건 그냥 절규이다. 이런 모습은 현장활동을 해봐야만 알 수 있는 어떤 아픔 같은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 소방관이라면 그 격동의 감정을 이겨내야 한다.     


화재 사망자는 중년도 더 넘어간 부부였다.

모든 사고가 그렇듯 화마는 집안에 숨어있었다. 오래 사용하던  김치냉장고가 키웠다. 사람의 부주의를 먹이 삼아 자라는 그것은 낡은 가전의 바닥 부분에 설치된 냉각팬을 이용해 밑에 깔리는 티끌들을 모아갔다. 김치냉장고 바닥 컴프레셔의 냉각팬이 진공청소기 집진기 역할을 했다. 장치들이 가동하 생긴 열은 어느 순간이 되면 임계치를 넘어가고 그러면 뭉쳐져 있던 티끌먼지에 불이 붙는다. 착화 발화라고 한다. 처음에는 연기가 솔솔 올라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무거운 물이 바닥부, 또는 더 낮게 패인 부분부터 메꾸며 위로 차오른다면 더운 연기는 천정으로 올라가 대가리를 쳐 맞고 위에서부터 쌓여 점점 아래로 내려온다. 거꾸로 고이는 것이다. 이것이 침대에 누워있는 부부의 코에 닿아 잠을 깨울 정도가 되었으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했을까. 이미 김치냉장고에는 불이 붙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망한 부부의 손에는 스스로 불을 꺼보려는 절실한 시도의 정황들이 있었다. 손에 화상을 많이 입은 상태였다.


밀폐 공간에서의 강력한 연기는 죽음의 무지개다리를 매우 빠르게 쫓는 말달음질이다. 한옹큼이라도 훅 마시면 바로 혼이 나간다. 골로 간다는 표현이 여기에 맞다.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이 바보가 되니 여기서도 예외는 없었다. 사망자들은 어떻게 현관 앞까지는 기어는 갔지만, 끝내 돌려서 열어야 하는 손잡이를 돌리지 못했다. 아이큐 150의 총명함도 멈추고 바보가 되는 장소가 바로 재난현장이다. 이러한 사망으로의 과정은 현장에서는 더 이상 특이하지도 않다.

피해자들은 서초동과 반포동에 중소 건물 다섯 채를 가지고 있는 부자였다. 자식들은 의사였다. 2주 전 최고급 명품 세단인 검은색 제네시스 G90을 뽑고는 너무 좋아하며 신이 나 있었던 그들이었다. 그러나 돈을 쓰는 기쁨도 잠시, 갑작스러운 화재로 세상을 떠난 그들 부부는 자식들과 지인들에게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가 버렸다.


화재현장을 수습하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스쳐갔다.  

매우 부유한 사람들이었지만 안전의 소중함을 몰랐다. 인터넷에서 8천 원이면 살 수 있는 싸구려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구입해 달았으면 어땠을까? 거실에 작은 소화기라도 한 대 있었더라면 불을 끌 수 있었을까? 이왕 그렇게 된 거, 차라리 다 버려두고 도망 나왔다면 살 수 있었을까? 안타까운 생각들이 머릿속을 와리가리 하는데 또 다른 빈정거림이 꼬리를 잡는다. 그간 소방서에서는 수도 없이 여러 경로를 통해 홍보를 했지만 그 무관심 앞에서 뭐 어쩌란 말인가. 무시되는 충고는 한낱 잔소리에 불과하다. 귀찮은 소음.    


오래된 아파트라도 법규정에 설치의무가 있으면 천장에는 감지기가 달려있다.

하지만 그것이 작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열을 감지해서 신호를 잡아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게 사이렌으로 울려면 방안에 뜨거운 열기가 차야 한다. 감지기를 데워야 한다. 감지기 속 공기실이 덥혀지면 내부에 다이어프램이라고 하는 아주 얇은 금속판이 팽창한다. 그것이 부풀어 올라 위의 접점과 붙으면 스위치가 되어 화재신호를 보내는 원리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상황이 오려면 방안은 이미 상당한 피해를 본 상태이다. 깊은 밤 잠들어 있거나 술 먹고 만취상태이기라도 한다면 어떨까. 느림보 감지기가 작동해서 사이렌 신호를 줄 때까지 사람이 온전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는 인테리어를 하다가 모르고 감지기 선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천신만고 끝에 이 모든 게 정상적으로 작동을 한다고 해도 문제다. 사이렌은 현관문 저 바깥 어딘가에서 울릴 테고 꽉 닫힌 문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구형 아파트의 경우를 예시한 것이다.


그러나 방법이 없지는 않다.  소방관으로서 내 개인적 경험을 들자면 가장 직관적이고 효과적인 것이 8천 원짜리 단독경보형 감지기이다. 심플해서 좋다. 열이 아닌 연기를 감지해서 일찍부터 작동을 시작한다. 물론 열도 감지한다. 법적용이 안 되는 일반 주택이나 시골집, 노후 아파트 등에 정말 유용하다.


소방서에서는 화재에 취약한 저소득층 위주로 국가예산을 들여 경보기를 달아주기도 한다. 국민들을 위한 홍보는 당연하다. 이렇듯 안전이란, 아는 만큼 대비하고 대비하는 만큼 행복할 수 있는 어떤 관심의 산물이 아닐까 한다.


 마치며, 소방관으로서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어느 사람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소방관이 나타나는 엔딩이 온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많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모든 가정의 안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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