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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되는대로 May 07. 2024

새나루 #3

우리 잊지 말기로 해요


파란 쟈켓은 안타까운 마음에 기분이 편하지 않았다.

렌치코트가 많이 아팠기 때문이다.




몰랐지만.... 둘은 같은 동네에 살았다.

그러나 둘은 거의 10년의 시간이 가까워지도록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굳이 누가 먼저 물어보지도 않았다.

나중에 둘이 같은 동네에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둘은 서로 매우 놀라워했다.

종종 연락하는 등 자주는 아니지만 꾸준하고 지속적인 연결이 있었기에 굳이 그런 것을 서로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정작 사는 곳을 뒤늦게 알게 되니 서로 신기해했다.

또 하나의 신기함은 어떻게 이렇게 무관심할 수가 있었을까였다.


둘은 전에 같은 근무기관에서 근무하며 알게 된 사이였다.


같은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서로의 존재를 알지는 못했다.

같은 직급이었던 둘은 같은 기회에 승진심사후보 대상자가 되어 타 후보를 넘어 단 둘이만 승진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서로를 인지하게 되었다.

동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두 번째 만에 된 파란 쟈켓이 그 앞 심사 때 되었라면 그는 렌치코트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인연은 타이밍이라고 하나보다.


여담이지만, 파란 쟈켓이 처음으로 심사대상자 후보에 올랐을 때 그는 지금 인사부서에 있는 어송삼에게 밀려 승진에서 고배를 마셨다. 그것을 알게 된 이유는 '어'를 밀었던 변우남 국장과 권운 팀장이 파란 쟈켓을 찾아와 친절한 위로를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뜻밖의 위로에 눈치 빠른 파란 쟈켓은 그들이 '어'를 밀었다는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믿었던 변과 권이었지만 그들은 이미 파란 쟈켓과 같이 근무했부서를 떠났고 당시에는 '어'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어'의 상사였다. 그래서 그는 서운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조직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파란 쟈켓은 승진에 그다지 연연하는 성격도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사내 정치를 위해 부단히 힘 있는 윗사람들과 교분을 쌓느라 술자리를 알아내어 자리에 끼고 아니면 자리를 만들어 수시로 어울려 다닌다. 그는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각 개인 자신 추구하는 목적에 따라 어떤 것을 하든지 그것은 자신에게 가치가 있동이 되지만  적어도 그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욕심까지는 없었다. 결국은 오십 보 백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운해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파란 쟈켓은 렌치코트와 같은 날 같이 승진을 했다.

승진 가뭄이 심했던 때라 둘은 전국 기준으로도 서로에게 유일한 단 한 명뿐인 승진 임용 동기다.


그들근무 기관 마중물터에서 승진 임용식을 진행할 때 그들은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날 둘은 양 옆에 나란히 서서  함께 사진을 찍었

같이 임용장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어온 가늘고 긴 인연을 텄다.


둘은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잘 통하는 면이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해졌고 친해졌다. 거기에는 전국 유일의 동기라는 비합리적인 의지감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인접한 새 임지로 각자 전출 명령을 받고 헤어졌다.


제법 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그들은 희한하게도 먼 듯 멀어지지 않고 가까운 듯 가까워지지 않았느나 칡덩굴처럼 영양가 있 긴 인연을 지속적으로 이어갔다.

서로 필요한 도움을 구하고 받으며 종종 자신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상대방의 푸념을 들어도 주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살았다.


파란 쟈켓이 중간에 두어 번 인사 상 중요한 결정을 하려고 할 때는 렌치코트에게 의견을 구했고

코트도 자신의 근무지를 옮길 때 자기의 사정을 설명해 주고 전 근무지를 떠났다.


치코트는 파란 쟈켓이 든 시기에 고전하며 고충을 토로할 때 묵묵히 들어주었다.

또한 파란 쟈켓도 렌치코트가 부들부들 떠는 목소리로 업무로 인한 분노의 감정을 억누르며 이것저것 필요한 도움을 구할 때 부탁한 것들 친절하게 주고 진심으로 도와주었다.


통상 사회에서 만나는 이익적 관계는 특별히 어떤 긴밀한 유대속시켜야만  할 사유나 목적이 사라지면 그냥 아는 사람 혹은 기억가물가물한 사람이 되다가 잊히고 만다.

희한하게도 둘은 런 흔한 관계에 속하지 않았다. 관계가 유별나지는 않았지만 지속적인 이어짐이 계속 생기는 확실히 다른 뭔가 있었다.


말하자면

가늘고 었고 가까우면서도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묘한 관계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관계는, 인연이 지속적인 그들처럼, 어색함과는 결이 다 '초반의 잔잔함'을 특징으로 하는 사람 간 합이 있다.


사주에서 운의 흐름을 판단하는 방법 중에 '순행'과 '역행'이라는 개념이 있다. 학문적으로는 에너지가 순서대로 흐르는 것을 순행이라고 하고 역으로 흐르는 것을 역행이라고 한다.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고 본래적 특이고 각각 장단점을 가졌다.  이는 인생의 경험을 만나는 방식이고 행불행이 찾아오며 그에 대응하는 패턴이다. 그래서 순행자는 순행자끼리 그리고 흔치 않게 나오는 역행자들은 역행자들끼리 조합이 되어야 운이 순탄해지고 서로에게 긍정적인 에너지가 펼쳐지게 된다.


반추해 보면 파란 쟈켓은 역행의 전형이었다. 또한 트렌치코트도 역행의 면모가 많아 보였다. 그리고 알고보니 실제로 역행이었다, 둘 다 역행이었다. 그래서 둘은 가늘고 길게 이어져 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트렌치코트에게 최근 몇 가지 어려운 일들이 찾아왔다. 주로 건강상의 문제였다.

인생자체가 어려운 일의 연속이지만 지금 현재는 그게 도드라져 있다.


파란 쟈켓이 아는 트렌치코트는 항상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밝음 때문에 파란 쟈켓은 자주 트렌치코트를 걱정했다. 왜냐하면,


인생의 섭리에 따르면(진리가 아니기에 다 그런건 아니다.)

밝은 빛의 뒤에는 항상 그림자가 따르고

화려함의 뒤에는 언제나 공허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파란 쟈켓은 적으로 그런 것을 잘 알아보는 통찰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항상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누군가에게는 뭐가 되었든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천성 있었다. 그래서 그는 렌치코트가 건강하고 편안할 때 그가 더 좋은 미래를 얻어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다.


걱정에서 나오는 말이라도 정도를 넘어서면 잔소리가 된다. 파란 쟈켓은 자제력이 있고 조심스러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대화를 할 때 선을 넘지는 않았다. 그리고 렌치코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 때는 항상 조심스럽게 가려서 하기를 노력했다. 하지만 그는 렌치코트에게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하게 되곤 했다




렌치코트의 사주에 따르면 그의 지나친 밝음은 적절하게 조절되어야 한다. 즉 중화(中和)가 필요했다. 쏠려도 너무 많이 쏠렸다.  그런데 트렌치코트는 그런 것을 몰랐고 필요한 에너지의 운행이 과거에는 충분하게 오지 않았다. 자체적인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였는데말이다. 물론 이런 것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필요한 에너지가 시기에 맞춰 다가오고 있다. 그때 찾아오게 될 에너지를 정관(正官)이라고 한다. 정관은 지나친 밝음을 적당히 제어해 줄 것이고 대신 필요한 에너지를 보태어 전체적인  이익이 되도록 삶의 흐름을 조력해 줄 것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이 시기가 오면서 진통을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것을 교운기라고 한다. 렌치코트에게는 앞서 지나온 마디 마다 교운기가 있었지만 이번부터 오는 것은 양상이 많이 다르다. 그래서 진통도 더 클 수 있었고 파란 쟈켓은 이점이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얻어 맞더라도 이유를 알고 맞는 것과 이유를 모르고 맞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과거 나치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일부 사람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목적이 있는 삶과 맹목적인 삶은 이렇게 다르다.


렌치코트에게는 이번의 교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힘든 시나면  감기같은 곤란함들이 떨어져 나가고 그 인생에서 가장 좋은 에너지가 도래하는 시기가 온다.  좋은 인연 같은 귀인이 올 수도 있고 어쩌면 지금껏 인생이 힘들었다면 에게 긍정적인 방향의   이 올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기가 유아기 때에 오거나 늙어서 죽은 이후에 도래해서 활용도 못해보고 보내버리는 는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을 두고 복이 없다고 한다. 


첫 끗발이 개끗발이란 말도 있는데 복 중에서 최고로 치는 복은 단연 말년복이다. 파란 쟈켓 트렌치코트에게 바로 그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힘든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복이 많은 렌치코트여서 비로소 제대로 것이 오고 있고...


복잡하고 정교하게 얽히고설킨 시간의 매트릭스는 때가 되면 작동을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인연은 가까이에 있지만 먼 길을 돌아온다고 했다.




파란 쟈켓과 렌치코트는 삼성천 둔치를 함께 걷다가  204동 앞으로 해서 다시 올라왔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기 전  그들은 자신들이 조금 전에 지나온 곳에서 들리는 왜가리 울음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왜가리 두 마리가 그들이 건넜던 징검다리 중간에 내려앉아 서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징검다리 그 위에 102동 보다 더 높은 그 위 하늘에  구름이 있다. 그 구름 이불인 양 덮고 늘어져 자고 있던 해가 이때 나오기 시작했다. 구름을 떠밀고 나온 해는 둔치에 있는 연두색 잎줄기가 성성한 버드나무를 섭렵하고 둘이 서있는 204동 앞으로 나아왔다.

이 모든 갑작스러운 광경에 놀란 렌치코트가 탄성을 지르며 팔을 높이 어올려서는 손바닥을 펼쳐 해를 받다.


안 그래도 흰 팔목인데 프렌치코트의 매끈한 팔목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이 났다.

그들 머리 위에 뜬 구름보다 함께 해를 보는 왜가리보다   빛이 났다.




https://youtu.be/jRM07u99EzI?si=jXLRMkMR0StyK7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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