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결능력과 공감능력과 분석과 인간미에 대한 고찰
조용한 사무실에서 갑자기 신경전이 벌어졌다.
처음엔 친한 두 직원 간의 가벼운 말장난인 줄 알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분위기는 점점 격해졌고, 결국 말싸움으로 번졌다. 팀장이었지만 선뜻 개입할 수 없었다. 다른 직원들처럼 나도 모른 척하며 고개를 돌렸다.
40대 중반의 독신 여성 직원은, 그래서인지 더욱 오해를 사는 소문처럼,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업무상 상급자인 동갑내기 남성 직원은 무언가 설명하려다 이내 체념한 듯 말을 멈추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여직원이 내 자리로 찾아왔다. 조심스럽고 다소곳한 목소리였다.
"저...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그녀 쪽에서 불어왔고, 내 책상 위에서 졸고 있던 화분이 갑자기 잠에서 깬 듯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말을 꺼내려는 순간, 아주 작은 모기 한 마리가 '의잉~' 하고 들릴락 말락 하게 지나간다.
그녀는 말했다.
직원들에게 지급할 피복을 구매할 때, 금액이 커서 계약을 맺어야 하는데 예산이 부족해 업체와 어렵게 단가를 맞추었다. 규정상 계약 단계에서 단가를 더 낮춰야 했는데 업무가 처음이라 그 내용을 놓쳤다.
옆자리 계약 담당자는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이미 구매심의회까지 끝난 상태라 구매를 철회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업체 입장에서는 더 이상 가격을 낮출 수 없을 정도로 마진이 박했다. 진퇴양난이었다.
글로는 짧게 정리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난처함에 공감이 되었다
해결 방법을 잠시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했다.
"많이 힘들었겠어요. 진작 같이 고민해 볼 걸 그랬네요. 우선, 제 생각은 이래요. 업체에 우리 상황을 설명하고 서면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세요. 업체에서 우리 측에 팩스로 양해서를 보내라고 해주시고, 내용은 '현지 공장의 납품 단가가 변경되어 약속한 가격으로 납품이 어렵게 되었다'는 정도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내용 초안을 작성해서 보내고 업체가 자기들의 문서로 다시 꾸며서 다시 우리에게 보내주는 식이면 그쪽에서도 덜 불편해하겠죠?
이것은 본 계약과는 별개로 절차상 효력이 발생한 구매심의회를 다시 열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함이예요. 이걸 근거로 다시 구매심의회를 열면 되지 않을까 싶으네요"
직원이 서 있던 머리 위의 천장 조명이 순간 밝아졌는지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환하게 빛났다. 여기의 일은 감사를 대비한 고민으로 종종 이렇게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누가 나의 성격을 궁금해 하겠냐만, 글을 쓸 때의 나는 좀 감상적인 모습으로 보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분석적이고 너무 논리적인 것을 중요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의식적으로 조심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었다.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식은 오랜 기간 투자를 공부하면서 더욱 그렇게 되었을 것이지만 내 사주 속에 있는 '금(金)'의 속성으로 발현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러한 성향을 누르기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스스로 무디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배움과 수양의 결과이니 다행이라 할 수 있을지도..
자료를 모으고 축적하여 분석하는 나의 성격상 어떤 사실관계를 '판단'할 때는 결코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다. 일단 시간을 두고 쭉 지켜본다. 필요하면 모니터화면도 녹화를 하는데 트레이딩을 할 때 복기에 유용하고 다른 여타 용도에도 유용하다.
대신 굉장히 많은 데이터를 모으고 시간을 들여 그것을 축적한다. 그러다 보면 일정한 패턴과 구조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지점이 온다. 바로 그때부터 판단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옛말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구슬을 서 말쯤 꿰었을 때 목걸이가 되고 팔찌가 되며 형태가 드러나는 것처럼, 데이터가 모이고 축적이 되면 비로소 어떤 패턴과 모양을 이루는 결과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정말 신기하게도 전혀 미지의 것들이 마치 암묵지의 깨달음처럼 드러난다. 그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말이다.
이러한 방식은 일상생활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마저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두고 관찰한 후에야 비로소 판단의 단계로 조심스럽게 들어서겠다는 스스로의 규칙은 있다. 이런 분석적 사고방식은 몇 년 전 사법조사관 업무를 할 때 특히 큰 빛을 발휘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다.
인간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봉사 3년,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이라는 마음으로 사람을 보듬는 것이 더욱 가치 있다고 믿는다. 전에는 앉은 자리에 풀도 안 날 사람이라는 말을 들었던 나였다.
사람은 누구나 부족하고 모자라며, 또 변화하고 성장한다.
나는 항상 고민한다.
'해결책 없는 공감과 공감 없는 해결책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과 보듬고 포용하는 인간미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문득 베스로전서 4:8에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느니라'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관계에서 실망할 일이 있을 때 공감을 우선하고 보듬고 포용했으면 하는 마음 있으니 바보가 아니라 노력이다.(다음번부터~)
나의 이 짧은 이야기는 분석 그 너머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제 글이 괜찮으셨다면 조금만 더 이 곡과 함께 머물러 주시기바랍니다.
사랑의불시착ost - 마음을드려요 (아이유I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