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전에 쓴 짧은 글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보다가 우화를 하나 지어본다.
어느 시골 마을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놀고 있었다.
거의 30년 이전 마을이었기에 TV도 없었고 스마트폰도 당연히 없었다.
하여,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동네 회관 앞 공터로 모여들고 모이면 나이먹기, 자치기, 땅따먹기, 목자치기, 말뚝박기 등을 하며 온종일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매일 똑같은 놀이를 지겨워한 어느 머리 큰 녀석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다함께 놀 수 있는 재미있는 놀이를 제안했다.
그 새로운 놀이란 바로 왕궁놀이.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을 토대로 여러가지 역할을 맡아 PD없이 연기를 즉석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누구든 역할을 맡을 수 있기에 빠지는 사람 없이 다함께 놀 수 있다. 정말 기발한 발상이었다.
왕을 누구로 하지?
아이들은 서로 맡겠다고 실랑이를 시작했다. 잠깐의 소란이 있은 후 가장 힘쎈 근돌이가 왕을 하기로 했다.
여왕은 누구?
이번에는 여자들끼리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남자들 보다는 금새 여왕을 뽑았다. 얼굴이 예쁜 미순이가 여왕이 된것.
공부잘하는 학식이가 재상을 하고 싸움잘하는 악승이가 장군을 하고 아이들의 은근한 서열로 주민역할 장삿꾼 역할이 점점 조율이 되어갔다.
기이한 것은 아이들 세계에서도 부모가 잘사는 집 애들이 은근히 좋은 자리를 맡고 가난한 집 애들은 유감스럽게도 은근한 불이익을 받고 순위에서 밀렸다. 또한 공부를 못하거나 힘이 약한 아이들도 순위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다가 하인과 노비 역할을 결정하는 순서가 됐다. 별 말이 없던 순동이에게 하인 역할이 주어졌다. 그런데 갑자기 순동이가 화가난 듯이 소리쳤다.
“싫어! 나 안해! 좋은 것은 너희들만 다 하냐?" 순동이는 역할을 거부했다.
그때 왕 역할을 맡은 근돌이가 달래듯이 말했다. "야, 순동아, 왕국에는 왕이랑 백성이랑 다 있는게 맞고 하인도 있고 그런게 당연하고 모든게 다 하나같이 소중하고 필요한 것인데 하인역할을 좀 맡았다고 가는게 어딨냐? 그것도 가치있는 거야, 응?"
근돌이의 제법 일리있는 설득에 아이들도 감동을 받고 동조했다.
그러자 순동이가 비웃듯이 말했다.
"그래? 근데, 왜 하필 나야?"
"그렇게 중요하면 네가 할래?"
그러자 근돌이의 얼굴이 굳어졌다.
"왕은 나야..." 근돌이의 무게있는 대답이었다.
조용하던 아이들이 아이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나쁜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역할을 다시 역할을 바꾸자고 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러나 좋은 역할을 맡은 아이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양보는 커녕 보이지 않는 우월한 그 무엇으로 판을 제압하고 고착시켜 버렸다.
결국 아이들은 왕국놀이를 시작했다.
즐겁게 하는 놈, 힘쎈 놈이 무서워 마지못해 하는 놈,
내일 다시 왕궁놀이를 할 때는 왕을 맡으려 궁리를 짜내는 놈,
내일도 장군을 하려고 주먹을 휘두르는 놈 등이 모여 그렇게 흘러갔다
2012. 12. 25 저녁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