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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Mar 03. 2019

우리가 좀비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

한국형 좀비 영화 <기묘한 가족>

또 좀비(zombie)다. 영화 <부산행>에서 시작해, <창궐>을 지나, 다시 <기묘한 가족>으로 이어지는 국내 좀비 영화가 다시 관객을 찾았다. 빛을 무서워하고, 사람의 인육과 피를 먹으며, 어둠 속에서 주로 활약하는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는 이제 외국 영화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혹자는 이러한 좀비 영화가 지속적인 등장하는 것에 대해, 좀비 영화가 우리 사회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불명확한 미래와 나날이 심해지는 빈부격차로 전망이 없는 삶에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온전하지 못한 영혼 없는 청년들의 모습이며,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척박한 고용 환경 속에 놓인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곤궁한 모습과 닮아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일까? 좀비를 소재로 한 영화 <부산행>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넷플릭스라는 세계적인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킹덤>이라는 좀비 드라마에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붓는 현실을 단순히 이렇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해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좀비 영화가 하나 둘 국내 대중 앞에 소개되는 현실에서 이러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좀비 영화가 우리 사회에서 박탈감을 느끼는 청년들과 쉼 없이 일터에서 일하기만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라면, 스크린 앞에 앉아 있는 대다수가 노동자인 관객이라는 존재들이 자신들의 피폐한 삶을 보며 열광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나날이 치솟는 실업률과 고용 불안정 상황이 좀비 영화의 성공 배경이라면, 이런 식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는 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 폭력적 방식이다. 설령 이러한 사실이 맞다 한들, 우리보다 훨씬 먼저, 수 십 년 전에 이미 좀비 영화가 자리 잡은 할리우드와 다른 문화권의 좀비 영화 열풍을 설명할 길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분석해 본다. 정말로 좀비 영화가 우리 사회를 반영한 것인지, 반영하고 있다면 정확히 어떻게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지 따져봤다. 참신한 기획, 끈끈한 스토리,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돋보인 영화 <기묘한 가족>을 토대로,  '좀비'가 우리 곁에 자꾸 찾아오는 이유에 대해 살펴봤다.


영화 <기묘한 가족>의 좀비(배우 정가람, 쫑비 역). 출처: 영화 기묘한 가족 스틸컷


딜레마(dilemma)


살릴까. 죽일까. 좀비 영화 속 대다수 인물과 좀비들은 언제나 생(生)과 사(死)라는 '딜레마(dilemma)'적 상황에 놓여 있다. '딜레마'는 그리스어의 di와 lemma의 합성어로 '진퇴양난' 또는 '궁지'라는 의미인데, 좀비 영화는 이 딜레마를 통해 인물과 인물, 인물과 상황 간의 갈등을 조장한다. 다른 영화도 그렇지만, 좀비 영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과 사에 집착하며, 갈등이 증가, 위기상황을 최고조로 이끈다.


그런데 이러한 좀비 영화엔 한 가지 큰 특징이 있다. 다른 영화보다 좀비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생을 선택하면 사를, 사를 선택하면 생이라는 큰 기회비용을 지불하는 상황을 되풀이하는데, 이러한 좀비 영화의 특성은 우리의 딜레마적 삶과 맞닿아 있다.


좀비 영화 속 인물들은  사람이 좀비가 돼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사람답게 사는 것의 의미를 부여해 다른 인물을 죽이든지, 아니면 비록 사람의 모습은 아니지만 좀비라는 괴물로 만들어서라도 함께 하든지, 언제나 늘 선택과 집중의 상황에 부딪히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익히 본 좀비 영화 속 이와 같은 수많은 장면들은 우리 사회에서 나날이 증가하는 연명치료 거부 현상과 이어져 있다.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는 연명치료를 해서, 인간의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환자의 존엄을 고려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 환자와 환자 보호자들 처지와 닮아 있다.


영화 <기묘한 가족>도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정재영(준걸 역)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이 좀비가 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이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봤으면"이라고 대사를 날리며, 기꺼이 아이를 생각해 목숨을 내놓는다. 생명을 내놓은 정재영이 좀비가 되어가면서 좀비로서 살 건인지, 아니면 인간답게 죽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생과 사라는 갈림길에서 정재영은 삶 대신 죽음을 일말의 주저함 없이 선택한다.


좀비 영화 <기묘한 가족>은 극의 흐름이 치달을 수록 이러한 딜레마적 상황을 반복하며, 관객에게 당신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지를 묻는 데,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것을 넘어 신속한 결정과 재빠른 전개를 통해 영화 속 인물들과 관객이 함께 딜레마를 극복하는 공간을 마련한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 아니 누구나 현재 겪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며 영화는 그렇게 대중과 공감한다.


정재영(준걸 역)은 딜레마적 상황에서 기꺼이 죽음을 선택, 결국 다시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


트라우마(Trauma)


우리는  그동안 목격했다. 지난 2012년 중동호흡기 증후군, 이른바 '메르스 사건'으로 38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을 마주했다. 이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304명이라는 사람들이 사망하는 모습을 다 같이 숨죽이며 시청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대형 재난을 통해 단순히 안타까운 죽음과 희생을 보는 것을 넘어, 국가의 존재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되새기게 했다.


좀비 영화는 이러한 현실의 연장선이다. 특히 이미 해외에서 하나의 장르로 완벽히 자리 잡은 좀비 영화의 대부분은 '좀비 바이러스'라는 초대형 위기 속에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국내 영화 <기묘한 가족>도 마찬가지다. '좀비'라는 대형 재난에 우리 국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동안 최고를 자부하던 인력과 조직이 '좀비'라는 국가적 악재에 어떻게 속수무책, 수수방관으로 일관하는 지를 사실감 넘치게 보여준다.


한국형 좀비 영화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대다수의 할리우드식 좀비 영화들이 단순히 사람을 해치고, 좀비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만, 충무로식 좀비 영화는 대형 재난에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고난을 극복하고, 상처를 아물어 다시 일어서는 계기로 나아간다.


영화 <기묘한 가족> 후반부는 이러한 모습을 극명히 보여준다. 초대형 재앙 앞에서 우리 사회가 시민들의 힘으로 이겨냈던 것을 반영하듯, 국가가 제기능을 못하고, 무능과 불능인 상황에서 좀비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긴 시민들이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그래서 좀비 영화 <기묘한 가족>은 '트라우마' 극복기다. 라틴어 트라우마(Trauma)는 '큰 상처'를 뜻하는데, <기묘한 가족>도 마찬가지다. '좀비'가 할퀴고 간 상처를 회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군분투 이야기를 때로는 웃음과 재치로 풀어낸다. 끔찍한 사고를 겪은 지난 우리 현실에서, <기묘한 가족>은 국가적 재난 앞에서 국가의 존재가 무엇인지 물으며,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보여준다.  


좀비 바이러스에 내성이 생긴 박인환(만덕 역)은 자신을 희생해 결국 사람들을 구원한다.


인간성


그렇게 나아간다. 영화 <기묘한 가족>은 딜레마에서 벗어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기존 좀비 영화에서 한 걸음 더 전진한다. 바로 '인간성의 회복'. <기묘한 가족>은 지금은 비록 괴물인 좀비이지만, 이들이 과거에 사람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며,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영화는 좀비를 '괴물'로 규정하고, 없애버려도 되는 존재로 두는 쉬운 길로 가지 않는다. 좀비는 괴물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다친 사람이며, 따라서 손상된 인간성을 회복시켜야 하는 치유의 대상을 바라본다. 할리우드로 표방되는 기타 다른 좀비 영화들과 이것이 가장 큰 다른 점이다.


결국 보여준다. 영화 <기묘한 가족>은 좀비로 폐허가 된 도시와 나라에서 좀비를 찾아다니며, 이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데 중점을 두며 끝을 맺는다.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다라는 점을 보여주며, 처음부터 끝까지 국가가 나 몰라라 할 때, 국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 나라가 아닌 시민이 나서서 문제를 바로 잡는 모습을 그려낸다. 이러한 엔딩은 지난 2012년과 2014년 국가적 재난 앞에서 시민들이 연대해 위기를 다 같이 극복하려는 모습과 궤를 같이한다. 그래서 영화 <기묘한 가족>은 우리의 삶을 반영한 '딜레마 탈출기'이자 동시에 '트라우마 극복기'며, '인간성 회복기'다. 한국형 좀비 영화의 특징을 골고루 갖춘 참신한 시도가 돋보인 영화다.


영화 <기묘한 가족>은 다른 좀비 영화와 달리 인간성 회복에 중점을 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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