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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n 26. 2019

오디션 사회의 민낯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 편 (1)

※ 스포일러(spoiler, 헤살)가 많이 있습니다.


줄거리


손으로 직접 만지지 않고, 손짓 한 번에 원하는 채널이 설정되는 세상이다. 손가락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자동으로 요금이 결정되는 세계다.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삶에 최첨단 신기술은 사람들 삶 깊숙한 곳에 침투해 있다. 진일보한 기술 시대에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전거 위를 달리를 것뿐이다. 페달을 한 번 밟을 때마다 사람들의 계좌에 돈이 적립된다. 자전거라는 순수한 노동으로 번 돈은 먹고, 자고, 보는데 쓰인다.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전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전거 위를 달리고 달릴 뿐이다. 자전거로 돈을 모으는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인 것도 있지만, 궁극적인 이유는 <핫 샷>이라는 오디션 방송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 방송의 참가비는 자전거 위에서 6개월을 달려야 모을 수 있는 거금이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 속 사람들은 <핫 샷>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누군가는 이 오디션 방송에 참여하기 위해, 참가비를 모으고자 자전거 위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달린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 오디션에 참여하는 이들을 시청하기 위해, 누구를 우승자로 꼽을지 결정하기 위해 자전거 위를 달리고 달린다.


남성 주인공 '빙 험'과 여성 '아비 칸'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오디션에 참여하기 위해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데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참가한 오디션 <핫 샷>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 은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을까.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똑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자전거 위에서 돈을 번다.


오디션 <핫 샷>


빙 험의 금액 지원으로 여주인공 아비 칸은 오디션 프로그램 <핫 샷>에 참가하게 된다. 자신의 빼어난 노래 솜씨를 뽐내기 위해, 다양한 재능을 가진 참가자들 사이에서 우승하기 위해, 그래서 자전거 위의 삶에서 탈출하고자 오디션 무대에 오른다. 관중의 귀를 자극하는 아름다운 목소리는 순식간에 대중을 압도하고, 심사위원 세 사람의 마음을 장악한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알고 보니 아니었다. 남성 2명, 여성 1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출중한 외모였다. 분명, 노래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무대 위에 올라왔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정작 남성 심사위원들이 관심 있는 건 그녀의 목소리가 아니라 '몸매'였다. '가슴'이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 관심 있는 건 지원자의 가능성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랬다. 오디션 시작 전부터 한 남성 심사위원은 여주인공 아비 칸에게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애로티카'라는 성인 방송을 제작하는 그는 아비 칸에게 "윗도리 좀 올려 볼 수 있어요?", "가슴 좀 확인해 볼게요"라고 대놓고 물어본다. 준비한 노래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심사위원은 누군가에게 매우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알고자 한다.


이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무대가 끝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남성 출연자는 "(당신을 보며) 성적인(sexual) 장면을 상상했어요", "솔직히 꽤 흥분됐죠"라고 평가를 덧붙인다. 앞선 심사위원 태도의 연장선이다. 여성 심사위원도 마찬가지. 오디션장에서 중점적으로 봐야 할 지원자 개인의 노력과 잠재적 가능성에 이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흡사하다. 어디서 본 거 같은 느낌이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에서 보여주는 심사위원들의 태도는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방영됐던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과 닮아 있다. 자신의 개성을 십분 살린 곡과 노래를 준비했는데, 이에 대한 평가 대신 얼굴과 몸매, 옷매무새를 지적하는 소속사 사장들과 유사하다. 잠재적 가능성과 가치를 주로 봐야 하는 오디션 자리임에도, 나이 어린, 특히 미성년자 출신 지원자에게 "공기 반(半), 소리 반(半)"이라고 음성학을 일장 연설하는 가수 겸 프로듀서 출신 아무개와 닮아 있다. 음악은 음학이 아닌데, 아티스트는 개성이 생명인데,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규격화된 공산품을 공장장처럼 말한다. 이 틀에서 벗어나면 탈락이다, 그래서 넌 실패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은 우리 내의 만연한 현실을 반영한다. 청년실업률이 떨어질 기미 없이 나날이 고공행진인데, 뽑힐 사람은 이미 정해져 있는, 더 정확히 말하면 뽑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지만 쉽게 알 수 없는 우리 현실을 투사한다.


특히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흡사하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이번 시즌에 누굴 뽑을 것인지, 지난 시즌과 어떤 차이점을 둘 것인지, 대충 결정되어 있다. 각론은 다를지언정 총론은 이미 결판나 있다는 얘기다. <핫 샷>은 지원자만 모르는 우리 내의 취업시장과 오디션 무대의 진짜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 심사위원 세 사람은 딜레마적 상황을 제시한다.


딜레마


이제 지원자 여주인공 아비 칸의 차례가 왔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다. 그런데 가수가 되고 싶어 무대 위에 올라왔던 그녀는 심사위원들로부터 19금 성인채널의 배우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그녀의 가슴을 직접 보고 싶다던 심사위원은 말한다.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지금의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속삭인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위해 자전거 위를 달리는 삶 대신 비록 자신이 원하는 가수는 아니지만,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는 풍족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에 아비는 주저하게 된다.


이에 대중은 열광한다. 뒤는 없다. 한 번의 선택으로 앞으로의 삶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지원자의 선택을 강요한다. "Do it", "Do it" 시청자는 "해라"라고 한다. 지원자에게 자신이 평소 원했던 삶이 아닌, 심사위원이 바라는 삶을 살라고 한다. 이러한 시청자의 분위기는 말해 준다. 지원자의 아름다운 도전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한 여성의 몸매라는, 자신들이 진짜로 보고 싶은 게 따로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동시에 반영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방송 현실에서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진짜 이유가 어쩌면 지원자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들이 보고 싶은 걸 보기 위해서라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거 같다.


시청자는 지원자의 삶을 결정하고, 선택을 강요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딜레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하지만 여주인공 아비 칸은 결국 된다. 자신의 꿈인 가수를 포기하는 대신 유료 성인 채널의 배우로 거듭난다. 탈출구 없는 세상에 때마침 하늘 위에서 내려온 금 동아줄을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반복된다. "모든 것을 보게 될 거예요", "빠짐없이 전부 보게 될 거예요"라는 선정적인 문구와 함께 그녀는 매일매일 제공되는 성인 방송과 광고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말 그대로 '핫 스타'가 된다. 자전거 위의 삶은 자극적인 성적 도구로 이동한다.


맞다. 스스로 선택한 삶이다. 협박도 강요도 없었다. 오히려 현실이 어떠한지 진짜 제대로 말해준 사람과 선택의 기로에서 주저하는 이에게 "해라"고 응원하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 은 이 장면들을 통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무런 기약 없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반복되는 삶에 있는 사람들에게 "만약 당신이라면 어떠한 삶을 선택할 것"인지를 묻는다. 당신이라면 이보다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는지를, 나아가 원했던 꿈을 포기하고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을 비난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다. 


결국 여주인공 아비 칸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대중이 원하는 삶, 이전보다 편한 인생을 선택하게 된다.


괴롭다. 괴로운 나날의 연속이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의 남자 주인공 빙 험은 자신이 좋아하는 여성이, 자신의 추천과 지원한 금액으로 원하던 무대에서 섰는데, 다른 사람의 성적 도구로 전락한 현실에 몸부림친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는 건 잠시 뿐, 결국 빙 험은 결정한다. 이러한 상황과 분위기를 만든/만들고 있는 오디션 방송의 문제점을 꼬집게 위해 갈고닦는다.


그렇게 오른 오디션 방송 <핫 샷>. 빙 험은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던 무대 위에서 한 남자의 뜨거운 분노를, 잘못된 제도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마음껏 드러낸다. '오디션'이라는 체제에 저항하며, 이 구조를 지탱하는 세 명의 심사위원에게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결말은 어땠을까. 심사위원들은 빙 험에게 제안한다.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대신, 자신들 면전에서 비판하는 빙 험의 연기(퍼포먼스)가 이전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다는 무대였음을 강조하며, 방송을 제의한다. 심사위원들에게 이마저도 그저 공연의 일부였을 뿐, 핫 스타가 되고 싶은 한 인물의 발악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한 남자의 처절한 분노와 진심은 그들에게 닿지 않고 그렇게 비껴간다. 결국 철옹성 같은 체제에 저항했던 한 인물의 도전은 새로운 이라는 이름 하에 방송으로 이용될 뿐이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세 명의 심사위원을 나타낸다. 한 개인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있는 심사위원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의 모습임을 말해준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수단과 도구로서 사람이 필요할 뿐이라는 점을, 그래서 '사람'과 '인권'은 우선순위가 아닐뿐더러, 고려요소도 아님을 말해준다.


빙 험과 아비 칸으로 대표되는 지원자들의 모습도 말해준다. 현실과 꿈 사이에 놓인 청년들의 처지에 대해, 앞으로의 미래를 결정짓는 선택의 순간에서 취업자, 대학생, 준비생 등으로 불리는 청년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과 결정이 많이 없음을 전달한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은 오디션이라는 상징적 무대를 통해, 우리 사회 현주소를 투사한다.



새드엔딩


결국 사랑하는 여자를 잃고, 울분을 토했던 빙 험도 <핫 샷>이 제공하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빙 험은 대부분 전향한 이들이 그렇듯 하나의 체계를 지키는 선전도구로 전락한다. 특히, 오디션과 심사위원으로 상징되는 기존 체계의 불합리함을 지적하기 위해 빙 험이 준비해 간 유리조각은 기존 체계를 수호하는 상징으로 탈바꿈되기까지 한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상실감은 기존 체계의 지키는 원동력으로 뒤바뀌어, 더 악착같이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체계를 떠받드는 축으로 활용된다.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은 확실히 새드엔딩이다. '빙 험'과 '아비 칸'이라는 두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비참한 현실을 받아들여서 새드엔딩인 것을 넘어, 분노의 칼 끝을 잘못된 '체계'가 아닌 '개인'으로 향하는데 머물렀기에 슬픈 결말이다. 빙 험이 정말로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고 싶었다면, 준비해 간 유리 조각으로 적어도 세 명의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을 찌르거나 베었어야 했다. 


빙 험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불합리한 체계에 도전했지만 이를 제대로 휘두르기는커녕 자신을 찌르려는데 멈춰 버렸다. 사실상 그때부터 슬픈 결말은 암시되어 있었다.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도 무대 위의 화려한 연기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뿐, 그때부터 정지해 있었다. 현실 세계 젊은 층의 모습처럼, 기득권을 고수하느라 혈안이 되러 있는 그들과 닮아 있었다.


딜레마.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넷플릭스 <Fifteen Million Merits 핫 샷>은 어려운 숙제를 던져 주는 회차다. 우리 사회 민낯을 아주 제대로 꼬집은 구성과 반전이 돋보였다. 그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 모습인 거 같아 슬픔과 함께 씁쓸함도 함께 제공한다. 우리의 삶이 점점 더 각박해지고, 살기 어려워진다는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기는 미디어 현실에서 남다르게 다가왔다. 나아가 물음표를 떠올랐다. 그동안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하고 화제를 이끌었던 인물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들을 좀처럼 자주 볼 수 없는 방송 환경과 현실을 볼 때, 이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다.


빙 험이 준비해 간 유리조각은 자신이 아니라 심사위원들에게로 향했어야 했다.





[브런치 X 넷플릭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블랙 미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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