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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ndevoy Jun 26. 2019

포퓰리즘 전성시대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 편

※ 스포일러(spoiler, 헤살)가 많이 있습니다. 


줄거리


'왈도'는 우스꽝스럽고 재치 있는 말로 정치인을 풍자하는 방송 캐릭터다. 기존 정치인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당황하게 하고, 이 모습이 고스란히 전파를 타, 보는 이로 하여금 웃게 만드는 역할이다. TV 전면에 등장하는 왈도는 실제로는 스크린 뒷면에 있는 사람이 모션 캡처(motion capture)를 통해 나타내는 기술의 일부다. 모션 캡처는 "사람, 동물 또는 기계 등의 사물에 센서를 달아 그 대상의 움직임 정보를 인식해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등의 영상 속에 재현하는 기술"을 뜻하는데, 왈도는 그 현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이 왈도를 움직이는 건 바로 '제이미'다. 제이미는 33살 남자다. 그는 6년 전에 연극 극단에서 활동한 사람이다. 그 이후, 고금리 신용 대부업 광고도 찍기도 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인 제이미는 연극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왈도'를 방송에서 표현한다. 코미디언으로서 활약하던 그는 방송에서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촌철살인으로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제이미는 '왈도'로 분해, 남성의 성기를 자주 언급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농담과 글로 옮겨 적을 수 없는 희롱을 일삼는다. 하지만 대중은 이를 비판 및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열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왈도는 대중의 지지를 얻고, 인기도 갖게 된다. 결국, 이 분위기에 힘입어 미성년자와 물의를 일으켜 공석이 된 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왈도는 제이미, 제이미는 왈도다.


왈도와 김용민


우려 반, 걱정 반인 상황. 방송국은 선거를 앞두고 결정을 한다. 왈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나날이 증가하자 왈도를 보궐선거에 출마시키기로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중의 관심은 시청률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청률 상승은 수익과 직결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방송국의 욕심 때문에 결국 변질된다. 정치 풍자와 해학이 돋보였던 방송은, 시청률에 목 매어, 단순히 누군가를 음해하고, 공격하는 행위를 일삼는다. 이러한 흐름은 선거를 망치게 하고, 결국 선거의 향배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힘든 구조로 치닫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중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갖기는커녕, 오히려 선거가 진행되면 될수록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정책' 검증에 관심을 소홀히 하게 된다. 대중이 관심 있어하는 건, 오직 하나다. 왈도에게 놀림당하는 정치인이 면박을 당하는 상황이고, 당황하여 아무 말 못 하는 분위기뿐이다. 여론은 후보자들의 면모를 확인하기는커녕, 왈도의 말과 행동에 주목할 뿐이다.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얻은 가상 캐릭터 왈도는 결국 보궐선거에 출마하게 된다.


왈도와 <나는 꼼수다>


기시감이 든다. 넷플릭스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 편을 보면, 지난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현재도 왕성히 활동 중인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구성원들이 떠올랐다.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이름 하에 우리 사회 민낯을 공개하고, 유력 정치인들의 비위 사실을 성역 없이 폭로했던 그 방송이 떠오른다. 욕설, 선정적인 단어의 빈번한 사용, 19금을 넘나드는 표현으로 대중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던 팟캐스트가 생각나게 한다. 특히, 드라마 속 왈도를 보면, 갖은 구설수와 성폭력적인 발언을 일삼았던  <나꼼수>의 김용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드라마 속 '왈도'처럼 김용민도 실제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었기에 기시감이 들었다.


<나는 꼼수다>라는 정치 팟캐스트 방송의 영향력과 이를 열렬히 애청하는 지지자들의 지원, 정봉주 전 의원의 후광과 지지세력의 등에 없고, 제19대 선거에 김용민은 야심 차게 출마한다.  <나꼼수> 멤버 중에 한 사람인 정봉주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되자 내린 결정이다. 사전 여론조사 결과 당시 2등으로 나타난 보수당인 새누리당의 이노근 후보를 넉넉히 따돌릴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김칫국이었다. 김용민은 출마에 동시에 8년 전에 자신이 인터넷에서 했던 폭압적인 말,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수준의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다. "12시만 되면 공영방송들이 의무적으로 포르노를 틀어 성관계를 유도", "피임이 나쁘기 때문에 (여성을 대상으로) 임신공격을 해야 한다"는 등의 폭언이 알려져 사회적 공분을 샀다.


가장 충격적인 발언은 "미국 대통령 부시와 국방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를 죽이고, 당시 미국의 여성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를 아예 강간하고 죽이자"는 주장이었다. 결국 잦은 구설수가 사회적 논란으로 김용민은 승리가 유력했던 지역에서 패배했다. 새누리당의 이노근 후보는 그렇게 당선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제19대 선거에 김용민이 몸담았던 민주통합당은 '노원 갑' 패배에 그치지 않고, 제19대 총선에서 사실상 새누리당에 패배하게 된다. 선거 전까지, 압승, 적어도 무난히 이길 것으로 예측됐던 선거는 그렇게 끝이 났다. 당시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총선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슈로 '김용민 막말 파문'이 22.3%로 1위를 차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나는 꼼수다> 이미지. 2012년 1월 30일 자 <한겨레 신문> "‘가슴이 터지도록…’ ‘나꼼수’ 비키니 논란 가속" 중 일부.



왈도는 포퓰리즘이다


보수당, 노동당, 그리고 왈도. 보궐선거는 이 세 사람 중 누가 당선될 것인지를 두고 진행된다. 우리의 지난 제19대 선거 때처럼, 넷플릭스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는 보여준다. 전직 장관 출신인 보수당의 먼로와 정치 신인이자 노동당의 새 얼굴은 그웬들린, 특정 정당은 없지만, 소셜미디어와 방송에서 대중과 여론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왈도의 삼각구도로 보궐선거는 진행된다. 처음에 누가 1등이고, 2등이었냐라는 차이만 있을 뿐, 우리의 지난 선거와 <왈도의 전성시대>는 많이 유사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혼전 김용민이 그랬던 것처럼 왈도의 활약 여부에 따라 선거의 승패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상황이 진행된다. 


보수당 후보인 리암 먼로(왼쪽), 노동당 후보인 그웬돌린 해리스(가운데), 왈도인 제이미(오른쪽)


왈도는 포퓰리즘(populism)을 상징한다. 포퓰리즘은 사전적 의미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본래의 목적보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행태"인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김용민 씨가 제19대 선거에서 보여준 모습과 유사하다. 선거를 치루지만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정책은 없다. 상대방에 대한 비방만 있다. 정책 검증도 당연히 없다. 선거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면 된다. 방법은 간단하다. 대중이 원하는 말과 행동을 취해주면 된다. 정책과 후보자에 대한 검증은 없고, 막말과 독설, 인신공격과 조롱만 있다.  


포퓰리즘에는 두 가지를 가장 중요한 무기로 삼는다. 첫 번째는 스마트폰이다. 휴대성을 최대 장점으로 하는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든 세상과 공유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고, 소셜미디어에 이 내용을 올리고, 몇 마디 말과 짧은 문장으로 현재 세상을 생중계할 수 있다. 기존 매체보다 빠르다. 휘발성이 강하다. 내용이 자극적이면 자극적일수록 더 좋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빨리, 더 많이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그것이 나쁜 정보이든 선한 정보이든 삽시간에 퍼진다. 


두 번째는 정치혐오다. 기존 정치와 정치인, 정치제도에 대한 불신은 포퓰리즘을 확산시키는 비중 있는 원인 중에 하나다. 넷플릭스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는 이러한 사실을 과감히 보여준다. 왈도의 입을 빌려,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고 있는 보수당을 대표하는 인물이 유명 대학을 나오고, 엘리트 과정을 밟은 사람일 뿐, 대중과 동떨어진 후보자라고 지적한다. 노동당도 마찬가지다. 제이미는 왈도를 통해 2등을 달리는 노동당 후보가 "어차피 이기지도 못할 선거에 경험을 쌓으러 나왔다"라고 꼬집는다. 이 과정에서 당연히 정책 검증과 후보자의 됨됨이를 살피는 과정은 생략된다. 


제이미는 왈도를 통해 정치혐오감을 부추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방송국과 대중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국내의 중요 정치 프로그램을 섭렵한 방송국은, 범위를 넓혀 해외로 나가자고 한다. 왈도의 선정적인 말과 행동에 열광했던 대중은 더 자극적이고, 더 강렬한 것을 요구한다. 이 상황에서 '왈도'를 연기하는 '제이미'는 점점 괴리감을 가지게 된다. 자신이 왈도라는 캐릭터를 통해 한 지난 행동들이 누구를 위한 것들이었는지 고민하게 된다. 자신이 지금까지 저질렀던 일을 성찰하며,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현명한 유권자


넷플릭스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는 우리의 시대를 반영한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선거에서 정책 검증과 후보자의 역량을 제대로 살피지 않는 정치제도를 비판한다. 여기에 진보와 보수를 구별하는 것은 의미 없다. 좌파와 우파로 나눠 보는 것도 가치가 없는 일이다. 아시아라고, 아메리카라고, 유럽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포퓰리즘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에 퍼져있다. 


드라마는 20~30대 젊은이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풍토,  자극적인 말과 선정적인 행동을 하는 정치인들이 난무하는 세상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정치혐오감이 만연한 시대,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진일보한 사회에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꼬집는다. 날카롭게 지적하며, 동시에 제시한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우리가 어떤 정치를 추구해야 하는 지를 설명한다. 

 

"저에게 투표한 사람은 분명 멍청한 사람이에요"라고 왈도로 변신한 제이미는 유권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역설한다. 포퓰리즘의 상징인 '왈도'를 벗어던진 제이미는 직업을 잃을 각오를 하고 "투표를 해라"라고 토로한다. 이 말은 울림을 줬다. 기존 정치와 정치인을 조롱하고 혐오만 하지 말고, 다가오는 선거를 직시하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것이 유권자의 의무이자 덕목임을 말하는 듯했다. 


넷플릭스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는  "(왈도에게 투표하는 것이) 무효표보다 더 나쁘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며 종반으로 치닫는다. 이 대사는 포퓰리즘의 전성기인 현실을 고려해 볼 때, 남다르게 다가왔다. 이 문장은 이렇게 읽혔다. "유권자가 현명하게 투표하라"는 의미로 전해졌다.


드라마를 보며 떠올랐다.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은 "모든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고 말이 생각났다. 그래서일까. 포퓰리즘을 상징하는 왈도를 벗어던진 제이미의 마지막 절규는 현재를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경고하는 듯했다. 제이미가 "저는 무효표보다 더 나빠요"라는 외침은 나쁜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말하는 듯했다. 


넷플릭스 <The Waldo Moment, 왈도의 전성시대> 첫 부분에서 제이미는 녹록지 않은 현실을 살아가는 인물로 등장했다. 연극배우를 거쳐 코미디언이 된 제이미는 부유하지는 않지만, 가난하지 않은 인물로 묘사됐다. 드라마는 제이미에서 왈도로 변하고, 다시 제이미로 다시 돌아오는 과정을 거치며 마무리됐다. 하지만 결말은 비참했다.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한 제이미의 마지막 모습이 '노숙자'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말하는 듯했다. 유권자가 선거에서 현명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나아가 포퓰리즘에 휩싸인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귀결되는지 제시하는 듯했다. 민주주의 사이에 필요한 건 포퓰리즘이 아니라, '현명한 유권자'다. 


제이미의 마지막 절규는 나쁜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브런치 X 넷플릭스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블랙 미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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