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angel 아크 앤젤 편
한 병실에서 아이가 태어난다. 엄마는 아이의 모습을 바로 확인하려고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대신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생명을 알리는 울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부산한 소음과 긴박한 분위기가 채울 뿐이다. "아기는 무사해요?"라는 산모의 외침은 잠깐의 정적으로 이어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신히 아이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세상에 알린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아이의 이름을 '세라' 엄마와 딸은 놀이터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엄마와 이웃집 주민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그 사이 아이가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코 앞에서 놀던 아이가 놀이터 어디에도 없다. 마을 사람들과 주변을 뒤졌지만 아이는 볼 수 없었다. 괴로움에 엄마의 신경은 날카로워져만 간다. "아이를 찾았어요" 그 날카로움 끝에서 때마침 아이를 찾게 된다.
여기까지는 어느 가정에서나 한 번쯤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하나밖에 없는 딸을 찾게 된 엄마는 선택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실종되고 다시 찾는 과정 때문이었는지 엄마는 자신의 딸 몸에 'Arkangel(아크 앤젤)'이라는 칩을 내장한다. 몸속에 심어진 칩은 말을 해준다. 단순히 아이의 심장 박동수, 위치 상태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아이가 보는 시야를 엄마에게 공유해 준다.
엄마는 볼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넘어, 아이가 보는 세상을 염탐할 수 있다. 딸아이가 누구를 만나는지, 무엇을 보고 듣는지 파악할 수 있다. 동시에 못 보게도 할 수 있다. 포르노와 같은 선정적인 내용을, 딸의 신경을 예민하게 하거나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를 딸의 두 눈에서 배제시킬 수 있다. 넷플릭스 <Arkangel, 아크 앤젤> 편은 최첨단 기술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가 가진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느 부모나 알고 싶어 한다. 자식이 누구를 만나는지,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어디에 가고, 거기서 무엇을 하는 지를 알고자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들은 자식의 상태와 위치 파악에 많은 관심을 둔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부모 자식 간에 있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그런데 넷플릭스 '아크 앤젤' 편은 아니다. 딸인 세라가 다른 때보다 늦게 귀가하자 엄마는 불안한 마음에 딸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Arkangel(아크 앤젤)'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 어렸을 적 세라의 돌발행동으로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태블릿을 꺼내어 든다. 배터리를 연결하고, 그렇게 딸이 현재 위치가 파악된다. 딸의 존재를 확인한 뒤 찾아온 안심도 잠시, 딸의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간다. 아이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프로그램은 갑자기 요란하게 작동한다. 그렇게 누른 실시간 영상. 엄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또래 청년과 성관계를 갖는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여기에서 멈췄어야 했다. 지금까지 만으로 충분히 잘못됐다. 하지만 엄마는 멈출 수 없다. 아니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 딸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한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딸인 세라가 남자 친구와 지금 무엇을 하는지, 딸 아이엑 전혀 알리지 않은 채, 딸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남자 친구를 바라본다.
그러다 우연히 보게 된다. 딸아이의 남자 친구가 코카인이라는 마약을 거래하는 놈이라는 사실을, 딸이 호기심에 그 마약을 해봤다는 사실을 딸아이가 바라본 세상이 담긴 동영상을 통해 파악하게 된다. 화가 난 엄마는 딸 남자 친구의 사진을 캡처한 뒤 검색해, 그가 일하는 장소를 찾아낸다. "딸과 헤어져"라고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딸의 남자 친구가 코카인을 다루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경찰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런데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만으로 충분한데 위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Arkangel(아크 앤젤)' 프로그램의 알림이 다시 무심하게 울리고, 엄마는 딸아이보다 먼저 알게 됐다. 15세인 딸아이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 아이를 지워야 하겠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렇게 엄마는 일말의 주저함 없이 약국으로 향한다. 약국에서 긴급 피임약(Emergency contraceptive, EC)을 구매하고, 딸아이가 먹는 음료에 집어넣는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딸 세라는 수업 도중 급하게 구역질을 하게 된다. 학교 간호실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자신이 임신했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딸은 절망한다. 자신의 임신 유무를 정작 본인이 알지 못했다는 사실과 이 아이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연이어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 낙담도 잠시, 딸 세라는 집으로 곧장 향하여, 자신이 왜 긴급 피임약을 먹게 됐는지를 확인한다.
넷플릭스 '아크 앤젤' 편은 '감시사회'를 말한다. 기술의 발달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동시에 반대급부로 부작용이 클 수 있음을 나타냈다. 한 사람의 사생활을 낱낱이 파악하는 것도 모자라, 일상에서 다른 정보와 관계를 끊어버릴 수도 있음을 아프게 꼬집는다. 의사에게 칼을 쥐어주면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강도에게 주면 살인강도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문명과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제기됐던 '빅 브라더(Big Brother)' 시대의 우려스러운 현실을 잘 보여준 것에 불과했다. 넷플릭스 '아크 앤젤' 편은 여기에서 머무르지 않고, 이러한 기술 혁신 시대에 부모의 소유욕이 자식의 인생을 완전히 망칠 수 있음을 매우 자세히 보여줬다.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부모 자식 간에 겪었을 문제가 새로운 기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이 시대에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그래서일까.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넷플릭스 '아크 앤젤' 편은 남다르다. 감시사회에 대한 우려를 자세히 보여주고,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새로운 기술 혁신의 시대에 파탄으로 가는 상황을 잘 드러냈다. 나아가 '아크 앤젤' 편은 드라마 속 상황이 단순히 허구(fiction)가 아니라, 현재 우리 한국 사회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 같아 큰 울림을 줬다.
현재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는 현실을, 생활고를 못 이긴 부모가 자식과 동반자살 하는 우리 사회 어두운 단면을, 제대로 교육하고 보살피기는커녕, 미성년자인 딸을 아버지가 수년간에 걸쳐 성폭행하는 범죄를 매일매일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 부모의 지나친 교육열에 해외 명문대학교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났던 웃을 수 없는 사건을,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분위기를 버티지 못한 자녀들이 옥상에서 스스로 몸을 던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거의 매일 보고 있다.
넷플릭스 '아크 앤젤' 편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해피엔딩이다. 우리 사회에서 부모 자식 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일련의 범죄와 비교해 볼 때, 현실보다 더 나은 결말이다. 부모가 자식을 죽이고, 학대, 방치하는 어두운 면과 비교해 볼 때, '아크 앤젤' 편에서 딸인 세라가 엄마의 잘못과 범죄를 깨닫고 집으로부터 도망치는 장면은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우리 사회 수많은 아이들이 가정학대로 목숨을 잃는 현실에서 죽지 않고 집 밖을 스스로 뛰쳐나간 15세 세라의 행동은 앞으로 응원하고 격려해 주고 싶은 결론이었다.
5G다 뭐다, AI다 뭐다 하는 기술 혁신의 시대에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까. 넷플릭스 '아크 앤젤' 편은 우리 사회에 많은 고민거리를 던지는 회치다.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