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시는 아버지의 교육
#21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시는 아버지의 교육
4월 14일 내가 태어난지 25년 째 해 되는 날이었다. 사실 생일이 늘 즐겁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나혼자 나이먹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내 생일은 조금 다르게 하고싶었다. 그래서 내가 선물을 드리기로 했다. 엄마에겐 꽃을, 아버지에겐 용돈을 드렸다.
살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려보았다. 정년퇴직하시고 용돈이 없다며 투덜거리시던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쩜 시간이 이렇게 흘렀을까? 늘 투정만부리고 어리광만 부리던 막내아들이 어느세 직장을 가지고 이제 아버지께 용돈을 드리다니.. 나도 나스스로 대견했지만 아버지는 오죽했으랴..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지 나는 감히 예측조차 하지못한다.
아이구 이게 무어니,
하며, 웃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순간 무어라 알수없는 처음 느껴지는 감정이 세어나왔다. 그래도 생일상앞에서 울쩍해 할 수 없기에 행복하게 웃는 얼굴로 생일상을 받았다.
이럴때마다 느끼는 것 이지만 시간이란 녀석은 고맙기도하지만,때론 야속하기도한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자식이다. 시간이 흘러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때가 되어 감사하지만, 그만큼 부모님의 연로하심이 걱정되어 야속하기도 한, 정말 시간이란 녀석은 알다가도 모를 녀석이다.
우리 아버지는 19살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생업에 뛰어드셨다.아니 뛰어 드셔야만 했다. 8남매중 장남, 더군가나 독자 이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일을 시작하셨다. 아버지의 양 어께에 실린 무게는 얼마나 무거웠고, 또 얼마나 고독했으랴. 그럼에도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또 친척들에게 보여주신 모습은 한결같은 꾸준함이었다. 일생을 꾸준한 스케줄로 한치의 오차도없이 살아오셨다.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고자랐고, 그런 모습을 존경하며 살아가고있다. 나또한 그런 꾸준함을 얻기위해..
나의 생일이 정신없이 지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뒤 아버지가 내 옆으로 슬쩍오셨다.
"응? 아부지 왜??"
"아니,그냥"
아버지는 감정표현이 정말정말 정말정말정말 서투르시다. 전형적인 옛날 아버지이다. 저번에도 언급한 이야기이지만, 아버지와 나는 그리 대화가 많지가 않다. 대화법이 잘 맞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직접적인 대화 보다는 아버지와 나는 서로 마음으로 통하고 마음으로 느낀다. 그렇게 나는 TV프로그램에 다시 집중하려는 찰나 한마디가 들려왔다.
고맙다 다컷네 우리아들, 이제 용돈도 종종 주어라 허허
참, 그 한마디가 뭐라고, 정말 사람 마음을 울린다. 정년퇴임을 한 요즘 아버지는 하루하루가 새롭다. 자신이 점점 늦잠을 자는것도 신기하고, 새로 컴퓨터를 배우러 가신다. 처음에는 적응하시지 못하셨다. 집에있으신걸 몹시 지루해 하셨다. 평소에도 연휴때 집에 있으시면 지루해 하시던 아버지이신데 오죽하시랴, 그래도 조카덕에 아버지도,엄마도 시간가는지 모르신다. 정말 다행이다.
조카덕에 변한게 한가지있다. 그건 바로 아침밥을 아버지 혼자 차려드시는것이다. 정말... 우리집에 상상할수 없는일이 일어난것이다. 결혼을 하신지 벌써 30여년이 넘었지만, 늘 아침밥은 엄마가 챙겨드렸다. 아버지는 아침밥을 한 숟가락이라도 꼭 드셔야만 하루를 시작하셨다. (아들인 나와는 정반대로) 그 덕에 엄마는 30여년간 아버지의 아침을 꼭꼭 챙겨드렸다. 하지만 이제 달라졌다. 조카를 돌보며 피로가 쌓인 엄마는 아침에 잘 못일어나신다. 그런 엄마 눈치를 보며 아버지는 아침밥을 혼자 챙겨드신다.. ㅎㅎ;;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따라 상황이 뒤바뀌는 장면이 점점 늘어난다. 그래서 괜시리 요즘은 아버지말을 특히 더 잘들으려 한다. 아버지는 일을 안하시더라도 우리집의 가장이시기 때문이다. 사소한일일지라도 아버지의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주어야 한다 생각하기에 요즘은 더욱 가족들을 더욱 생각 하고,살피는것 같다.
어렸을때는 우리집안의 화목이, 이 행복이 순전히 엄마의 덕택이라 생각했던적이 있다. 엄마는 지혜로우시며, 다정하고, 사소한것에 행복함을 느낄줄 아는, 그로인해 우리도 또한 행복해질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신분이다. 근대 얼마전 이모들과 술을 먹다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엄마를 이렇게 만드신 분이 아버지였다는것을.. 상당히 놀랐다. 아버지의 꾸준함과 특유의 깊음으로 엄마를 이렇게 '사랑스러운'사람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다시한번 아버지를 존경하게 되었다.
이런식으로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한마디도 안하시며, 당신의 그 행동으로 그 실천으로 나에게 늘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다. 어떨때는 가장으로서의 역활과 책임감을, 다른때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의 배려와 사랑을 배운다.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수 있게 가르쳐 주신 아버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