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綠)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일하는 직장에 작은 운동장이 하나 있는데, 운동장 양쪽에는 녹이 군데군데 슨 작은 축구 골대가 있지요. 예전부터 보기가 좋지 않아 새로 칠하기로 마음 먹었고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렸지요. 날씨를 살펴보니 어제가 적당할 듯하여 직원 한 분과 하얀색 페이트 칠을 하였습니다.


원래 기존의 페이트를 벗겨내고 녹을 그라이더로 갈아낸 후, 다시 칠해야 하지만, 시간적 여유도 없고, 올해까지만 사용할 계획이라 사포로 대충 닦아내고 그 위에 덧칠을 하기로 하였지요. 하얀색 페인트에 시너(신나)를 섞어 부드러워진 페인트를 붓으로 조금씩 칠해나갑니다.


결국 페이트 칠을 마치기는 했지만, 녹 위에 그냥 칠한게 마음에 걸립니다. 아마 몇 개월 후에는 덧칠한 페이트가 들뜨기 시작하고 페인트 안쪽에 검붉은 녹들이 다시 올라오겠지요.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근본적인 원인을 제거하지 않으면, 잠시 숨길 수는 있지만 결국은 다시 밖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마음 역시 쇠붙이 녹과 비슷한 성질이 있지요.


충격, 공포, 아픔, 슬픔 등은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지요. 다만, 이러한 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음 구석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다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다시 올라올 수 있고, 또는 자신도 모르게 오랫동안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아픔이, 슬픔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요. 최소한 내가 무엇에 상처받았는지 알게 되다면, 지금의 자신을 해석할 수 있게 되고 상처가 자신에게 주는 영향력을 줄여,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너무 더운 하루였습니다. 엉뚱한 말이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오늘밤 내가 가진 상처를 생각해보고 뜨겁게 자신을 사랑하는 밤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다른 상처가 나의 내면에 잠재되지 않게끔...



편안한 밤 되세요.~^^


https://youtu.be/vw4nxXsb6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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