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삶의 기준과 가치' 분리하기
우리는 살면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산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필요한 경우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익' 자체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의해 정해진 이익이 아닌지, 삶의 시간에서 그 '이익'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내 앞에 작은 빵이 테이블에 놓여있다.
A가 다가와서, "이 빵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내가 먹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먹게 될 것이고 그 맛있는 빵을 남이 먹도록 놔둘 필요가 없다고 한다. 챙길 수 있을 때, 챙겨두라고 한다.
하지만 난 지금 그 빵이 필요 없다. 배가 고프지 않을뿐더러 조금 있으면, 밥을 먹기 때문이다. 실랑이를 하는 가운데, 잠시 후 B가 다가온다.
어느 순간, 나를 설득하던 A가 B에게도 그 빵을 먹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 마음속에는 조금씩 욕심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제 나에게 그 빵은 더 이상 작은 빵이 아니다. 마음속 빵의 의미(가치)는 점점 커지게 되었고, 그것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새 A는 중재자에서 권력자 역할을 하게 되고, 이제 나와 B가 서로 그 빵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 밖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과 A는 그 싸움을 지켜보면서 즐거워하고 A는 우리를 흐뭇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노예는 자신이 남의 소유가 되어, 자유 의지와 권리를 빼앗긴 사람을 의미한다. 현재, 노예 제도는 존재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볼 때, 어느덧 정신적인 노예로 살고 있다는 생각에 흠칫 놀란다.
우리가 원해서 노예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조직 생활을 하면서, 어느덧 조직 공동의 가치가 아닌 권력자의 가치 또는 다른 사람들의 가치를 나의 삶의 가치와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빵의 가치는 나의 가치가 아니다. 그렇다고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공동의 가치도 아니다. 그것은 나와 B가 권력을 부여한 권력자의 가치이다. 만약 치열한 싸움 끝에 내가 그 빵을 차지한다고 나에게 의미가 있을까? 앞에서 말한 빵은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 없다. 나의 긴 인생의 관점에서도 빵을 차지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삶에서 스스로 가치 기준를 찾지 않으면, 자신의 가치를 남에게 맞추는 정신적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의 가치에 나의 가치를 맞추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시기하고 질투하며, 결국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삶을 길게 보고 내 앞의 이익이 지금 이 순간이 나의 가치와 관련이 있는지, 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인지 한발 떨어진 시각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우화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조삼모사는 당장 현실의 이익 때문에 잔꾀에 농락당하는 멍청한 원숭이들의 이야기이다.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저공(狙公)은 권력자이고 원숭이는 우리 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우화를 읽는 독자는 '밖에서 싸움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 원숭이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고민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