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대한 의미

내가 행복해야만 사랑이다.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는 상대방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고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은 이별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힘들어하였다. 나 역시 그 친구처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면, 그 친구의 반응과 별다를게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은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인가'


모든 것이 미숙한 젊은 시절, 사랑은 항상 고통스러운 이별을 동반하였다. 그 시기의 사랑은 단지 남녀 간의 순수하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기분인 동시에 동물적인 성적 욕구를 동반한, 조금은 아이러니한 그런 사랑이었다. 그 당시, 사랑하는 것을 '상대방을 소유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내가 가진 '사랑'이란 물건을 빼앗긴다는 느낌, 즉, 상대방에 대한 강렬한 소유욕으로 인해 싸움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30대의 사랑은 내가 괴롭더라도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시절, 영화 타이타닉처럼 사랑하는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런 영화에 감동을 받았고 누군가 희생되는 상황이 되어야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의 '사랑'은 곧 '고통'과 '희생'과 동일한 단어였다.

타이타닉의 한장면(출처:네이버 영화)


40대가 되자, 사랑은 단순히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무한한 사랑이나 친구 간의 우정처럼 그 대상과 폭은 넓어졌지만, 가족이든, 친구이든, 연인이든, 어떤 관계이든 여전히 사랑을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이 남아 있기 때문에 사랑은 고통을 동반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정신적 마조히즘(masochism)이 아니라면, 고통을 즐기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사랑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후배와의 대화에서 '배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때, 나는 '배려는 남을 위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 자신이 즐거워야 진정한 배려이다.'라고 표현하였다.


사랑 역시 내가 생각하는 배려와 마찬가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의 이면에는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인한 고통의 본질은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나만의 소유욕인 것이다. 사랑은 그 과정에서 끝맺음까지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되, 본인 역시 행복을 바래야 한다. 나의 삶이 곧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이기에 내가 행복해야 상대방도 행복하고 상대방이 행복해야 나 역시 행복하다.


이별의 아픔을 견디는 것은 쉽지 않다. 외로움과 공허함으로 괴로워하면서,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 사람과 같이 삶을 살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사랑의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아닌 받아들이는 과정은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내 머릿속에 투영된 상대방의 모습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본질을 인정하는 것'이고 상대방이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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