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하는 삶에 대해

독립적인 존재로서 남아야 나의 삶을 살 수 있다.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상대방) "살아가면서 누구를 의지하고 있나요?"


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내도, 부모님도 아니고 특별히 의지하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다. 아니.. 한때, 우울증으로 정신 못 차릴 때, 무속인을 의지한 적이 있다.(지금은 나의 미래에 대해 궁금하거나 복을 원하는 등 그것들이 무의미하기에 무속신앙에 의지하지 않는다.)


(상대방) "저는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신의 존재는 특별하다. 유신론-무신론의 문제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데, 나를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써 신의 존재를 믿는다.


인간은 삶이 힘겨울 때, 자신의 능력보다 더 뛰어난, 자신의 이끌어 줄 수 있는 신적 존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신은 삶을 헤쳐나갈 수 있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였다.


'신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를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만들어가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활용하여 오직 신을 섬기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닐 것이다. 자유의지를 부여했다는 것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으로, 마치 하얀색 도화지와 다양한 색깔의 물감을 주며, '너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라. 그것이 곧 너의 삶이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삶을 그려가는, 삶의 행복을 느끼는 인간을 사랑할 것이다. 이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면, 나에게 신의 존재는 전혀 가치가 없다.


나의 삶을 살기 위해,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 가기 위해서는 자유의지에 따른 독립적인 존재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의 삶의 결과를 인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누구를 의지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에 두려움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자유의지를 남에게 넘기는 것이다. 나의 자유의지를 남에게 넘기는 것은 신이라 할지라도 난 원하지 않는다.


만약, 신에게 의지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난 그것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인간은 누구나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원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 인간의 완성이다. 인간의 완성은 수많은 고통과 갈등, 인내, 책임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 형성된다. 이것이 독립적인 삶이고 내가 추구하는 삶이며, 내 주변 사람들의 삶도 아닌, 신이 진정으로 인간에게 원하는, 내가 주인인 삶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뜻과 반대로, 인간에게 불을 선물하였다. 분명, 자신의 자유의지대로 행동하였고, 그로 인해 까마귀로부터 간을 쪼아 먹히는 벌을 받게 된다. 인간을 위해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을 희생하였고, 아니, 자신을 바쳤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진 것이다. 분명, 엄청난 고통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소유의 삶을 살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그의 자유의지를 찬양한다.


어느덧 따뜻한 커피가 식어갈 때, 우리는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 카페를 나서며, 문득,


'나는 과연 오만한 것인가? '


'아니, 난 나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미래는 두렵다. 그러나 그 두려움을 이해하고 앞으로 나아가리라!'


P.S. 이 글은 윤리적인 삶, 도덕적 삶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법률과 윤리적 기준은 인간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신의 창조물이 아니며, 인간의 가치이지 신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소위 '선'이라는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지만, 인간의 모든 가치는 시대적 배경에 따라 끊임없이 재조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