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두 스티커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여름이 다가오면 얇은 하얀색 티셔츠를 즐겨 입습니다. 그런데, 항상 신경쓰이는 것이 흰색 셔츠이기에 몸의 비침을 피하기 어렵지요. 예전에는 남자라 그런지 비치는 것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인터넷에서 '안구 테러'라는 사례를 본 후, 약간의 두께가 있는, 속안이 비치지 않는 흰색 티셔츠로 구입합니다.


매년 티셔츠를 구입할 때가 되면, 너무 마음에 드는데, 비침이 있는 경우도 있지요. 그럴때는 인터넷에서 별도로 구입한 유두 스티커를 붙입니다. 붙이면서도 웃음이 나오지요. 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가끔 스티커를 붙인 것을 잊어버려 한 4일동안 붙이고 있던 적도 있지요.


재밌는 점은 스티커를 붙이기 전에는 비치는 것이 부끄럽다고 느끼지 않았지만 그것을 인식한 후부터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지요. 그런점에서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은 다른 사람의 시선과 인식으로 인한 만들어진 부끄러움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어린시절 여름만 되면, 동네 냇가에서 팬티만 입고 수영하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는 전혀 부끄럽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노는 것이 자유롭고 즐거웠지요. 아마 당시 아이로서 그만한 노출은 일반 대중들의 허용 범위에 있었고 무더운 더운날 남자들이 윗옷을 홀랑벗고 등목하는 문화가 일상이었기 때문에 남자 가슴의 노출은 자연스러웠지요.


문화가 발달할수록 인간의 자연적인 모습을 거부하고 본능을 억압하며 행동 양식과 모습을 일정한 틀에 가두려는 성향을 보이지요. 그러면서 억압된 그것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표출하고 문화는 그것을 재생산하여 소비하는 순환적인 구조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생각하여 고대 그리스의 '원반던지는 사람'이란 작품을 보면서 부끄러움 대신 아름다움과 균형을 느끼지만 실제로 동일한 모습으로 있는 사람에게는 아름다움보다는 부끄러움을 느끼겠지요. 그런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만들어진 문화적 기준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때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P.S. 오늘 글은 집에서 옷좀 입으라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편안한 차림으로 있고 싶다는 생각에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흐름대로 주저리 주저리 그적여 보았습니다.

https://youtu.be/PDg58ndjdq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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