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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커피 그리고 삶 Jun 21. 2023

이후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어릴적 동화책을 참 좋아해서 또래 친구들보다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었습니다. 집에 읽을 거리가 많았지만, 텍스트로 가득찬 문학작품보다는 그림과 간단한 줄거리로 된 어린이용 동화책을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즐겨 읽었지요.


그때는 몰랐지만, 많은 이야기의 마지막은 언제나


'이후 둘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라는 공통적인 결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의 나이가 들었음에도, 천생연분을 만나 결혼을 하면, 동화책의 끝맺음처럼 모든 것이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지요. 그래서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화책의 주인공이나 결혼 상대자는 한나라의 왕자이거나 귀족 등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을뿐만 아니라 신분상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었으므로 풍요와 명예가 이미 갖추어진 상태라 볼 수 있지요. 삶을 영위하기 위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장에 다녀야 하고 성격차이로 일어나는 부부싸움에, 열심히 키워났더니 어른 흉내내며 부모의 말도 잘 안듣는 자녀까지... 이러한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동화책에서 보여주지 않지요.


꿈과 희망으로 가득차야 할 아이들이 이것까지 알게 된다면, 아마 인생 자체를 비관적으로 바라볼 위험성 때문에 언제나 결말은 '행복하게'로 불문율처럼 표현했는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과연 동화속의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참 지루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시간이 지나, 젊은 날의 시간이, 그 당시 괴로웠을지라도 그때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느끼는 것은 후회, 성공, 기쁨, 설렘 등의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여 맛있는 비빔밥처럼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기 때문이지요. 동화속의 결말 이후의 편안함과 안락함은 결코 이런 맛난 인생을 느끼게 해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슬픔, 행복, 질투, 분노, 그리고 미미한 알 수 없는 감정들로 이루어져 있지요.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는 단순한 오감이 아니라 많은 감정들의 혼합물이지요.


행복은 이런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슬픔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고

분노는 우리에게 정의에 대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며,

질투는 우리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지요.


슬픔이나 질투같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일지라도 삶 전체에서 꼭 필요한 감정들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풍요로운 삶이 가득한 어른들을 위한 동화속 결말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이후 그들은 때론 지지하게, 때론 서로 싸우기도 하고, 때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티격태격한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나름 만족하며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행복한 밤 되세요~


https://youtu.be/T5dnEKqOa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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