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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 커피 그리고 삶 Jun 28. 2023

강하게 키운 놈

얼마전, 시내에서 신호대기 후 출발하려고 하는데, 시동이 훅~ 꺼졌습니다. 1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 조금 당황하였지요. 그래도 예전에 끌던 차는 겨울만 되면 한달에 한두번 주행중 시동이 꺼지는 경험을 했던터라 이러한 상황에 익숙해서 그런지 침착하게 다시 출발할 수 있었지요. 이후로도 두어번 시동이 꺼질 것 같은 덜컥거림이 있어 조만간 정비를 하려고 합니다.


이 친구(내차)를 만난 것은 2013년 6월, 그러니까 이제 딱 10년 되었네요. 그래서 그런지 내리막길에서 뱀이 혀를 날름거릴 때처럼 '쉭쉭~'하는 소리가 나고 핸들도 ‘두구두구’ 흔들려 바퀴쪽 디스크를 교체하는 등 작년부터 부품 교환이 잦아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에 대한 욕심이 없어서 새차로 굳이 바꾸고 싶지 않지요. 더군다나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깥에 세워놓아 강렬한 햇빛과 한파를 그대로 맞게 두거나 문콕은 신경도 안쓰며, 차가 삐걱되어야 그나마 신경을 써 주는 이런 차를 다시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요. 한마디로 강하게 키웠지요. 사람 같았으면 아마, 저에게 욕 한바가지 했을 것 같습니다.


참… 나의 정신세계도 희안한 것이 꿋꿋이 버티는 차를 보면서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있지요. 차를 인격화하여 흐믓하게 바라보는 것을 보면, 아마 저의 정신세계의 일부분은 3~4세에 머물러 있나 봅니다.


어찌되었던 오래된 물건들에게는 애정이 생기지요. 다만, 함께 오래있다고 애정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때, 비로소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친구는 내가 화가 났을 때, 슬펐을 때, 행복했을 때, 언제나 떠나지 않고 운전하면서 고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슬픔을 삭힐 수 있도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으며, 오랫동안 행복감을 누릴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였지요.


이런 점에서 난 가까운 사람에게 그러한 존재가 된 적이 있었는지 자신에 대해 조금은 되돌아봅니다.


아마 요즘 자주 고장이 나는 것은 내가 그동안 이 친구를 알아주지 않아 투정부리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에 이제는 세차도 더 자주해주고 엔진오일도 잘 갈아주며, 가끔은 네비게이션에 말도 걸어주어야겠습니다.


https://youtu.be/nzDO6tAB6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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