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담임 선생님은 '우리'라는 단어를 강조했지요. 입학 초반에 '저희'와 '우리'의 차이를 열성적으로 전파하려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가끔 학생들이 말할 때, “저희 학교에서는.... ”에서 '저희'란 단어가 나오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셨습니다.
이러한 성향의 선생님은 학급내 공동체의 의식을 강조하셨고 운동회에서 줄다리기를 지기라도 하면 분위기가 싸했지요.(그분은 항상 "줄다리기는 힘이 아니라 협동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란 말보다 '저희'란 단어가 익숙하고 편해서인지 쉽게 우리 학교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지요. 아마 담임 선생님과 달리 '우리'와 '저희'의 단어 차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란 단어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학교', '우리 회사', '우리 마을'.. 등 왠지 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소속감이 느껴지고 나 말고도 다수라는 것이 느껴져 심리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지요. 우리를 통해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겠지요.
또한, 우리라는 단어는 평등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개념상 우리는 혼자가 아닌 2인 이상으로 나와 너를 기본으로 동등한 위치를 표현한 개념이지요.
그리고 친근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우리 형’, ‘우리 동생’.. 친근함을 표현할때도 사용되지요. 그러나 개념적으로 보면, 동생과 나 사이를 둘만의 사이를 표현할 때, ‘우리 동생’이란 말은 뭔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여러 이유에서 ‘우리’란 말이 좋은 것은 알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우리'란 단어를 우러러 보거나 추앙하지는 않지요. 우리라는 울타리속에 개인의 개성보다는 모두가 평등하고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하기에 뛰어난 사람은 끌어내리고 부적한 사람은 끌어올려야 할 것 같은 오묘한 기분을 느끼지요.
최근 어촌계나 귀농인 마을에서 외지인에 대해 일정한 금액의 발전기금을 걷는 것이 문제가 된 적이 있지요. 우리라는 울타리에 소속되려면 개인의 불합리를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폐쇄된 극단적 개인주의의 표상으로 '우리'의 발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아름다운 ‘우리’의 의미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우리'만이 개인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필요시 하나의 커다란 힘을 만들 수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