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사람과 빛 내주는 사람
가을이 조금씩 깊어지는 시기. 찬바람은 나의 얼굴에 부딪히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반짝거리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거미줄이다.
나무 중간에서 아래까지 길게 늘어진 거미줄은 곧 끊어질 것처럼 위태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강한 탄성이 느껴진다. 문득, 거미줄을 빛나게 하는 빛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실 우리 눈은 빛 그 자체를 온전하게 볼 수 없고 물체가 존재해야 비로소 빛을 볼 수 있다. 우주공간이 검게 보이는 것은 빛을 반사할 수 있는 물질이 없기 때문이다.
거미줄은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거미줄이 없었다면, 결코 강렬한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빛나는 사람일까?' 아니면, '남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일까?'
몇 년 전에는 난 분명 빛나고 싶었고 빛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남을 빛나게 해주는 사람인 듯하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빛나기를 바라는 것 같다. 자신을 표현하고 빛나는 것이 중요한 시대이기는 하지만 그 후광이 주변 사람들과 엮여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공동체의 목표에 부합되지 않는다면, 남들은 결코 그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남들이 자신의 빛을 보기 원하는 욕구는 결국 자기 욕심일 뿐이다.
배우 황정민이 2005년 청룡영화상을 수상할 당시,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다.'라고 말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의 수상은 수많은 역경과 좌절 그리고 노력과 땀에 대한 보답이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평범한 수상 소감을 말했을지라도 그는 여전히 빛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주변을 보았고 자신의 빛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였기 때문에 그의 '빛남'은 더욱 빛을 바랐다.
남을 빛 내주는 사람은 자신만의 의견을 고집하거나 자신의 시선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다.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버리거나 빛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순간부터 남을 빛 내주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인내와 스트레스를 인정하고 존중하게 되었다.
우리가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남을 빛 내주는 사람이 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남을 빛 내주는 사람만이 진정한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배우 황정민도 분명 남을 빛 내주는 시절을 겪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렬한 빛을 볼 수 있게 해 준 매개체인 거미줄이 빛나는 것처럼 진정으로 빛나는 것은 남을 빛 나게 해주는 사람이고 남이 인정하던 그렇지 않던 스스로 인정한다면, 충분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