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법을 배우면 사는 법도 배운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고..

by 책 커피 그리고 삶

"내 소원이 먼지 알아?"


"부자가 되는거? 유명해지는거?"


"아니, 내가 눈을 감는 순간, X나게 잘 살았다라고 생각하는거."


나는 눈을 감을 때, 저 말을 유언처럼 하는 것이 소원이다.


3년 전, 헬스를 시작하고 6개월 만에 사진관에서 몸 프로필 사진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몇 가지 사진을 골라 아내에게 내 장례식에서 이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사용해 달라고 말했다.


"얼마나 재미있겠냐? 장례식이 꼭 슬픈 법은 없잖아. 아마 내 몸 사진을 보고 다들 웃을 수 있을껄?"

나의 장례식에 사용하고 싶은 사진


와이프는 한심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사실, 진심으로 한 말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세상을 초월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세상에 대한 초월적 관점은 삶에 대한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돈, 명예와 같은 사회적 가치가 자신의 죽음을 유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인생에서 남의 의해 조작된 가치 또는 남들이 부여한 허황된 가치를 위해 자신의 행복과 맞바꾼 것을 후회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죽음에 임박해야 진정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다시 살아보고 싶은 열망에 휩싸인다. 이러한 점에서 죽음은 삶의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며, 삶의 만족감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니 '어떻게 죽어야 할까?' 물론 죽는 순간에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죽음일 것이다. 그러한 죽음은 삶의 의미를 깨닫고 그에 따라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온 것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삶과 관련된 책들의 공통점은 '자신'과 '주변(세상)'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지는 본성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면, 주변을 생각해야 한다. '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주변에 자신의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다. 즉, 나로 인해 주변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삶에 대해 무언가 2% 부족한 갈증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 갈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아마 주변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최근, 나는 세상의 가치보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에 한계를 느꼈다. 나의 삶을 이끌어주는 보이지 않는 힘은 이제 '나'를 벗어나라고 은근히 압박을 주고 있다.


'나를 벗어나 주변을 사랑하라고, 나의 에너지를 주변을 위해 사용하라'


조금 두렵다. 이제 간신히 나를 중심으로 나만의 가치관을 정립하면서 조금씩 행복감을 느끼며, 편해졌는데, 이제 나를 벗어나 상처 줄지 모르는 주변인에게 다시 눈을 돌리는 것은 나에게 대단한 용기뿐만 아니라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또 다른 내가 나에게 말한다.


"아니, 이제 그렇게 해도 돼, 넌 준비가 되어 있어.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조금만 더 삶의 영역을 넓혀봐. 주변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그것을 위해 실천해."


이제 난 충분히 나를 사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넘치는 사랑을 주변에게 돌려 좀 더 의미 있는 삶을 실천할 때가 다가온 것이다.


이제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아래글은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간단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가끔, 기대하지 않고 책장을 넘기는 순간, 보물 같은 책을 발견할 때가 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나에게 그런 책이었다.


'죽는 법을 배우면 사는 법도 배운다.'는 가르침은 나에게 가슴 깊이 다가온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피할 수 없지만, 우리는 마치 불멸할 것처럼 생각한다.


당장 내일, 아니, 1초 앞의 미래를 알지 못한다. 어느 순간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보다 자신의 행복에 충실하지 않을까?


오늘 아침, 모리 교수님처럼 내 어깨에 작은 새를 올려놓고 물어본다.


"오늘이 내가 죽을, 바로 그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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