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그때 그 담배 맛이 안 나지?

스리랑카 여행 느낀 점 1

by 책 커피 그리고 삶

스리랑카 여행과 관련하여 일주일 동안 숙제하듯 여행 일정을 9편 써 내려갔다. 그래서 여행 중 느꼈던 세세한 느낌을 여정과 관련된 글 속에 녹여내기 어려워 따로 써보려고 한다.




여행을 준비할 때, 진심으로 가장 고민이 바로 ‘흡연’이다. 경유하는 방콕 수완나품 공항은 비싼 라운지를 이용해야만 흡연을 할 수 있고 스리랑카는 기본적으로 담배 반입이 금지된 나라다. 그렇다면, 도착해서 현지 담배를 사도 되지 않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갑에 3400-3,500루피(약 15,000원)라 계산을 해보니, 2일에 1갑, 14일이니 7갑, 대략 10만 원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돈 주고 사서 피우고 싶지 않았다.


아마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스리랑카를 여행 장소로 선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환불하기에는 악명 높은 온라인 해외항공 대행사라 환불이 제대로 이루어질지 미지수였다(여기 후기를 살펴보니, 티켓 발권 후 나 몰라라 하는 식인듯..).


나도 모르게 배수진을 친 것이 되었다.


‘담배 못 핀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뭐.. 그래.. 금연에 한번 도전해 보지..‘


40시간 만에 첫 번째 담배


스리랑카에 17시간 만에 콜롬보 공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새벽까지 노숙..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다. 콜롬보를 돌아다니다 보니, 그럭저럭 참을만했는데, 저녁에 캔맥주 하나를 사다가 마시고 나니 도저히 못 참고 담배 한 갑을 구입했다. 당시 재미없게 느껴지는 나라에서 담배까지 못 피우면 여행 자체가 너무 ‘고역’이라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단어가 스쳤고 그렇게 금연의 결심은 무너졌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몇 갑씩 구입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요 한 갑으로 여행기간 내내 버티기로 하였다.


게스트하우스 앞 흡연장소에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 개비를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살짝 핑 도는 느낌이 나면서 니코틴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낀다. 아주 천천히 피웠다. 평소 아무 생각 없이 피우던 담배와 달리 단 한 가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연기 분자 하나를 놓칠까 깊이 빨아들인다.



담배 하나만 달라는 사람들


여기 사람들은 담배가 비싸다 보니, 한 보루는 물론 한 갑을 사는 것도 부담스러워한다. 보통 사람들의 한 달월급이 대략 30~40만 원인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는 한 갑에 대략 10만 원인 셈이다.


그래서 노점에서 한 개씩 개피 담배를 우리나라 돈으로 700~800원에 정도에 판다. 그리고 조금 친해진 사람이 내가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고 가끔 나에게 담배 하나만 달라고 한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한번 말해보고 만약 하나 얻을 수 있으면 운이 좋은 거고 그냥 보관했다가 친구에게 선물하거나 팔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심 좋게 하나 건넬 수 있는 담배가 여기서는 다른 가치로 통한다.



여기서 담배를 피우면서 없어진 습관


워낙 귀한 담배이다 보니, 한 번씩 필 때마다 마음속 의식을 치르듯 냄새 한번 맡아보고 피고 싶다는 욕구를 최대한 참으면서 가장 절정에 이르렀을 때, 담배 끝에 불을 붙인다. 그리고 최대한 음미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흡연구역 벤치에 앉아 폰을 보면서 아무런 생각없이 니코틴을 몸속에 주입하여 담배 맛을 온전히 느끼기 어려웠다. 아무 의미 없이 습관적으로 피운다. 피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렬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담배가 타들어가는 그 순간을 느끼고 싶었다. 스마트폰 같은 방해요소를 없애고 바람에 담배 연기가 날아가지 않는 조용한 공간, 담배 연기가 온전히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장소로 굳이 이동하여 담배를 즐긴다(바람 부는 곳에서 피면 담배가 맛이 없다).


온전히 담배 한 개비의 느낌을 즐길 수 있었다.


여행 중 가장 황홀했던 흡연은 히카두와에서 피웠던 담배였다. 숙소의 특징 중의 하나가 발코니가 있는 방이었고 흡연자들에게 감사하게도 발코니로 나가는 창문을 닫고 발코니에서 경치를 바라보며, 피워도 된다고 하였다. 어차피 맨 위층이라 층간으로 담배 연기가 주변으로 날아갈 일도 없었고 발코니 옆은 커다란 벽이 있어 바람도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밤에 캔맥주를 사 와 한마금 마시면서 약간의 취기가 올라오고 길게 한 모금 빨았을 때, '왜 지금까지 이 느낌을 느끼지 못했지?'라는 생각에 잠겼다.



왜 그 느낌이 안 나지?


14일 여행 내내 담배 2갑으로 14일을 버텼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2~3개비 정도이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담배를 한 갑 사서 입에 물었다. '왜, 그때 그 느낌이 나지 않지?' 그때의 간절하면서 맛깔난 담배 맛을 느끼고 싶은데, 한국에 돌아와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욕구이었다. 환경이었다. 그리고 습관이었다.


원하면 필 수 있는 환경과 순간순간 흡연의 욕구를 채울 수 있으니 욕망도 없었다. 무엇보다 흡연을 하면서 스마트폰을 보고 잡생각을 하고 담배에 대해 집중하지 못한 것이다. 그냥 습관적으로 입에 물고 피운 것이다. 여행을 통해 흡연 욕구가 지금의 환경에 상대적 불편함을 가져오고 흡연의 욕망을 끌어내는 것을 느꼈다. 욕구해소의 불편함이 평소 생각하지 못하는 소중함을 이끌어내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소중해야 그 본질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금연을 향하여


그때의 흡연의 쾌감을 다시 느끼지 못한 나는 왜 담배를 피우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여행에서의 흡연 느낌을 느끼지 못할 흡연으로 인해 지금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잃어버릴 수 있는 소중한 것(건강, 부정적 시선 등)들의 상대적 가치를 살펴보니, 확실히 지금의 흡연이 더 손해는 맞다. 그렇다면 굳이 담배를 피울 필요가 있을까? 아니, 많이 양보해서 어차피 필 거 웬만하면 가치 있게 흡연을 느끼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방법은 하나다. 금연이다. 일주일에 한 개비씩 핀다면, 확실히 느낌을 다시 느낄 수 있겠지...


신기하게도 여행을 하면서 니코틴 부족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참을만했다. 그냥 금연도 가능할 것 같았다. 예전에 금연에 실패한 것은 어쩌면, 순간순간 몸애 니코틴이 부족할 때, 채워지는 그 쾌감을 느끼고 싶어서 일것이다. 하지만 니코틴이 충족된 상태에서는 그 쾌감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하고 습관적으로 피우는 것이다. 그냥 이러한 무의미한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다. 그냥... 흡연의 쾌감도 못느끼고 몸만 상하는 것이니 손해다.


지금 금연 4일째다. 예전에 금연에 도전했을때보다 훨씬 편하다. 어쩌면 이번에 정말 금연에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히카두와에서 콜롬보까지 이동하기 그리고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