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지나간 세월을 뽑아내다.

by 책 커피 그리고 삶

거울을 볼 때마다 짧게 커트한 머리카락 사이로 하나둘씩 삐쭉 튀어나와, 나의 시선에 사로 잡히는 흰머리는 당최 적응이 안된다.


짧은 외마디 짜증을 한 번 쏟아내고 거실의 서랍 속에서 족집게를 가져와 흰머리를 살짝 잡아본다. 따끔한 아픔과 함께 세월의 흔적을 하나 뽑아낸다.


이런..... 옆의 검은 머리도 함께 뽑혔다. 뭐.. 족집게도 가져왔겠다 손으로 휘저으며, 머리카락 구석구석 살펴본다. 생각보다 많은 흰머리가 숨겨져 있는 것에 놀라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낀다.


가장 슬픈 것은 정수리 쪽 탈모의 시작을 느끼는 상황에 흰머리를 뽑는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은 염색을 하라고 하지만 도통 정수리 쪽 탈모가 더 안 좋을까 봐 신경 쓰여 시도도 못한다.


젠장.. 나라는 대는 안 나고 나기 싫은대는 나는 아이러니 상황에 유전자를 한껏 원망한다.


족집게로 흰머리를 뽑는 것은 생각보다 세밀한 동작을 요구된다. 특히나 옆머리 쪽 짧은 머리는 더욱 그렇다. 나의 흰머리도 나름 나에게 저항하면서 쉽게 족집게에 잡혀주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헤집으면서 가장 잡기 쉬운 상태를 만들면 흰머리는 어느 순간 자기 옆 검은색 머리카락을 끌어들인다.


한 20분간의 사투를 마치니, 팔과 어깨가 아려오고 세면대 아래 흩트려져 널부러져 있는 머리카락들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쾌감과 승리감을 느낀다.


거울을 다시 본다. 한 5년은 젊어 보인다.


언젠가 자연스럽게 늙어가는 것에 대해 긍정하는 말을 했던 내가 흰머리를 통해 세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20대 시절 지금 나이인 40대 선배를 까마득하다 못해 노인네처럼 느꼈던 내가 이제 그 선배들의 나이가 되니 세월의 무상함을 한껏 느낀다. 신체 나이와 마음의 나이 차이를 통해 괴리감을 느낀다.


많아진 흰머리만큼 나도 성숙해졌다는,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위로한다. 그러면서 검은 머릿속으로 꼭꼭 숨어서 뽑히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나의 지나온 시간을 부정한다. 그리고 뽑혀진 흰머리를 보면서 그동안 나의 살아온 흔적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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