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를 잘 하는 사람은 공감할 수도 있겠다. 노래를 곧잘 하는 사람은 모임 때 누군가 노래방을 가자고 하면 은근 기분 좋게 긴장한다. 내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 무대 위에 오르는 MC나 가수, 스포츠 선수들 등의 직업도 마찬가지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어 더 신난다. 그 덕분에 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제 실력이 나올 가능성은 보다 높아진다. 특히 자신의 팀이나 자신을 응원해주는 서포터스가 있는 든든함은 없던 잠재력까지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글쓰기가 그렇다.
우리는 환경 속의 인간[person-in-environment perspective]이다. 인간은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존재로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이다. 글을 보여준다는 용기. 이 글은 여기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위 서두의 논리대로 하면 글을 '잘 써야' 보여주고 싶은 용기가 생긴다는 결론에 도달할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용기는 용기를 낳는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라. 글을 잘 쓰려고 노력하는 건 꾸준히 쓰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뿐이다. 꾸준히 쓰다 보면 잘 쓸 수밖에 없다. 이건 내가 보장한다. 허나 흔한 자기계발서에나 나올법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같은 건 그 실체가 모호하다.
오히려 두려움 안에서 진짜 용기는 발현되는 법이다.
모든 가치는 그 대상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복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치로서 인정받는다. 특히나 예술이라고 하는 '작품'은 그렇다. 다이아몬드와 같은 희소성의 가치 역시도 부여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가능해진다. 따라서 우리가 쓰는글의 가치는 '그렇게 가치가 있다'라고 믿는 사람들로부터 탄생하게 된다. 부가가치는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커질 수도 있다.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어쩌면 세상을 바꾸는 시발점이 될 지도 모른다.
모든 개개인의 존재는 매우 개별적인 사고와 행동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튀지 말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라는 보편성이 강요되는 교육을 받고 우리는 '새나라의 어린이'로 자란다. 이러한 교육은 전체의 질서를 갖추는 동시에 개별적인 개성을 죽이기도 한다. 한 사람이 쓰는 글은 그 독립적 주체인 한 사람만의 글이어야 한다. 쉽게 예를 들면 목소리와 같다. 특정 타인과 비슷할 수는 있지만 똑같을 수는 없다. 생각, 상상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글은 그 자체로 고유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러한 본성대로 글을 쓸 때야만이 비로소 색깔있는 글, 좋은 글을 탄생시킬 수가 있다.
그건 다른 말로 당당함이 아닐까? 당당하게 글을 쓴 후에는 그 글이 어떤 평가를 받던지 간에도 당당할 수 있다. 글쓰기의 기술적인 측면은 계속 쓰면서 보완하는 것이다. 그러니 매번 피드백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피드백의 내용이 얼만큼의 수준이며,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떠나 타인의 피드백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고립된 작업은 언제나 가치부여에 대한 객관적인 보완이 어렵기 때문이다. 피드백 하나 하나에 일희일비하거나 방어적 태도만으로 일관하게 된다면 자칫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맴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내 글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이 곳에도 누차 말해왔다. 그것이 단순한 자기애적 성향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내 글은 세상에 내놓은 순간, 내 것도, '나'인 것도 아니다. 열 달을 품고서 세상에 나온 자식이 '나'와 또 다른 독립적인 주체가 되듯이. 나는 내 글로부터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는다. 처음엔 내가 안아주었지만, 세상에 나온 뒤로는 글이 나를 안아준다. 나를 힐링시켜주고 나를 살게 한다. 하지만 그 글이 '나'는 아니다. 나와는 다른 존재로서 영향을 준다. 주체적 역할을 한다.
글을 매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라도 보여주고 싶은 본능이 샘솟게 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인 동시에, 영향을 끼치고 싶은 욕구이다. 이성적으로도 내 글이 예술로서 가치가 있는지,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인간이 환경을 만들고 환경은 다시 인간을 만든다. 내 글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있다. 반대로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다.
자신의 글을 세상에 내놓는 건 자유다.
다만 그 용기 안에 수반하는 책임감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글을 쓸 때와 글을 공유할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야 한다. 글을 쓰는 순간에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써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글을 공유할 때는 그 지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타인이 받을 영향, 내가 만드는 환경에 대해서, 부가가치에 대해서 말이다. 이 개념만 명확히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글을 보여주는 용기를 더 과감히 발휘해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