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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영 글쓰기 Jul 13. 2017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나의 위대한 흔적들을

지금은 한창 국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국민멘토 시절, 줄곧 이 명언 하나를 반복했었다.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제가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 차이가 있어야 해요."


흔적, 그의 좌우명에 따른 인생 행보만 놓고 보면 참 결단이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그의 정치적 행보는 그가 지역정당으로 갈라 치기를 하며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부터 지지하지 않지만).


난 어렸을 때 저 말을 처음 듣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두었다. 사막 종주를 하는 어떤 이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다. 그 사막 종주자는 자신의 뒤에 모래바람으로 덮여 금세 사라지는 자신의 발자국을 두고, 한마디를 남겼다. 정확한 워딩이 떠오르지 않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흔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앞으로 가는 그 자체를 자신의 삶으로 규정한 것. 그때부터 내게 '흔적'은 야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야망을 상상할 수는 있다. 야망의 끝은 허무이지만 상상의 끝은 현실이기도 하질 않나. 패러독스다.

예를 들면 이런 상상이다.


내가 거의 매일 글을 쓰러 오는 지금 이 공간(카페), 내가 살았던 2평 남짓한 고시원과 고양이 다행이와 함께 사는 원룸, 내가 일하던 편의점과 어렸을 적부터 살던 동네가 전 세계 사람들의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관광은 주역에 이르기를 '본래의 빛을 보는 것', 즉 본질을 보는 것이라 했으니 내가 그 공간의 빛으로 남아 살아 숨 쉬는 상상이란 얼마나 황홀한가!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 ⓒ 박용은

예를 들면 '이탈리아 문화재'로 자국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와 같은 공간 말이다. 괴테, 멘델스존, 쇼펜하우어, 보들레르, 스탕달, 안데르센,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프루스트, 니체, 토마스 만 등등의 예술가들이 찾았던 카페라 한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봐야겠다.


특히나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이력서에 몇 줄 채워지는 '듣보잡'이력들이 다 '이동영'이란 이름으로 수렴된다는 상상. 나를 빛내주지 못했던 곳을 사후에라도 내가 빛낼 수 있다는 상상은 늘어진 지금 나의 허리를 곧추세운다.


아마 나를 외면하는 사람 중에는 내가 '득'될 것 없는 무명작가라는 생각에서 비즈니스로서 등 돌린 관계들이 꽤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득'이 아니더라도 좋은 관계 혹은 나의 '잠재력'을 두고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겠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나를 알았다는 인연의 사실이 부끄럽지 않은 걸 넘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빛나는 존재가 되는 상상을. 야망이라도 좋다. 난 야망의 끝이 아니라, 상상의 끝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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