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대한 흔적들을
지금은 한창 국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안철수 전 대선후보는 국민멘토 시절, 줄곧 이 명언 하나를 반복했었다.
"제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건
흔적을 남기는 것입니다.
제가 살아 있을 때와
죽었을 때 차이가 있어야 해요."
흔적, 그의 좌우명에 따른 인생 행보만 놓고 보면 참 결단이 대단하단 생각을 한다(그의 정치적 행보는 그가 지역정당으로 갈라 치기를 하며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부터 지지하지 않지만).
난 어렸을 때 저 말을 처음 듣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거두었다. 사막 종주를 하는 어떤 이의 다큐멘터리를 본 것이다. 그 사막 종주자는 자신의 뒤에 모래바람으로 덮여 금세 사라지는 자신의 발자국을 두고, 한마디를 남겼다. 정확한 워딩이 떠오르지 않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흔적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묵묵히 앞으로 가는 그 자체를 자신의 삶으로 규정한 것. 그때부터 내게 '흔적'은 야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가끔 야망을 상상할 수는 있다. 야망의 끝은 허무이지만 상상의 끝은 현실이기도 하질 않나. 패러독스다.
예를 들면 이런 상상이다.
내가 거의 매일 글을 쓰러 오는 지금 이 공간(카페), 내가 살았던 2평 남짓한 고시원과 고양이 다행이와 함께 사는 원룸, 내가 일하던 편의점과 어렸을 적부터 살던 동네가 전 세계 사람들의 관광지가 되는 것이다. 관광은 주역에 이르기를 '본래의 빛을 보는 것', 즉 본질을 보는 것이라 했으니 내가 그 공간의 빛으로 남아 살아 숨 쉬는 상상이란 얼마나 황홀한가!
예를 들면 '이탈리아 문화재'로 자국 정부로부터 지정받은 안티코 카페 그레코(antico caffe Greco)와 같은 공간 말이다. 괴테, 멘델스존, 쇼펜하우어, 보들레르, 스탕달, 안데르센,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 프루스트, 니체, 토마스 만 등등의 예술가들이 찾았던 카페라 한다.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봐야겠다.
특히나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이는 내 이력서에 몇 줄 채워지는 '듣보잡'이력들이 다 '이동영'이란 이름으로 수렴된다는 상상. 나를 빛내주지 못했던 곳을 사후에라도 내가 빛낼 수 있다는 상상은 늘어진 지금 나의 허리를 곧추세운다.
아마 나를 외면하는 사람 중에는 내가 '득'될 것 없는 무명작가라는 생각에서 비즈니스로서 등 돌린 관계들이 꽤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득'이 아니더라도 좋은 관계 혹은 나의 '잠재력'을 두고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겠다.
나는 가끔 상상한다. 나를 알았다는 인연의 사실이 부끄럽지 않은 걸 넘어서,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빛나는 존재가 되는 상상을. 야망이라도 좋다. 난 야망의 끝이 아니라, 상상의 끝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