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의 '오늘'은 어땠나? 그리고 지금의 오늘은?
'오늘'하고 글로 적고 발음도 해보니 말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가장 먼저 내가 '오늘'이라는 말을 쓴 건 언제였을까? 아마도 초등학생 시절 처음 일기를 쓴 때가 아닐까 한다.
'O월 O일 오늘 날씨 맑음-
오늘 나는 선생님께 혼났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고 혼났다..
다음부터는 숙제를 잘해서 칭찬을 받아야겠다(고 제출용 일기에 쓰고는 실제 그런 생각은 눈꼽만큼도 하지 않는다). 오늘의 일기 끝'
나에게 그 당시 '오늘'은
잔인한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학교 수업이 싫었기 때문이다.
숙제하기도 싫었다. 숙제를 안 하면 수업을 받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안 했다. 대신 복도에 내쫓긴다. 오직 숙제를 해오지 않았다는 이유다. 그럼 또 같은 반 아이들에게 나는 '오늘 수업받을 자격이 없는 아이'로 낙인(Stigma) 찍힌다. 복도에서 하염없이 창밖이라도 보게 한다면 내가 더 감수성 풍부한 아이가 되었을 텐데, 무릎 꿇고 왁스칠이 제대로 안 되어서 나무 복도 중간 왁스가 끼여 있는 광경(?)만 보고 하루 종일 손들고 있으라 하니 학교가, 수업이, 선생님이, 날 보고 웃는 아이들이 너무 싫었다.
내 잘못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숙제를 해오지 않은 초등학생에게 그렇게 대처하고 끝나는 학교 교육과 교사의 교수법도 분명 잘못이 있다고 생각했다(어쩜 그 어린 나이에!).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숙제는 억지로 시킬 게 아니다. 또한, 벌을 세워도 '영양가 있는' 벌을 세워야 한다.
그 와중에 부모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개근상을 강조하셨다. 늘 '오늘'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하셨다. 어렸을 적부터 '최선을 다하라'는 게 부모님이 내게 심어준 좌우명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일 '오늘'로 반복되는 '수업 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공부가 아니라, 오로지 개근상을 위해서 교실이 아닌 복도에 출석한 셈이었다. 그러한 오늘을 감당하고 견뎌내려면 내게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그때, 복도에 걸린 시 액자를 보았다. 바야흐로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교외 백일장 대회를 나가면 공결처리가 된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반 대표로 출전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선 먼저 교내 백일장 대회를 석권해야만 했다.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형과 함께 쓰던 방에 꽂혀있던 <86' 전국 국민학생 글짓기 수상집>이라는 책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베껴 쓰기 시작했다. 양심(?)상 대상작이 아닌 우수작과 가작 위주로 제출했다. 결국 나는 초등학교 내내 모든 교외 백일장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그 시절 나의 '오늘'은
그렇게 흘러갔다.
내일이 없었다. 그저 오늘일 뿐이었다. 오늘'일' 뿐인 , 이미 내일이 오늘로 예정된 삶(이건 2017년 욜로족의 개념과는 다르다). 그런데 그토록 버티기 위해서만 했던 행위도 '반복'하다 보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인정받음이 좋았던 나는 결국, 중학교 2학년이 되고서 '내 글'이란 걸 쓰기 시작한 것이다. 더 신기한 일은? 내가 쓴 글로 수상을 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 신기한 일이 고등학교 때까지 매 학기 이어졌다. 매 학기 주보만 한 교내 정보지에 내 글과 함께 수상자 목록엔 내 이름 석자가 실렸다. 심지어는 대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명절연휴를 기념한 백일장이 있을 때면 상을 휩쓸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서 깨달은 사실. 뜨거운 오늘을 견디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자는 것이다. 기왕이면 최선을 다해서- 비록 내가 좋아서 하는 게 아닐지라도, 잘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오늘 멈춰있는 나를 믿는 것이 열정의 시작이다. 그렇게 오늘을 견디는 과정에서 내일을 '바라보면' 된다. 오늘의 우울은 내일로 미루고, 어쨌든 오늘은 오늘로써 견디는 것. 삶은 고통이라는 전제에서 오늘을 견디는 일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오늘의 우울을 내일로 미루는 순간,
오늘은 끝내 흘러가고
내일은 영원하리란 걸 알게 되지 않겠는가?